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사실 은폐 문제로 직원들의 고통이 가중되는 것을 목격한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장이 조윤선 당시 장관에게 '간곡한 건의서'를 올렸던 사실이 밝혀졌다.

김정훈 전 문체부 예술정책과장은 지난해 12월18일 조윤선 당시 문체부 장관 및 이하 차관들에게 '간곡한 건의서'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썼다.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가동 물증이 보도를 통해 밝혀진 후 모든 직원이 상부의 '은폐 방침'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 주요 요지였다.

김 전 과장은 건의문에 "문체부에는 어느 누구 하나 고통받지 않는 직원이 없었다"며 "오진숙 서기관(블랙리스트 명단 관리 담당자)은 자괴감을 호소했다. 눈 뜨는 것조차 무섭다고 한다. 업무를 인계받은 사무관은 사실에 맞지 않는 대응 자료를 만들기 위해 고통받는 하루 보낸다"고 썼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어 김 전 과장은 "대외적으로 사실이 밝혀지면, 그 파장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문체부 예술 정책의 앞날이 얼마나 무너질지 가늠할 수 없다"면서 "2015년 부당한 지시를 듣고 이행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이한신 예술진흥본부장과 장용석 창작지원부장이 국정감사 증언대에 서 책임을 다 떠안았다. 문체부는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 전 과장은 이 서신을 쓴 후 다음날인 12월19일 우상일 예술정책관과 함께 조 전 장관을 찾아갔으나 서신은 전달하지 않고 구두로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그에 따르면 2016년 10월12일 "문체부에 예술인 블랙리스트 9473명 명단이 있다"는 한국일보 보도 이후 문체부는 혼란에 휩싸였다. 증거가 나와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는 와중에도 문체부는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모르쇠 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김 전 과장은 조 전 장관이 지난 1월9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결산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거짓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문체부 직원들도 그걸 보고 굉장히 많이 당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체부 블랙리스트 문제는 자신 뿐만 아니라 일정 직급 이상이 되는 간부면 다 알고 있을 정도로 내부에 알려진 문제였다고 밝혔다.

인사과장 역할인 운영지원과장을 역임했던 김 전 과장은 블랙리스트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당인사 조치를 당한 다수 직원들의 사례도 언급했다.

문체부는 2014년 10월17일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담당 실무자 3명에게 '성실업무 의무 위반' 사유를 적용해 서면 경고 조치를 취했다.

강아무개 사무관은 한국영상자료원 임원에 좌파인사 인선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장애인 예술 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한 주무관은 한국장애예술인센터장에 '좌파인사'를 추천했다는 이유로 인사 좌천 등 징계를 받았다.

김 전 과장은 문체부의 우수 도서 선정에 블랙리스트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서, 박근혜 정부 풍자극 '연극 개구리' 상연에 잘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담당 책임자가 승진을 하지 못한 사례도 확인했다.

그는 "담당 공무원, 나뿐만 아니라 문체부의 모든 직원들이 부끄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점 말씀드린다"면서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유사한 일들이 어느 정권에서도 일어나지 않고 예술의 자율성과 창작이 활성화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 전 과장은 이 같은 사실을 12일 오후 ‘김기춘 등 4인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 2회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했다. 블랙리스트 재판 2회 공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의 심리로 12일 오전 10시10분 서울중앙지법 중법정 311호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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