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느닷없이 청와대 상춘재로 기자들을 불러 모아 신년 기자간담회를 연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였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인 대통령이 간담회 형식을 빌려 탄핵사유를 전면 부정하고 자기변명만 쏟아낸 데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간담회 개최 소식이 불과 15분 전 기자들에게 통보됐고 청와대는 일방적으로 노트북, 음성 녹음, 카메라 등의 사용을 금지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기자들을 자신의 해명 도구로 삼기 위한 꼼수였다.

▲ 청와대 기자들이 지난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청와대 기자들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와대 기자들 사이에서도 ‘더는 못 참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불통의 끝을 보여준 청와대에 일부 기자들은 ‘기자회견 보이콧’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한 방송사 ㄱ기자는 “1일 이후 기자단에서 공식적으로 신년 기자간담회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보이콧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중앙일간지 ㄴ기자는 “제대로 형식이 갖춰진 기자회견이라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카메라, 노트북 등에 제한을 두는 식이라면 보이콧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불통에 대해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휴가 중이거나 외부에 있던 기자들의 경우 ‘속보’를 통해 간담회 일정을 확인해야 했다. ㄷ기자는 “몇몇 기자들은 ‘이런 식의 간담회는 거부했어야 했다’고 불만을 표했다”며 “노트북이나 카메라 등을 소지하지 못하게 한 데 반발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 청와대 기자단의 기자회견 보이콧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최근 종합편성채널 소속 기자들의 경우 인사 이동이 있었고, 탄핵가결 이후 출입처 중요도에서 청와대가 후순위로 밀리다보니 자리를 비운 기자들도 늘었다고 한다. 청와대가 텅 빈 상태에서 심도 있는 논의는 이뤄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전히 “하나라도 더 들어서 전달해야 한다”는 기자들도 많다. ㄴ기자는 “간담회가 있었다는 걸 몰랐던 기자들의 경우 회사에서 ‘넌 왜 몰랐느냐’고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들어가도 말이 나오고 들어가지 않아도 말이 나오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반면, 청와대 기자단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지난 5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기자단 해체’를 주장하고 나섰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기자라면 이런 식의 기자간담회는 전면 거부해야 한다”며 “병풍처럼 들러리만 선다면 청와대 기자단은 해체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도 “앞으로 청와대 출입 경력은 부끄러운 경력이 될 것”이라며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박 대통령의 탄핵 결정이 헌재에서 인용될 때까지 청와대에서 철수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ㄹ기자는 “청와대 기자들이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며 “기자회견 때마다 질의 형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다보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면이 있다”고 했다.

▲ 청와대 기자들이 지난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의 일방적 기자회견과 기자단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에 데스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종합일간지 언론사 ㅁ편집국장은 “청와대 출입들의 스트레스가 크다”며 “청와대가 지나치게 폐쇄적 운영을 하고 있는데, 지난 간담회처럼 진행된다면 현장 기자들과 상의해서 (보이콧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ㅂ편집국장은 “출입기자, 정치부장 등과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만약 지난 간담회처럼 기자들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누가 봐도 소통이 불가능한 환경이라면 불참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도 지난 2일 자사 청와대 출입기자를 앞에 두고 “또 간담회를 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간담회가 이뤄진다면 기자들로선 참석하기 어려운 것 같다”며 보이콧을 시사했다.

이번 간담회는 결국 박 대통령의 구시대적 언론관이 빚은 ‘촌극’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최장기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은 “박근혜 정부는 기자들을 춘추관에만 가둬놓고 있다”며 “기자들이 질문해 돌아올 답변이나 새로운 정보가 있다면 격식을 파괴해서라도 질문을 하겠지만, 박 대통령이 여태 보여준 모습에 비춰보면 그러한 시도도 가치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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