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인가. 포털 삥뜯기인가. 조선일보와 매일경제에 이어 한겨레가 네이버와 합작법인을 만들고 지난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네이버가 언론에 모바일 일부 주제판(섹션) 운영권을 넘기면서 언론과 상생을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유력 신문들이 포털을 ‘조진’ 결과 포털에 하청을 따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겨레는 지난달부터 네이버 주제판을 통해 영화 콘텐츠를 선보였다. 문화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서정민 한겨레 기자를 합작법인 씨네플레이의 대표로 파견했다. 지난 11일 서울 당산동 인근 씨네플레이 사무실에서 서정민 대표를 만나 협력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스낵컬쳐 만들기 위해 기자들 투입한 거 아냐”

포털과 언론의 합작법인이라는 점은 새롭지만 모바일에 특화된 콘텐츠는 이미 많다. 피키캐스트로 대표되는 연성 콘텐츠가 각광받자 포털도 카카오 1boon이나 네이버 포스트 등 새로운 스타일의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었다. 서정민 대표 역시 “스낵컬쳐는 이미 포털에 차고 넘친다”면서 “기자들이 이 사업을 맡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이신문이나 잡지는 사안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신문과 잡지기사를 그대로 옮겨다 놓으면 길어서 못 본다. 오프라인 매체가 갖고 있는 장점이 있고 모바일 스낵컬쳐만의 소구력이 있다. 이 두 개를 결합하고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한 번은 ‘부산행’에 대한 아침회의를 하는 중 ‘부산행이 1000만 관객을 넘길까?’라는 화제가 나왔고, 내기를 했다. 각자 그럴듯한 근거를 댔다. 이 과정을 방담 형식의 콘텐츠로 만들어 올렸다. 기자들의 예리한 분석이 있으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대화체로 주고받은 게 강점이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이런 건 아니다. 아직은 다양한 테스트를 하는 단계다. 사격에 비유하면 지금은 영점을 맞추는 셈이다.”

▲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콘텐츠에선 시행착오의 흔적이 보였다. 기자들이 실명 대신 닉네임을 쓰고, 블로그 글처럼 구어체로 쓰거나 이모티콘을 활용하고 있다. 단순히 영화를 소개하고 가십거리를 다루는 콘텐츠도 없진 않았지만 비평을 하거나 문화를 깊이 들여다보는 콘텐츠도 있었다. 로빈 윌리엄스 2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거나 ‘마이리틀 자이언트’를 통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철학을 들여다보는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광복절에는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리스티클하기도 했다.

씨네플레이가 기존 씨네21의 콘텐츠를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도 특징이다. 로빈 윌리엄스 2주기에 씨네플레이는 그에 대한 정보를 과거 씨네21기사를 인용해 만들었다. 영화 ‘덕혜옹주’가 주목받자 주연배우 손예진의 역대 사진들을 모은 콘텐츠를 씨네21 포스트 계정을 통해 선보였다. 모두 씨네21의 과거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것이다. “디지털에선 지금 ‘핫’하게 화제 되는 게 기사가 되지만, 씨네21이 구축해 놓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예전 콘텐츠들을 재가공하는 것도 의미 있다.”

예상과 다른 독자반응도 있었다. 깊이 있는 콘텐츠에 대한 반응도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서정민 대표는 “일본 공포물의 역사와 특징, 배경을 담아 일본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반응이 좋았다”면서 “주제판 내에 별도로 다양성 영화 섹션을 마련했는데, 어느 정도 반응이 있다. ‘씨네피디아’라는 영화용어사전이나 옛 걸작을 소개하는 코너 역시 유의미한 조회수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연예기사는 가십성 기사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주제판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설정해서 들어온다는 점이 다르다. 이들은 영화를 좋아하고,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이들을 위한 타겟팅 전략을 다르게 잡아야 할 거 같다.” 

▲ 씨네플레이가 운영하는 영화 주제판.

“포털 독자 선호 파악할 것”

씨네플레이는 대표 포함 8명의 직원이 있다. 이 중 씨네21에서 옮기거나 파견된 직원이 5명이고, 새로 고용한 직원이 2명이다. 네이버와 합작법인이지만 네이버 직원들과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지는 않는다. 서정민 대표는 “네이버 직원들은 주제판 내용에 대한 최종 검토를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시작한 씨네플레이의 주제판은 4주 만에 설정자 100만 명을 넘겼다. 분명한 성과지만 이미 주제판이 많이 늘어서인지 초창기 서비스를 선보인 매일경제나 조선일보보다는 성장이 다소 더딘 것도 사실이다. “그 사이에 주제판 종류가 많이 늘어난 것도 원인이겠지만, 조선일보의 잡앤(취업)과 매경의 레저 카테고리는 기존의 주제판들과 소재가 겹치지 않아 차별성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기존 연예와 겹친다는 점에서 사업하기 조금 더 힘든 상황이다.”

