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은 지금 분수령을 맞았다. 아직까지는 박근혜 대통령 측이 유리해 보인다. 합리와 이성을 버린 버티기로 어떻게든 대통령직을 특검 수사 종료 기한까지 지켜냈다. 그리고 가급적 빨리 특검을 종료시키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지연시킬 것이다.
쓸 수 있는 카드도 많다. 증인 신청을 추가로 할 수 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제야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한다고 언론에 흘릴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시간을 끌며 헌재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고 헌재가 결국 박 대통령 출석 없이 심판을 진행한다고 한다면 공정성에 시비를 걸고 법률대리인들이 전원 사퇴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흔들린다. 국민들은 이 지난한 과정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시간은 대통령의 편이다.
그러자 보수언론의 훈수가 시작됐다. 헌법재판소를 압박하지 말고 놔두라는 것이 골자다. 입법부에 속해 있는 국회의원 혹은 그 정당의 정치인들이 헌재 심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삼권분립 위배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예 정치인들은 촛불집회에 참석해선 안 된다는 주장의 사설도 있다.
“정치권과 각종 단체가 경쟁적으로 11일 탄핵 찬반 시위에 군중을 동원하려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마치 집회에 누가 더 많이 나오느냐로 탄핵 여부가 결정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중략) 민주당은 오늘 집회에 사실상 의원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런 때일수록 오해를 사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부 의견은 무시됐다”(조선일보 2월11일자. 사설 ‘나라 걱정한다면 대선 주자들 헌재 압박 시위 불참해야’)
그렇다면, 친박 단체들의 집회에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야권의 집회 참석을 막아서는 언론은 바로 이 모순을 파고든다.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으니 야당 정치인들도 헌재를 압박하지 말고 촛불 집회에도 참석하지 말라는 식이다.
또한 이는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새누리당의 국회의원들과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하는 야당 정치인들을 등치시키며 두 세력을 모두 ‘비이성적’으로 만들고 상대적으로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을 ‘이성적’으로 추켜세우는 명분이 된다. 이것은 사회 안정을 바라는 보수 성향의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친박 단체의 집회와 촛불 집회의 민심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현재 촛불집회는 대통령 스스로 하야, 국회의 탄핵안 처리, 헌재의 조속한 심판 등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헌법의 틀에서 민의를 전달하는 수준이다. 반면 친박 집회 참석자들은 손 팻말부터 ‘계엄령’을 언급하고 무대에선 온갖 허위사실들이 난무한다. 애초 두 집회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헌재 결정을 따르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중략) 지지율 1위 대선 주자의 촛불집회 참석은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비칠 수 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할 자세도 돼 있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의 법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동아일보 2월11일자 사설. ‘국민은 헌법재판소를 믿는다’)
결론은 이렇다. ‘문재인은 비이성적’, 어쩌면 이들 언론이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며 촛불집회를 극찬하던 언론은, 지난해에 비해 촛불 집회 참가자 수가 줄어들자 태극기 집회와 비교하며 대선 구도를 다시 짜고 있다. ‘프레임 전쟁’은 이렇게 늘 교묘하게, 소리 소문 없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