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 무산된 이후 정부가 유료방송 정책을 다시 세우고 있지만 사업자 측면에서 갈등조정에만 골몰하는 현실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지역 복지, 고용 보장 등 강력한 공적 책무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유료방송 종합정책을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연구반에서만 추진할 게 아니라 방송개혁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기구를 통해 만들어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20일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야3당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유료방송의 공적 역할, 가야할 길을 묻다’ 토론회에서 “케이블 등 유료방송 플랫폼의 공공성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고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민간사업자이자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플랫폼사업자에게 과도한 공적 책무를 부과하는 건 부적절하고, 공적 책무 자체가 추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난 인수합병 국면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한 지역성 보장이나 노동자 직접고용 요구는 과도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윤종오 무소속 의원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20일 국회에서 ‘유료방송의 공적 역할, 가야할 길을 묻다’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금준경 기자.
그러나 김동원 정책국장은 “사업자들은 해외사례를 인용해 유료방송 간 인수합병의 당위를 찾곤 했는데, 정작 미국에서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공적 역할을 확장해 도입한 사례를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필라델피아 의회는 유력 케이블업체인 컴캐스트에 지역 독점 사업권을 주는 대가로 8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다양한 공적 역할을 부여했다. ‘필라델피아 주 공립학교의 공학계열 졸업생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할 것’ ‘필라델피아 주 내 컴캐스트 노동자 및 도급업자에게 생활 임금을 지급할 것 ’저소득층, 노년층을 위한 저렴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것’ 등이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무산 이후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7월 연구반을 꾸리고 유료방송 종합정책을 연말까지 수립할 계획이다. 연구반은 △유료방송 단일 허가체계로 통합 △점유율·소유지분율 규제개선 △사업권역 제한 완화 △결합판매시장 공정경쟁 환경 마련 △대가분쟁 조정기능 강화 △케이블 디지털 전환 확산 △지역성 회복 및 강화 △채널·상품구성 자율성 제고 △유료방송 수익구조 개선 △혁신서비스 도입 △OTT(Over The Top, 인터넷동영상서비스)법제화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연구반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김동원 정책국장은 “연구반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하나의 연구반에서 몇 달 만에 모두 다루고 결론을 끌어내기에는 지나치게 주제가 방대하고 깊은 논의가 필요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연구반의 연구주제는 ‘점유율 규제 완화추진’ 등 케이블과 IPTV 사업자들이 요구하는 규제개선에 치중되기도 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정부는 그동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거나 사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마다 닥친 문제를 봉합하는 데 급급했을 뿐 기본적인 방송정책에 대한 원칙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업자들의 요구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시장원칙을 세우고 장기적인 전망과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회적 기구설립을 통해 공개적으로 방송시장 발전방안을 마련한 방송개혁위원회 모델을 유료방송 종합대책 마련에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8년 민간협력으로 구성된 방송개혁위원회는 합의제 행정부처인 방송위원회의 성격을 정립하고, 방송통신 융합환경에 따른 대책 수립을 포함한 오늘날 방송법의 틀을 만든 기구다. 

▲ 유료방송 시장은 케이블, IPTV, 위성방송, OTT 등 다양한 사업자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디자인=이우림. ⓒiStock
김동원 정책국장은 “방송개혁위원회도 말이 많았지만 시청자, 학계 등 다양한 주체들이 논의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수렴을 거쳤다”면서 “현재 상황은 그때보다 더욱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패널인 노영란 매비우스 (매체비평 우리스스로)사무국장은 “예정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도 유료방송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등 모든 방송시장의 의제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각각의 구성원들이 모여서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관해 미래창조과학부는 졸속추진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손지윤 미래부 뉴미디어정책과장은 “연구반은 지난 7월 꾸렸지만, 관련 검토는 지난해부터 시작했다”면서 “단기간에 진행한다고 해서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유료방송 산업 지형자체가 급변한다. 또, 연구 주제들은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진행을 못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대한 주제를 폐쇄적으로 다뤘다는 지적에 대해 손지윤 과장은 “모든 주제에 대해 결론을 내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주제도 있을 것이고,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일 경우 공론의장을 만드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신영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지원정책과장은 “사회적 기구를 따로 마련하는 건 어렵다”면서 다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반영해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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