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장’하면 청와대의 비호 아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존재 자체가 특혜인 종편 허가를 밀어붙인 최시중 전 위원장이 그랬고, CBS를 “유사보도 방송사”로 규정한 이경재 위원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여당측 위원이 마음만 먹으면 다수결 의결을 밀어붙일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위원장이 못할 게 없었다.

이 같은 논란 때문인지 3기 방통위를 맡은 최성준 위원장은 이전 위원장과는 다른 ‘합의제 기구 정신’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합의제 행정기구의 장으로서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3기 방통위 때 ‘형식적으로’ 의견수렴 절차가 확대된 건 사실이다. 지난 3년 동안 상임위원간 티타임이 자주 열렸고, 수시로 현안에 대해 위원들과 의견을 주고 받았다. 종편 재승인을 두고는 방통위원 간 회의를 10회 가까이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 공무원은 물론 야당 관계자들도 “독선적이지 않고 합리적이다”라는 평가를 내린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위원들을 자주 만나고 의견을 많이 듣긴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최성준 위원장의 ‘합리적 리더십’은 이상하게도 비쟁점 사안에서만 빛을 발했다. 3기 방통위의 ‘의결 결과’를 놓고 보면 ‘청와대의 의중’이 의심되는 ‘쟁점 사안’에서는 어김없이 일방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졌다. 3기 방통위에서 야당 위원들은 총 4차례 퇴장했는데 이때 정부여당 단독 표결이 이뤄졌다.

최성준 위원장은 지금까지 야당추천 위원들이 반대한 ‘인사’를 단 한명도 양보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청와대 내정’의혹이 불거진 인물들이다.

2014년 뉴라이트 학자였던 이인호 교수가 KBS 이사장 후보자가 되자 야당추천 위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최성준 위원장은 야당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의결을 강행했다. 야당추천 위원들은 “후보자 검증을 위해 의결을 일주일만 연기한 뒤에 최소한의 시간을 갖자고 했지만,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위원 3명이 일방적으로 의결했다”고 비판했다.

2015년 KBS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국면 때는 차기환ㆍ김원배ㆍ김광동 방문진 이사, 고영주 방문진 감사 등의 정치적 편향성과 연임이 문제가 돼 야당 위원들이 반발했다. 전체회의가 3번이나 무산됐지만 최성준 위원장은 논란이 된 인사를 양보하지 않고 의결을 강행했다.

정치편향적 발언으로 논란이 된 국무총리실 출신 이석우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을 선출할 때는 야당 위원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임명식을 열고 임명장을 수여했다. 최근 그의 인사비리 등 전횡이 방통위 감사를 통해 밝혀져 시청자미디어재단이 해임건의안을 올렸음에도 최성준 위원장은 한달 동안 사인하지 않으며 버텼고, 결국 이석우 이사장이 자진사퇴하면서 명예를 회복하게 했다.

정부여당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은 사안에 대한 독단도 이어졌다. 2015년 종편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유예기간을 1년 늘리고 기금징수율을 수익의 0.5%로 책정하는 등 특혜를 안긴 것이다. 김재홍 상임위원은 “종편의 막말, 편파방송은 방통위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급증했다. 왜 방통위가 앞장서서 종편의 편을 드는 것이냐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발기금 징수를 미루면 특혜를 더 주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고삼석 상임위원과 함께 퇴장했다.

지난 1월 방통위가 방송의 공정성·객관성·선거방송과 관련한 심의 제재 감점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방송평가규칙을 개정할 때도 정부여당 단독으로 의결을 강행했다. 담당자인 방송평가위원장(김재홍 당시 상임위원)에게는 사전 논의 없이 밀어붙인 것이다.

김재홍 전 상임위원은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4번 보이콧하며 퇴장했다”면서 “그러나 논의가 중단되지 않고 그대로 회의가 진행됐다. 방통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합의제 기구라는 특성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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