2017년 5월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 4월29일 대전지역 시민단체들이 “촛불이 만든 대선, 미래를 위해 꼭 투표합시다”와 “투표가 촛불입니다. 죽쒀서 개주지 맙시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참여연대도 “촛불이 만든 대선! 미래를 위해 꼭 투표합시다”라는 현수막을 사무실 건물 앞과 거리에 걸었다. 이에 대해 각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는 ‘촛불’이라는 단어가 특정 정당을 반대하는 내용이라 선거법 위반이라며 현수막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위의 사례는 실제로 지난 대선 기간 선거법에 기반한 단속 처벌 피해사례다.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선거운동 규제와 표현의 자유: 공직선거법 쟁점과 개정 방향’ 토론회에서 박근용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은 이러한 선거법에 근거한 과도한 선거운동 규제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처럼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선거법 위반으로 규제·처벌 사례는 적지 않다. 이날 박근용 위원장이 제시한 11가지의 선거법 위반으로 단속·처벌된 사례들은 현재 선거법이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자유로운, 그리고 정당한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떤 방식으로 침해하는지 쉽게 보여줬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를 20일 앞둔 4월15일, 원외정당인 환수복지당 당원들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사드, THAAD) 장비의 한반도 배치를 찬성하는 대선 후보(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를 비판하기 위해 “평화가고 사드오라?”라는 문구와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정치인들의 사진을 담은 인쇄물을 집회 장소인 광화문 광장 바닥에 붙였다. 선관위와 경찰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후보자나 정당을 반대하는 인쇄물이라는 이유로 인쇄물 부착을 중단하라며 단속했고 인쇄물을 부착하려던 이들을 연행했다.

또한 지난해 4월13일에 있었던 총선을 앞둔 시점인 1월과 3월에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2009년 1월에 발생한 용산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후보의 경주 지역구 출마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경주역과 김 후보의 선거사무실 앞에서 “용산참사 책임자, 김석기를 감옥으로!” 라고 쓰인 현수막과 피켓을 들었다. 이에 대해 용산참사 유가족 등은 인쇄물 배포와 현수막 게시, 확성장치(마이크) 사용, 집회 개최 등의 행위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기소됐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지난해 1월 경주역 앞에서 김석기 예비후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제공, 노컷뉴스
▲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지난해 1월 경주역 앞에서 김석기 예비후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제공, 노컷뉴스
박근용 위원장은 특히 선거법 68조와 90조, 93조 등에 대해서는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의견, 또는 선호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의 유권자들의 의사표현을 봉쇄하는 것으로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이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68조는 선거운동 기간 중 후보와 선거사무원이 아닌 시민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후보자에 대한 선호를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옷, 어깨띠, 표찰, 손팻말, 마스코트, 인형, 배지, 모자, 스티커 소품 등을 착용하거나 부착, 배포도 할 수 없다. 또한 90조에서는 선거기간 중 후보자나 정당의 명칭 또는 명칭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본다. 93조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광고나 벽보 등을 게시할 수 없다.

이 외에도 공직선거법 103조와 105조 역시 폐지 의견이 나왔다. 103조는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집회와 모임을 금지한다. 105조에서도 선거운동에 해당할 수 있는 5인 이상의 행진이나 구호 제창 등을 금지한다.

지난 총선 당시 시민단체인 ‘총선넷’은 당선돼서는 안될 후보들을 선정해 해당 후보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비판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다만 후보자의 이름 등이 적히면 선거법 90조와 93조 위반이기 때문에 이름은 빈 구멍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선관위와 수사기관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에 해당하고 선거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선거운동기간 중 집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준비하거나 기자회견에 참석한 총선넷 관계자 22명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현재 재판 진행 중이다. 구멍 뚫린 사이로 후보자의 이름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혐의는 선거법 90조와 집회 등의 제한 내용을 담은 103조 위반이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장우영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선거법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막기 위해 “선거운동의 정의를 명확히 정하고 선거운동의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금의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범위와 목적이 명확히 한정돼있지 않아 여기에 지배되는 부속조문이 계속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다. 꼭 해서는 안될 행위들만 ‘네거티브’ 식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장 교수는 특히 선관위가 선거 운동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때의 원칙을 ‘공정에서 자유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트위터나 UCC 등 온라인 이용자에 대한 규제는 시시콜콜하게 다 개입하는데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데도 이 부분을 못건드렸다”며 “온라인 상의 표현 자유를 논할 때마다 그동안 거의 후보자 입장 중심에 방점이 찍혀있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장우영 교수는 온라인 상에서의 선거운동 제한이 오프라인보다도 오히려 더 큰 제약을 받고 있다며 “인터넷 상의 표현 행위를 규제할 때는 인쇄 매체에 준하는 기준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선거법 90조와 93조에 대해서는 선관위 역시 폐지 의견을 제시했다. 신광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제과장은 “90조와 93조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간이 되는 법이므로 이 부분은 광고, 옥외시설물, 인쇄물 첩보 및 살포 등에 대한 제한만 남기고 폐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외에도 각론은 조금씩 다르지만 시민사회단체가 부적절한 선거법 사례에 대해 선관위 차원에서도 대체로 개정 의견에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선관위 측은 말과 전화에 의한 선거운동은 상시로 허용하도록 하고, 소품 등을 활용해 선거운동 주체를 유권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시설물과 인쇄물을 활용한 정치적 표현의 규제는 지금보다 단순화시켜야 한다고 봤으며 팬클럽 등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의 범위도 확대돼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신광호 법제과장은 “선거운동의 자유는 원칙이어야 하고 금지가 예외여야 하며, 역으로 금지와 제한이 원칙이고 자유가 예외가 돼서는 안된다”면서도 “다만 살아있는 법을 집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됐는데 여기서 저희 개정 의견도 주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 막는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번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정치권에서 얼마나 ‘의지’를 갖고 선거법을 개정하느냐가 관건이다. 박근용 위원장은 “관건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정개특위”라며 “안행위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이 중심 의제로 돌아갈 것 같은데, 안행위 안건에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다루는 법안이 올라가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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