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우병우 민정수석 등 연달아 터지는 검찰 출신 고위공직자 비리의혹을 계기로 검찰개혁 공론화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핵심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이다. 사퇴를 거부한 우병우 수석을 향해 압박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주의회복TF는 21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개혁의 가장 핵심 방안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별도의 독립적인 기구 형태로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진경준 검사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진경준 검사장의 주선으로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에게 1300억 원대의 처가 부동산을 팔았고, 이 대가로 우 수석이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보유를 알고도 문제삼지 않았다는 의혹이 일었다.

하지만 우 수석은 사실무근이라며 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우병우 수석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민정수석은 국세청,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을 관활하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병우 수석이 “(검찰이) 부르면 가야지만 난 모른다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검찰에게 가이드라인을 내려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란다”며 우 수석의 사퇴 거부에 힘을 실어줬다.

▲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진경준 검사장 주선으로 넥슨에 1300억원대 처가 부동산을 처분했다는 의혹과 관련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한 직원이 출근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독립적으로 수사할 기관이 바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다. 더민주 민주주의회복TF가 발표한 공수처 도입 법안에 따르면 공수처 처장의 자격조건은 법조인에 제한하지 않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학식과 덕망이 있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열어뒀다. TF는 “현재 국민의 눈높이, 법 감정과는 다르게 수사가 진행되는 현실을 개선하고, 전관예우와 법조인들만의 제식구 감싸기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공수처 처장은 추천위원회 추천을 받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 차장과 특별수사관은 처장이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도록 하여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공수처는 수사 뿐 아니라 기소, 공소유지의 권한을 갖는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독점주의를 제한하기 위해서다. 공수처 직원의 비리 등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를 받도록 하여 검찰과 공수처가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공수처의 수사대상 범위에는 전직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행정각부의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을 비롯해 대통령실 소속 대통령실장, 정책실장, 수석비서관, 기획관, 보좌관, 비서관, 선임행정관, 경호처장과 차장이 모두 포함된다. 법관 및 검사뿐만 아니라 감사원·국가정보원·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의 국장급이상 공무원도 포함된다. 대상자 본인과 함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가 모두 수사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공수처의 수사대상 범죄에는 공무원 직무상 관련된 범죄(형법 제122조 등) 및 횡령·배임(형법 제355조), 수재·알선수재(특정경제범죄법 제5조, 특정범죄가중법 제3조), 정치자금법 및 변호사법, 조세범 처벌법 등이 포함된다.

더민주가 발표한 이 법안의 특징 중 하나는 국회 원내교섭단체가 수사를 의뢰하면 공수처가 수사를 개시하도록 규정했다는 점이다. 국회에 청와대, 검찰 등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견제권한이 부여된다는 뜻이다.

더민주 민주주의회복TF는 공수처 설치 이외의 다른 검찰개혁 방안도 내놨다. TF는 “검찰 인사와 관련하여 검찰인사위원회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하고,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반영할 계획”이라며 “대검과 법무부의 감찰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현행 훈령으로 되어 있는 대검 감찰위원회 운영 규정 등을 검찰청법에 직접 명시하는 동시에 감찰규정을 강화하기로 했다. 대검 감찰 이후 보충적으로 수행되던 법무부 감찰을 대검 감찰과 동시에 수행하도록 법무부 감찰규정(훈령)에 대해서 개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TF는 또한 “오늘 발표된 사안은 그간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친 과제 중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대해 우선적으로 발표하는 것”이리며 “향후 위에서 제시한 나머지 구체적 검찰개혁 과제를 추가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민주주의회복TF 팀장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주의회복TF 검찰개혁 대책회의'에 참석해 발언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다른 야당도 공수처 설치에 동의하고 있다. 장정숙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21일 논평에서 “검찰개혁의 핵심중의 핵심인 고위공직자비리 수사처(공수처) 관련 법안은 8월 국회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 진경준의 재산공개이후 무려 100여 일 동안 법무부와 검찰은 꿀 먹은 존재처럼 아무소리도 내지 못하고, 국민과 언론만 분노하고 흥분했다”며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수처는 반드시 설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과 더민주는 공수처 설치에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1일 공수처 설치법을 발의했다. 노회찬 대표는 “지금이야 말로 하늘이 주신 검찰개혁의 최적기다. 공수처의 설치를 통해 고위공직자 비리수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검찰개혁은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서 관련 법안을 제출하면 국회 법사위 법안 제1소위에서 야2당과 논의하고 공조하여 8월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실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 설치는 2012년 대선 때도 야당 후보들의 공약으로 제시된 적이 있지만 여당과 검찰 등의 반대로 수차례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반대입장이다. 김현아 새누리당 대변인은 18일 논평에서 “야당에서 공수처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미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이라는 제도가 있는 만큼 기존의 수사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여 고위공직자 수사에 대한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1일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검찰개혁 방안이 그동안에 안 나온 게 아니다. 정부여당이 계속 반대해 왔고 또 야당이 좀 더 당력을 집중해서 실질적인 개혁방안을 관철시키는데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야당들이 그냥 문제 커지면 냄비 끓듯 제시하다가 또다시 용두사미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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