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개표가 진행 중인 9일 오후 11시까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다. 현재 그는 3위를 달리고 있다. 안 후보는 오후 10시30분 경 사실상 대선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한 직후 개표상황실을 떠났다. 

새정치를 만들겠다며 국민에게 표를 호소했던 안철수가 얻은 답이다. 양당체제를 깨고 호남을 중심으로 제3정당인 국민의당을 만들었고, 문재인 후보와의 양강구도에서 대선 승리를 기대했던 안철수 후보의 대선 행보는 이로써 막을 내렸다.

안철수 패배의 내적 요인: 콘텐츠 부각 실패

국민의당 경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3월 말 경 안철수 후보 지지율은 급등세를 탔다.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러나 국민의당 경선으로 인한 컨벤션 효과가 잠잠해지면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4월 한달 동안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어이없는 실책도 이어졌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4월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고 현재 사립 유치원에 대한 독립운영을 보장해 시설 특성과 그에 따른 운영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단설유치원’ 논란에서 많은 젊은 엄마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외에도 안철수 후보는 지난달 23일 열린 제3차 TV토론에서 “제가 갑철수냐” “제가 MB 아바타냐”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려다 되려 역풍을 맞았다. 안 후보가 자신의 국회 보좌관을 사적인 업무에 이용했다는 논란도 이어졌다. 안 후보의 아내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특혜 채용 이슈도 불거졌다. 국민의당은 이에 대응해 문재인 후보의 아들 문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채용 이슈를 제기했다. 하지만 제기한 의혹 중 일부 사실을 정정하며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악재가 거듭됐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18일 오후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대구 국민승리유세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18일 오후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대구 국민승리유세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번 대선 결과는 선거 기간 동안 안철수 후보 측의 거듭된 악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명 안철수를 지지하는 층에서는 안 후보가 제시한 교육 체제개편과 같은 공약에 대해 많은 호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자신만의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부각했다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안 후보가 콘텐츠를 가지고 뒤집기는 (문재인 후보가 우세한 지지율 흐름이) 너무 많이 왔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문재인 후보 공약 콘텐츠에서 세밀한 부분을 살펴보면 약점이 있다. 이 부분을 초반부터 파고들면서 자신의 강점과 비전을 설명했으면 안 후보에 대한 역량 평가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패배의 구도 요인: 애매모호한 위치

콘텐츠를 제대로 부각하지 못했다는 점 외에도 구도 역시 안 후보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각 당 경선이 끝났던 지난 3월 즈음 문재인-안철수 구도를 그렸던 안 후보측 구상은 이랬을 것이다. 민주당 경선 당시 안희정 후보에게 갔던 중도 진영의 표를 안철수 후보가 끌어오고,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로 간다면 보수층의 지지도 안 후보에게 온다. 확장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문재인 후보에 비해 안철수 후보는 진보에서 중도, 보수까지 지지층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안’ 구도는 무산됐다. 심지어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안철수 후보로 모여야 했던 보수층이 홍준표 후보로 결집되는 양상까지 보였다. 대선 전 공표 가능한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접전을 벌였다. 리얼미터의 대선 전 마지막 공표 가능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홍 후보와 안 후보는 소숫점까지 같은 공동 2위(18.6%)를 기록했다.

안철수 후보는 진보 진영을 확실히 잡은 문재인 후보와 보수를 결집하려 했던 홍준표 후보 사이에서 확실한 위치를 점하지 못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보수층을 잡아야 한다는 점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중요한 대목마다 모호하고 수세적인 모습이 반복됐다”며 “애초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었는데 안철수는 거기서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안철수 후보 측은 숨어있는 부동층이 안 후보를 지지하면 여론조사 결과가 뒤집힐 것이란 믿음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았다. 안 후보 측은 지난해 치러진 실제 총선 결과와 여론조사가 차이가 많이 났다는 점을 근거로 15%의 숨겨진 안 후보의 지지표가 남아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보다 높은 정당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33.5% △국민의당 26.7% △더불어민주당은 25.5%의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국민의당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지역으로 꼽혔던 호남지역에서 지역구를 사실상 싹쓸이 하면서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거대 양당 사이에서 스윙보터로서의 존재감을 갖게 됐다.

국민의당은 총선에서의 경험을 지나치게 과신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당은 숨겨진 안철수 지지층이 적지 않다는 분석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특히 호남의 실제 바닥 민심은 여론조사와 달리 안철수 후보를 향한 지지세가 뚜렷하다는 말이 선대위에서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뚜껑을 열어본 결과, 국민의당 선대위의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개표가 진행 중이지만, 국민의당의 기대와 달리 호남 지역에서도 문재인 후보 지지세가 크게 우세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문재인 후보는 59.9%를 기록한 반면 안철수 후보는 30.8%에 그쳐 두 후보의 지지율이 두 배 격차를 보였다. 심지어 전북과 전남 지역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각각 65%와 62.6%를 기록했으며 안철수 후보는 23.3%와 29%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안철수의 새정치: 너무 늦은 ‘국민 속으로’

국민의당을 창당했던 안철수는 여러 차례 거대 기득권 양당 체제를 깨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안철수는 지난 8일 광화문 유세에서도 “기득권 양당정치에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며 “5년 내내 편 가르고 싸우는 정치, 5년 내내 서로 증오하고 반대만 하는 정치 이제는 끝장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뚜벅이 유세를 통해 국민을 만나고 있는 안철수 후보. 사진=포커스뉴스
▲ 뚜벅이 유세를 통해 국민을 만나고 있는 안철수 후보. 사진=포커스뉴스
그의 마지막 대선 유세 현장은 대전이었다. 대전은 청춘콘서트를 시작해 ‘안풍’을 만들었던 지역이자, 국민의당이 창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안철수는 선거유세가 막바지에 접어든 약 5일 동안 유세차에서 내려와 국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뚜벅이 유세’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과 함께 웃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했다. 국민들이 현장에서 건네주는 먹거리를 현장에서 맛있게 먹으며 '먹방'을 선사하기도 했다.

'안철수다운' 새정치의 행보는 마지막 5일 간 보여줬던 뚜벅이 유세현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가장 '안철수다운'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갔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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