▲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이번 사업을 통해 한겨레가 얻을 수 있는 것과 네이버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서정민 대표는 “크지는 않지만 수익은 난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라며 “종이신문이 모바일로 옮겨가야 하는데, 종이신문에 갇혀 있으면 포털 등 일반 독자들이 어떤 콘텐츠를 선호하는지 알기 어렵고, 전략을 짜기 쉽지 않다. 이곳에서 경험하는 게 한겨레 디지털 전략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 입장에서 네이버는 왜 주제판을 내줬을까. 유력 언론에 주제판을 내주면서 언론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서정민 대표는 “네이버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PC 시절에는 절대강자였는데 지금은 수많은 앱들 중 하나가 됐기 때문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언론의 콘텐츠를 필요로 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포털 탓을 많이 하지만 포털을 죽인다고 다시 신문들이 위상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씨네플레이를 통해 단순히 영화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 외에 네이버와 함께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사업도 고려하고 있다. “네이버 영화 주제판을 설정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기존 네이버의 평점시스템이 있지만 신빙성이 높지는 않다. 신뢰를 갖춘 평점 시스템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왓챠처럼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용자의 별점 서비스를 네이버에서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서정민 대표는 또 “최근 법령이 개정돼 영화펀딩을 단순 후원이 아닌 투자 개념으로 할 수 있는데, 이런 사업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체된 문화기사, 변해야 산다”

문화분야 ‘통’으로 불리는 서정민 대표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한겨레에 사진기자로 입사했지만, 취재하고 글쓰는 게 더 적성에 맞아 펜기자가 됐다. 문화기자로 그를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참여정부 시절 여당(현재 더불어민주당) 출입을 하다 2004년 문화부로 발령 났다. 한때 편집기자 생활도 거쳤고, 최근에는 한겨레 ESC 팀장을 맡았다. 디지털 시대 언론이 기자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기자에게 한 분야를 오래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는 다양한 분야를 오갔다. 

서정민 대표는 “왜 나에게 씨네플레이 대표직을 제안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문화 분야 취재를 오래했고, 다양한 경험이 이번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각각의 경험이 의미가 있었다. 편집부에서 기사 디자인을 짜고 제목을 달면 독자 입장에서 기사를 보게 됐다. 이후 다시 문화부로 돌아오니 문체를 바꿔야 한다거나, 1인칭 시점으로 쓴다든지 하는 실험을 하게 됐다. 이런 게 다 밑바탕이 됐다.”

“기본적으로 초년 때는 정치사회 분야를 맡는 게 기자 훈련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취재하는 것과 관계맺기를 공부하게 된다. 한 분야를 깊이 파더라도 분야 내에서 다른 파트를 맡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음악기자를 오래한 편인데 이것만 계속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럴 때는 인접한 다른 분야를 맡게 되면 영감을 줄 수도 있다. 이후 다시 원래 분야로 돌아오면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측면들이 보인다. 이런 식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디지털 시대 문화 기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모든 뉴스의 방향성이 ‘노답’이지만, 정치사회 뉴스는 그나마 많은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니라 ‘뉴스AS’를 표방하면서 해설과 맥락을 덧붙이거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 맞는지 팩트체크를 하는 식이다. 빌코바치는 저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서 디지털 시대 기자의 역할을 현재 벌어지는 사건들의 의미를 밝혀주는 ‘의미 부여자(Sense maker)’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는 “식구들한테 쓴 소리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조심스럽다”면서도 “문화 기사들이 정체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문화부에 한번 발령이 나면 다른 부서로 잘 바뀌지 않는다. 전문성이 쌓이면 순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분야를 계속 맡으면 장점이 크지만 동시에 스타일이 굳어지고, 변화가 굳어지고 플랫폼의 변화에 둔감해진다. 원래 계속 보는 독자들은 계속 보는데 새로운 독자들은 적응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문화업계에서 나오는 공연일정과 보도자료를 전달만 해도 기사가치가 있었다. 이제는 인터넷에 정보가 쏟아진다. 그 어느 때보다 판단해주고 분석해주는 게 중요해졌다. 정보들이 쏟아지는데 그 중에서 전문성이 있는 기자들이 괜찮은 콘텐츠를 소개해주고 왜 괜찮은지를 설득하고 이해를 시켜주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기자, 나와 취향이 같은 기자가 추천해주는 음악과 영화는 보고 듣는다. 씨네플레이가 이런 걸 하는 것인데, 내가 하는 고민을 신문지면을 맡는 기자들도 같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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