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에 올라온 “두 장의 사진으로 보는 NYT와 WP의 실력 차이”라는 글을 읽고, 우연히 NYT에서 보내주는 메일링에 서 재밌는 걸 발견했다. “What We’re Reading”이라는 NYT의 메일링 서비스인데, NYT의 기자들이 자기 신문에 올라왔으면 하는 기사들을 뽑아서 독자들에게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쉽게 말해서 “이건 우리가 썼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기사를 솔직하게 뽑아서 알려주는 것이다.

9월 23일에 발송된 메일을 보면, NYT의 기자 지나 램이 워싱턴포스트에 올라온 흑인역사박물관에 관한 기사를 추천한 다. 미디어오늘의 글에 소개된 기사와는 다른 기사다. 추천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박물관에 있는 하나의 전시품 — 버지니아에서 노예로 살았던 한 소녀가 입었던 스커트 — 을 가지고 박물관에 대해 조명하는 내용이다. 소재도 훌륭하고, 기사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멋지다. 박물관을 이렇게 멋지게 소개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첫눈에는 NYT의 지면이 더 인상적일지 모르지만, 소재를 다루는 방식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워싱턴포스트도 똑같이 훌륭하다는 걸 알려준다.

▲ 국립 흑인역사문화박물관(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위키미디어 사진.
한편으로는 미디어오늘의 글에 나오는 워싱턴포스트의 “Light and Reflection”라는 제목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Light and Reflection”은 직역하면 “빛과 반사”라고 할 수 있지만, 달리 보면 “광복과 성찰”이라고 볼 수도 있다. 후자의 번역이 좀 더 그럴듯한 것은 워싱턴 포스트의 사진에 워싱턴 기념탑이 비추어지는 모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기념탑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것으로, 미국의 건국 정신을 상징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 아마 처음엔 모든 백인 남자는 평등하다는 의미였겠지만 — 는 미국의 건국 정신이 떠오른다면, 그건 워싱턴 포스트의 의도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광복과 성찰”은 새롭게 개장하는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을 미국의 흑인 인권사에 빛을 비춰주는 성찰로 볼 수 있다는 걸 함축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이 사진은 박물관의 위치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넌지시 암시하기까지 한다. 워싱턴 기념탑이 비치는 박물관의 위치는 과거 흑인 탄압의 현장과 매우 가깝다.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의 뒷쪽, 인디펜던트 애비뉴의 동쪽으로는 과거 노예 폭동을 진압하려는 목적으로 도시를 순찰했던 최초의 민방위들을 위한 워싱턴 무기고가 있었고, 박물관의 동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과거 노예 거래를 했던 곳도 있다. 미국에 사는, 혹은 워싱턴에 사는 사람이라면 워싱턴 기념탑이 비친 사진을 보고 그런 것까지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사진이 이런 식으로 의도됐다는 것은 위치의 의미를 설명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기사와는 별개로, 나도 미디어오늘의 글처럼 워싱턴 포스트보다는 뉴욕 타임스가 더 실력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상당 부분 개인적인 편향 때문에 하는 생각이다. 난 뉴욕타임스는 돈 내고 보지만, 워싱턴 포스트에는 돈을 내지 않는다. 실제로 지면에 실린 두 기사를 비교한 미디어오늘의 글도 어느 정도까지는 맞다고 본다.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는 이면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멋진 시도이지만, 난 쉬운 기사가 더 좋다. 한편으론, 어쩌면 NYT가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추천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들이 그만큼 훌륭한 기사를 써낸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실력 차이라는 게 얼마나 작은 차이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그런 작은 차이가 중요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사들 실력 차이란 이 정도 수준이구나 하고 떠올려보게 되는 것이다. 종이신문의 사진과 제목 뽑기에선 NYT가 낫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냥 기사 하나만 놓고 단순 비교하기에 두 신문의 실력 차이는 정말 근소한 수준이다. ’종합적으로 NYT가 흑인역사박물관을 워싱턴 포스트보다 더 잘 다루었는가?’라는 질문에 간단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정 언론사가 단독 기사를 내면, 그 기사를 형식만 조금씩 바꿔서 내는 국내 언론 환경과 비교하면, NYT와 워싱턴포스트의 사례가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하나의 취잿거리를 다양하게 담아내고, 담아내는 방식조차도 각자의 방식으로 둘 다 감탄이 나올 정도의 수준을 자랑한다. 이 정도 수준에서는 누가 더 실력이 낫다고 하는 게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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