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JTBC 보도 이후 ‘대통령기록물 유출 및 사전열람’ 의혹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유출되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최순실씨와 기록물을 유출한 청와대의 누군가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JTBC 뉴스룸은 24일 최순실씨 컴퓨터 안의 자료를 바탕으로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 청와대 내부 문건을 미리 받고 문건을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컴퓨터에 저장된 200여개 파일중 대통령 연설문 44개 등이 청와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첨삭하는 ‘빨간펜 선생님’ 역할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통일 대박론’을 주장한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을 하루 전 열람한 뒤 붉은 글씨로 수정을 가했고, 박 대통령이 실제 연설문에서 일부 내용이 달라졌다는 것. 그 외에도 최씨는 청와대 비서진 교체와 관련된 문서를 포함해 박 대통령의 각종 공식발언, 대선광고 동영상, 유세 연설문 등을 미리 받아봤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 24일자 JTBC 뉴스룸 갈무리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관계자가 넘겨준 것이 아니라면 최씨가 이 파일을 받을 방법이 없다. 청와대 내부자 누군가가 민간인인 최씨에게 이 파일을 넘겨줬다면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해당 법률은 대통령(당선인 포함), 대통령의 보좌·자문·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이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생산‧접수하여 보관하고 기록하는 기록물 일체를 ‘대통령 기록물’로 정의하고 있다.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이나 국무회의 자료, 청와대 인사 관련 문건 등은 모두 대통령기록물로 취급된다. 그리고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14조는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 또는 유출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19조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업무를 담당하거나 담당하였던 자 또는 대통령기록물에 접근·열람하였던 자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 및 보호기간 중인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형법 127조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할 소지도 크다.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죄로, 이 죄를 범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질 수 있다.

비슷한 사례는 2014년 벌어진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이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민주당 의원)과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은 정윤회씨와 문고리3인방에 대해 조사한 문건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했다. 하지만 조 의원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윤회 문건을 대통령 기록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하지만 이번에 최씨한테 건너 간 문서는 대통령 연설문, 국정 발언, 국무회의 자료 등 정윤회 문건보다 훨씬 공적인 성격이 강한 문건들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맘으로 한 일”이라며 대충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최순실씨도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씨는 연설문 초안을 미리 건네받고 이를 빨간 글씨로 수정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금지하고 있는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손상’, 또는 ‘멸실’에 해당할 수 있다. 이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비슷한 사례가 2013년 초 벌어진 ‘NLL 대화록 사초폐기’ 사건이다. 2013년 NLL 대화록 공개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화록 초본이 삭제됐다는 논란이 일었고, 검찰은 대통령기록물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을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이 삭제한 문서는 결재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초기의 녹취자료 정도이지 대화록 초본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 24일자 JTBC 뉴스룸 갈무리

기록전문가인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번 정부의 검찰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을 없앴다고 기소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 수정할 부분이 있어 고친 것이었는데도 기록물에 손을 댔다고 기소됐다”며 “최순실씨 관련 사태는 NLL 대화록 사태보다 100배 쯤 문제가 심각하다. 청와대 비서진들도 아니고 (민간인인) 최순실씨가 대통령기록물에 손을 대고 변경한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씨가 직접적으로 청와대 문서유출을 지시하거나 부탁하고, 이 과정에 개입했다면 공무집행방해죄나 교사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 국장을 맡았던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 당장 최순실 씨를 국외로부터 소환해서 구속 수사해야 할 일이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은 범죄”라고 지적했다.

최씨가 이렇게 얻은 연설문이나 자료로 사적 이득을 취했다면 범죄의 강도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최씨가 획득한 연설문을 다른 곳에 유출했어도 문제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가기밀이 최순실씨 컴퓨터로 흘러가서 또 어디로 갔을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주식갤러리에 올라온 게시 글. 최순실씨를 애플의 음성인식서비스 시리(siri)에 빗대 최순siri라 부르고 있다.

최씨에게 자료가 건네지는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경우 박 대통령도 조사대상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청와대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윤호중 정책위원장에게 물어봤더니 청와대의 비서관, 행정관이 업무용 컴퓨터를 가지고 이메일을 외부로 보내면 국정원에 바로 걸린다고 한다”며 “아무리 봐도 대통령이 직접 보낸 것이 아니고서야 국정원이 모르게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눈을 피하거나 국정원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박 대통령뿐이라는 뜻이다.

박 대통령도 최순실씨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박 대통령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 (수정을 하는)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 보완체계가 완비된 후에는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수사대상에 박 대통령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독립된 특검이 조사를 맡아야한다는 목소리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25일 기자회견에서 “특검을 포함한 성역 없는 수사로 짓밟힌 국민들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야 한다. 대통령도 당연히 수사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비박계로 꼽히는 김용태, 하태경 의원은 특검을 촉구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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