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마다 프랜차이즈가 들어선다는 건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지만 색다른 경우도 있다. 성공회대와 세종대, 이화여대, 한국외대에 있는 독립언론 ‘알리’(알권리의 준말)가 그것이다. 이 잡지는 시사주간지 판형에 학기별로 3~4회씩 세종알리, 이대알리 등 ‘알리’라는 이름으로 배포된다. 대학본부나 학생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알리를 만들고 지원하는 곳은 대학언론협동조합이다. ‘N대알리 프로젝트’를 이끄는 정상석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26)은 대학언론 편집권 개선을 위한 고민 끝에 ‘지속가능한 독립언론’이 필요하다고 봤다.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정상석 이사장을 만났다.

“대학언론 위기해법 고민, 민변까지 찾아갔다”

정상석 이사장은 전북대신문 기자였다. 당시 편집권 침해를 당한 게 대학언론협동조합의 밑거름이 됐다. “총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1면에 썼는데 마감 끝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주간교수(학보사를 담당하는 교수)가 갈아엎었다. 총장직선제 문제를 기사로 쓰려고 했는데 간사 선에서 끊기기도 했다. 학교는 ‘이 기사 쓰면 해외취재 지원 못 해준다’는 식으로 압박했다.”

정상석 이사장은 “우리학교만 이런 게 아니라, 다른 학보사 기자들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대학언론의 노조라고 할 수 있는 ‘편집권 침해 공동대응을 위한 단체 설립’을 추진하게 된 이유다. “2012년 대학언론 대선후보 공동취재단을 통해 다른학교 기자들과 만나면서 편집권 침해에 대한 공동대응을 준비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편집권이 보장돼도 1~2년 지나고 주간교수가 바뀌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근본적인 변화가 이어질 수 없었다.” 

▲ 정상석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 사진=금준경 기자.
그래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대학 학칙에 학보 발행인은 총장 혹은 이사장으로 돼 있고 편집인이 주간교수로 돼 있기 때문에 편집권 침해가 용인되는 구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을 찾아가 학칙의 사전검열 등 편집권침해 조항이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낼 수 있는지 자문을 구했다. 국립대는 공공기관으로 간주해 위헌결정이 날 수도 있지만, 사립대는 불가능하다고 분석을 해주더라. 진짜 문제가 심각한 건 사립대였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의미가 없었다.”

고민 끝에 대학언론을 떠났다. 대학언론협동조합을 만들고 독립언론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2014년 대학본부의 편집권 침해에 반발한 한국외대 학보사 기자들이 독립언론 외대알리를 창간했다. “외대알리에 디자인 지원을 하며 독립언론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독립언론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콘텐츠를 한겨레21에 게재하는 사업을 반년 정도 했다.”

“대학독립언론, ‘경영마인드’가 없다”

그러나 독립언론을 지원하는 사업도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연세대 독립언론 연세통이 18년 만에 폐간됐다. 다른 독립언론들도 무기정간되기 일쑤였다. 정상석 이사장은 “연세통의 폭발을 지켜보면서 독립언론은 저널리즘에 투철한 사람들이 모인 것은 좋았지만 경영에 관심이 없었던 게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을 고민했다. 협동조합 일을 하면서 투잡으로 컨설팅회사나 광고영업회사에서 일을 했다. 전문적이지는 않아도 필요한 게 뭔지는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때마침 대학언론협동조합은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예산을 지원받게 됐다. 이때부터 ‘N대알리’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알리를 창간하려는 대학의 학생들 5명이 모이면 한학기 발행비를 지원해주고 기본적인 편집툴 등 노하우를 전수하는 식이다. 

수익모델도 만들었다. 대학언론협동조합이 광고영업을 총괄하고 다른 협동조합에 영상제작이나 블로그기자단 교육을 하며 돈을 버는 식이다. △편집, 디자인, 디지털, 저널리즘 실무 교육 △광고영업 △컨설팅 △발행비 지원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대학 독립언론 체계를 만든 것이다. 외대알리에 이어 지난해 회대알리, 이대알리가 창간됐고 올해 3월 세종알리가 창간됐다. 

