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대선이 코앞에 온 만큼 정치권의 눈과 귀는 오롯이 설 민심에 쏠려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으니 이번 설, 각 가정의 밥상 앞에서는 차기 대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 특히 정치 이슈가 지난 몇 개월 간 이어져온 만큼 정치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을 것이고 토론은 치열했을 것이다.

27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흥미롭다. ‘설 연휴 가족 모임에서 차기 대선 관련 대화를 나눌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대화를 나눌 것 같다’는 응답이 57.8%로 나왔다. 지난해 설에 비해 5.7%p 상승한 수치다. 반면 ‘대화를 나눌 것 같지 않다’는 응답은 32.5%, 지난해 보다 11.8%p 감소한 수치다.

그리고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 중 56.8%는 다른 사람을 지지하는 가족을 ‘설득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설득 시도 안하겠다’는 37.6%보다 19.2%p나 높은 수치다. 재미있는 것은 야당을 지지하는 지지층들의 ‘설득 시도’ 의향이 높았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남이 높았고 대구·경북이 가장 낮았다.

▲ 지난 26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설 연휴 가족 모임, 차기대선 관련 담화 참여 의향' 여론조사. 자료=리얼미터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고 지역별로 지지후보와 정당의 양상이 기존과 달라지는 등 과거의 선거 통계가 무의미할 만큼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설 민심,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민심은 요동쳐왔다. 설이 지난다고 판이 뒤흔들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판이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같은 변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지금 대선 구도는 사실상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독질주로 볼 수 있다.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파괴력을 기대했을 것이나 리얼미터를 보면 반 전 총장은 귀국 직후 약 0.7%p 소폭 반등했을 뿐 조금의 파괴력도 보이질 못했다. 보수진영이 반기문으로 결집이 안 된다는 의미다.

23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주간 정례 여론조사에서는 하락에 하락을 거듭한 끝에 반기문 후보는 19.8%가 나와 20%선조차 무너졌다. 기대했던 반기문 효과는 없었고 반기문을 대체할 다른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바른정당 지지율이 10% 전후로 나오는 상황에서 유승민 의원이 치고 올라갈 동력도 없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예상보다 지지율이 많다고 해도 그 이상을 올라갈 가능성은 적다.

보수진영에 사실상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은 조금씩 오르고 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12월 4주만 해도 문재인 전 대표는 23.5%로 23.0%의 반기문 전 총장에 미세하게 앞설 뿐이었지만 1월 3주 여론조사는 29.1%가 나와 19.8%의 반기문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더욱이 이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38%까지 치솟았다. 새누리당이 12.5%, 바른정당이 8.9%이니,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대표로서는 본선보다 예선 통과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 지난 23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야 대권주자 지지도 변화 추이 그래프. 자료=리얼미터
즉 이번 설 이후 사실상 5월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지금의 대권 구도는 문재인 대세론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이 3자 구도가 됐든 4자 구도가 됐든 후보단일화와 상관없이 문재인 전 대표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타 후보들이나 언론의 포화가 문재인 전 대표에 집중되지만 여론조사만 놓고 받을 때 문 전 대표가 받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새인물’이라는 변수가 없는 한,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이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어쨌든 문 전 대표는 정계에 진출한 이후 오랜 시간 집중 공세를 받아왔지만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지난 대선 문재인 전 대표는 어느 정도 검증에서 살아남은 적이 있다. 안정감이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후보를 깎아 내리기 위해 새누리당이 썼던 방법은 고작 범법 행위 소지가 있던 ‘NLL 대화록’과 국정원 직원의 ‘감금’ 정도였다.

둘째. 지금 울려퍼지는 문재인에 대한 비판 구호가 공허하다. 문재인 전 대표를 따라다니는 가장 일상적인 비판이 ‘친노 혹은 친문 패권주의’다. 그런데 이게 일반 국민들에게 눈앞에 다가온 적이 없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엔 선거에서 떨어진 비주류의 푸념 정도로 인식될 수 있다. 그나마 거기에 불만을 품었다는 세력들은 한 차례 분당을 했다. 같은 당에서 대선 경선을 치를 일도 없는데 국민의당이 ‘친문 패권주의’를 말하는 것이 와닿을리 없다.

▲ 지난해 11월21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해 한 시민의 자유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문재인 전 대표측 제공
포용력이 없다는 비판도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참여정부가 호남 출신을 배제했다는 말은 국민의 정부에 비하면 맞고 그 외 다른 정부에 비하면 틀린 말이다. 기준이 애매하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의 분노가 정점을 찍고 있고 재벌·언론 등 사회 기득권에 대한 해체를 요구하는데 호남 홀대론은 상당히 공허해 보인다.

리서치뷰가 26일 발표한 여론조사는 호남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19대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정권교체(70%)를 꼽았다. 친노패권청산을 주장한 사람들은 14.5%에 그쳤다. 19대 대선이 다자구도로 치러진다고 볼 때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에서 44.6%의 지지를 얻었다. 안철수 후보는 16.7%에 그쳤다. 호남에서조차 호남 홀대론이 지금까지 유효한지 의문이다.

셋째. 경쟁자가 없다.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정권교체 실패에 대한 공포가 있다. 만약 문재인 전 대표가 아닌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안희정 충남지사가 민주당 후보로 뽑힌다고 해도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지지율은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당장 다자구도에서라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문재인 전 대표다.

물론 문 전 대표 측에서 샴페인을 미리 터트리기엔 이르다. 문재인 대세론을 굳히는 요소는 또 한편에선 약점이 될 수 있다.

▲ 지난 10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세미나에 참석해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해 12월23일 안희정 충남지사가 전북지역 청년들과의 만남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첫째. 2012년 대선보다 검증의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뼈아픈 실책이 있어 더욱 그렇다. 물론 조기대선이 치러질 경우 검증의 시간이 짧아지겠지만, 강도 높은 검증은 어느 후보라도 피할 수 없다.

둘째. 본격적인 정책에 대한 비판이 오고갈 때다. 바꿔 말하면 문재인 전 대표의 생각과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다. 촛불집회 이후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이 있는 반면 문재인 전 대표는 다소 말 수가 적은 ‘선비’형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토론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당내 경선의 경우 이재명 시장과 안희정 도지사를 상대해야 한다. ‘고구마’란 별명이 붙었을 만큼 야권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다소 답답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역으로 안정감을 줄 수도 있다.

그렇게 봤을 때, 지금 문재인 전 대표나 야권 대권후보들이 해야 할 일은 뻔하다. 국민들의 사회 개혁 의지를 반영할 정책을 만들고 다듬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찾고 앞 다퉈 2017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정립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것이 문재인 대세론을 만들거나, 문재인 대세론을 흔드는 길이다.

물론 야권의 후보들이 조금씩 그러한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고 제시하고 있다. 언론도 그것을 검증해 대중들에게 알려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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