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1번가’에는 ‘가격표’가 없다. 여기에 언급된 정책을 모두 합치면 무지막지한 돈이 필요할 텐데.” 이달 초 구글코리아와 GEN(GLOBAL EDITORS NETWORK), 미디어오늘이 공동주최한 개발대회(해커톤) ‘서울 에디터스랩’에서 ‘공약쇼핑몰’ 서비스를 개발한 동아사이언스 변지민 기자의 말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동아사이언스 사무실에서 변지민 기자, 홍민기 개발자, 권창환 디자이너를 만났다.

변지민 기자는 “‘문재인 1번가’와는 다른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동아사이언스팀이 지난달 초 서비스 프로토타입을 공개했지만 이후 ‘문재인 1번가’가 나오면서 ‘유사 서비스’가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문재인 1번가’가 단순히 문 후보의 정책을 클릭해서 공유하는 ‘선거운동’을 위한 서비스라면 ‘공약 쇼핑몰’은 후보자 ‘매칭’과 ‘검증’을 위한 서비스라는 점이 다르다.

변 기자는 “공약을 지키려면 당연히 비용이 든다. 제한된 기회비용을 갖고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가를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만든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공약 쇼핑몰’에 접속하면 이용자에게는 1년치 정부예산 증액분인 13조 원이 제공된다. 이 돈을 바탕으로 후보자 이름이 블라인드 처리된 채 마음에 드는 공약을 구매한다. 복지도 늘리고 미세먼지도 없애고 일자리도 대규모로 창출하면 좋겠지만 결제창은 ‘마이너스’를 가리킨다.

▲ '공약 쇼핑몰' 서비스 화면 갈무리.
▲ '공약 쇼핑몰' 서비스 화면 갈무리.

돈이 모자라면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 ‘공약 쇼핑몰’이 ‘정책 폐기’와 ‘증세’개념을 도입한 이유다. 돈이 모자라면 ‘사내유보금 과세’ ‘법인세 인상’ ‘기후정의세 부과’ 등의 증세를 통해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4대강 사업’ 등 기존 사업을 폐기하는 것도 예산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변 기자는 “후보들은 공약을 지키겠다는 얘기는 하지만 정작 어느 정책에서 예산을 뺄지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서 “한 후보는 기존사업을 재조정해 90조 원을 확보하겠다고 하는데 사실상 쉽지 않다. 증세항목과 사업폐기 항목을 실제로 보면 그런 고민이 들게 된다”고 말했다.

공약을 쇼핑할 수 있지만 누구의 공약인지는 결제하기 전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정당이나 후보를 보지 않고 순수하게 공약을 보고 투표를 할 수 있기 위해 가린 것”이라고 변 기자는 설명했다.

서비스의 이용 기한은 사실상 대선까지다. 그러나 변 기자는 활용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각 지역별, 연령별로 이용자 데이터를 모으기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가 시작되면 유권자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플랫폼을 활용해 지방선거나 총선은 물론 학교 선거 때 각 후보별 정책에 드는 비용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발에 가장 큰 난관은 다름 아닌 ‘후보’였다. 실제 후보가 내세운 공약에 비해 상품으로 올라온 항목은 적다. 후보들의 공약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수치화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변 기자는 “공약은 많지만 예산이 책정돼 있는 공약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 지난 3월31일 서울에디터스랩 대회 당시 동아사이언스팀. 왼쪽부터 홍민기 개발자, 변지민 기자, 권창환 디자이너.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3월31일 서울에디터스랩 대회 당시 동아사이언스팀. 왼쪽부터 홍민기 개발자, 변지민 기자, 권창환 디자이너. 사진=이치열 기자.
그는 “한 후보라고 해도 10대공약집, 전체공약집, 언론인터뷰의 수치가 다르게 나와 수정작업을 자주 거쳐야 했다”면서 “홍준표 후보는 세부예산 내역을 언급하지 않아 반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홍민기 개발자는 “데이터가 완벽했으면 후보별로 장바구니를 모아서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변지민 기자는 이번 프로젝트 과정에서 개발자, 디자이너와 처음 협업을 하게 됐다. 본래 인터렉티브 기사나 특별페이지를 제작하게 되면 편집국에서 서비스 아이디어를 낸 다음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전달 받아 구현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구현 가능성을 놓고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당연히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서로를 알지만 기자를 알기는 힘들었다. 동아사이언스에서도 이들은 복도에서 만나면 목례를 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권창환 디자이너는 “기존에는 타 부처에서 시키면 그냥 만들기만 했다. 우리 생각이 반영될 수도 없었고, 만드는 데 급급하다보니 서비스 최적화가 잘 되지도 않았다”면서 “이번에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아이디어를 풀 수 있어 좋았다. 그냥 기획자가 던져주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 갇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과정이 바뀌니 콘텐츠 자체가 변화하기도 했다. 개발자가 쇼핑몰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쇼핑몰’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홍민기 개발자는 “원래처럼 협업했다면 문제가 있거나 고치게 되면 이쪽 팀 결재라인을 타고 갔다가, 다시 저쪽팀에서 결정을 내고 돌아오는 방식인데 이런 과정 없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 지난달 1일 변지민 동아사이언스 기자가 서울에디터스랩 행사에서 '공약 쇼핑몰'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지난달 1일 변지민 동아사이언스 기자가 서울에디터스랩 행사에서 '공약 쇼핑몰'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디자이너가 적극적으로 판단할 여지도 컸다. ‘공약 쇼핑몰’에서 적자를 내게 되면 ‘대한민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어요ㅠ 올바른 예산편성이 필요합니다’라는 문구가 뜨면서 울고 있는 캐릭터가 눈에 들어온다. 시각적인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이다. 그는 “결과창은 경각심을 주기 위해 다소 과장된 이미지를 썼다”면서 “장바구니에 넣을 때는 희망찬 모습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등 시각적으로도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점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아직 기술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후보 공약의 비용이 바뀌어 숫자를 고치려고 했는데, 기사였으면 간단해 보이는 작업인데 실제 절차는 복잡했다. 프로세스를 내가 알아야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 기자는 최근 “최소한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아야 하겠다”면서 코딩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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