▲ 정상석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 사진=금준경 기자.
물론 규모가 작다보니 광고영업이 원활하지 않다. 정상석 이사장은 “2020년까지 20개 알리 창간이 목적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펀딩을 시작했다. 펀딩 최소 목표액은 300만 원인데, 새로운 알리를 창간하고 한학기 발행비를 줄 수 있다. 이렇게 매체를 늘리면 부수가 많아져 광고를 받기도 편해진다”고 전했다. 

대학을 바꾸는 친구같은 언론

알리는 기존 대학언론과 무엇이 다를까? 정상석 이사장은 “차별화된 포인트는 친근함”이라고 강조했다. “학교 이야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역대 알리 표지모델이 모두 재학생이고, 재학생 소개기사의 비중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기사 형식 또한 학보처럼 기성언론 스타일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대화체인 경우가 많다. 

▲ N대알리 표지 모음. 사진=대학언론협동조합 제공.
그는 “알권리만 중요하다고 보지 않아 ‘놀권리’에 대한 기사도 많이 쓴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훈계하기 보다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재미있게 다루는 것이다.” ‘놀권리’기사는 대학 인근 식당에 대한 리뷰도 있고, “조별과제 무임승차하는 방법 너만 알려준다”기사처럼 “저녁시간마다 알바몬이 돼라 ”생각도 능력도 없는 척해라“ 등 ‘꿀팁’을 알려주는 기사도 있다.

학생들의 ‘알권리’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여기에도 역시 ‘친근함’이라는 원칙이 강조된다. “권리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독자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건다.” 이 같은 모토가 담긴 대표적인 콘텐츠는 이대알리의 ‘마이본관텔레비전’기사다. 이화여대 농성 중계영상을 캡쳐해 곳곳에 드립을 넣어 만든 콘텐츠다. 대학측에서 학생들에게 징계압박을 하자 “징계 읽어주는 남자” “질 때까지 징계 아니다” “여기 징계버거 하나 추가요” 등의 드립을 덧붙였다. 

▲ 외대알리의 김종철 이사장 비판기사(위)와 이대알리의 이대 본관 농성보도(아래).
알리가 일궈낸 성과는 적지 않다. 외대알리가 한국외대 총동아리연합회 회장의 비리를 폭로해 총동아리연합회장이 사퇴했고, 외국인 교수의 과거 범죄이력을 보도해 해당 교수의 재계약이 취소됐다. 세종알리는 창간호 때 교수의 성희롱 제보를 받고 취재에 들어간 직후 해당 교수가 사직의사를 밝혔다.

알리는 종이매체 중심인 기성 대학언론과 달리 페이스북을 통한 즉각적인 보도로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농성 때 이대알리가 이슈의 한복판에서 상시적으로 보도를 했다. 페이스북으로 바로바로 속보를 쓰고 영상을 올리고 사진을 올리니 반응이 좋았다.”

▲ 이대 학생들의 미래라이프대학 신설반대 투쟁 당시 이대알리 페이스북.
가장 먼저 창간된 외대알리 역시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학기 한국외대에선 일방적으로 학점평가방식을 바꾸려고 했다. 총학생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비상총회를 추진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외대알리가 페이스북을 통해 총학의 농성을 집중적으로 다룬 일을 계기로 비상총회가 성사됐고 평가방식 개편은 연기됐다.”

정상석 이사장은 대학생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과 학점교류를 통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가 졸업하고 취업하면 협동조합 역시 흔들리는 것 아닐까. 정상석 이사장은 “아직 입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부터 걱정해야 한다”면서 “협동조합은 직원 4명, 알리 구성원들까지 합치면 60명 규모다. 이것 자체가 활동이 아닌 창업 개념이다. 군대 다녀온 후에도 알리가 있으면 여기에 재취업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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