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최고임금’을 검색하면 “최저임금으로 검색하시겠습니까?”라는 안내문구가 뜬다. 그만큼 최저임금이란 용어는 흔하지만 최고임금은 아직 어색한 용어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가 이 어색한 용어를 법안으로 만들었다. 법인에 근무하는 임원 및 직원의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30배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정치권만 조용하다.” 심상정 대표가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꺼낸 말이다. 최고임금법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사이다 법’이라며 통쾌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언론에서도 최고임금법에 주목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여야 가리지 않고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 최고임금법을 두고 ‘속 시원한 법’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왜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빈부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상위 10%와 하위 10% 간의 격차가 OECD 평균 5~7배인데 우리나라는 11배다. 상대적 격차 뿐 아니라 광범위한 빈곤층이 형성되면서 절대적 빈곤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많다. 월급 200만원을 못 받는 노동자들이 1100만 명이다. 이런 점을 다들 피부로 공유하고 있고 새누리당마저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이야기할 정도다. 문제는 상황이 어렵다는 말만 무성할 뿐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의 흔적,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최고임금법에 빈곤을 해결하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최고임금을 제한하자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의 탐욕을 견제하기 위해 많은 선진국에서 고민하고 제도화한 것을 벤치마킹해서 한국 상황에 맞게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의 별칭인 ‘살찐고양이법’도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다. 이미 선진국에서 검토한 내용이고, 사회주의법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법이다.”

임금격차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임금 제한이 법적 정당성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임원의 보수는 회사와 개인 간의 계약에 대한 것이며 이러한 ‘계약자유의 원칙’은 근대 민법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심 대표는 “위법 요소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법적인 자유계약제도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라면 고금리와 폭리를 제한하는 이자제한법, 분양가상한제 이런 것들도 다 문제다. 최고임금제 도입을 두고 법적 잣대를 제기하는 건 맞지 않다. 헌법 119조2항(경제민주화 조항)에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해 규제와 조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자유계약제’는 헌법정신 아래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고 이로 인해 이자상한제와 분양가상한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 비슷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이 법을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동의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 격차 해소이고 격차 해소를 위해 글로벌한 발상으로 자리 잡은 최고임금제를 포퓰리즘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불평등을 외면하고 탐욕을 추구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영국의 보수정치학자인 에드먼드 버크는 ‘인간의 탐욕에 제재를 가하지 않으며 자유를 침해 할 수 있기에 의회는 인간의 탐욕을 제지하기 위한 제도를 만드는 게 과제’라고 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최고임금을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은 약탈적 자본주의의 사고이고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작동되는 자본주의에 대해 개념이 없는 거다.”

- 이런 논란 탓인지 해외에는 임원 보수를 직접 제한하기보다 보수결정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추상적인 기준을 정해놓고 (보수를 결정할 때) 제3기관의 심사를 거치거나 주주총회, 소송을 통해 보수를 조정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사외이사는 대주주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주총에서 결정한 기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직접 제한하는 방식이 더 타당하다고 봤다. 경제 거버넌스가 투명하고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보장된 유럽과 우리나라는 조건의 차이가 있다.”

최고임금법의 효용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임금이 아니라 배당, 스톡옵션, 임원활동비 등 최고임금법을 피해나갈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을 제한할 게 아니라 증세를 해야 진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진다는 것.

심상정 대표는 “2차 분배인 조세제도 개편 이전에 1차 분배에 해당하는 최고임금법을 통해 격차를 줄이려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격차보다 자산격차가 훨씬 심한 것이 사실이고 자산격차 해소에는 증세가 해법이지만 대부분의 서민과 노동자의 소득은 임금에 기반하기에 1차 분배를 바로잡아야한다는 주장이 더 공감대가 넓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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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 최고임금법보다 증세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최고임금법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금소득 외에 자산소득, 이자소득, 배당소득 등 자산소득에 대한 형평성 제고가 필요하다. 정의당은 총선에서 사내유보금, 이자 및 배당, 임대료 수입에 대해 10% 할증과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월 200만원 받는 노동자가 11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임금이 너무 낮아 1차 분배가 절실하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소비여력이 없으니 내수경제가 돌아갈 수 없다. 조세를 통한 2차 분배를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그만큼 1차 분배도 중요하다는 문제제기다. 임금의 바닥과 천정을 동시에 논의하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 최고임금법이 정의당의 ‘정책패키지’ 중 하나라는 뜻인가

“불평등 해소 3대 패키지로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한 공정페이, 원하청 관계를 바로잡는 초과이익공유제, 사회복지세를 중심으로 한 세재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공정패키지의 내용 중 하나가 최고임금법이다. 공정패키지의 하나로 한국현실을 반영하는 기본소득제 도입방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막바지 검토 중이다.”

- 여소야대 정국이 됐으니 정의당이 준비한 경제민주화 법안도 국회에서 통과될까

“내가 정무위를 택한 이유도 우리 당이 내건 정의로운 경제를 입법화하는데 주력하기 위해서다. 정무위 뿐만 아니라 20대 여소야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첫 임시국회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 등 야당들이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들이 많은데 주장해놓고 어떠한 실천도 하지 않은 채 임시국회가 끝나버렸다. 정의당이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위해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했지만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반대해서 개최되지 않는 상황이다”

- 거대 야당도 별로 의지가 없다는 뜻인가

“불평등해소에 대해 많은 말을 쏟아내지만 실제 입법으로 성과를 내기 위한 의지가 뒷받침되느냐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보수정당부터 진보정당까지 모두 경제민주화, 복지를 내걸었다. 그 뒤에 뭐가 실천됐나. 박근혜 정부 들어서 경제민주화는 고사성어가 됐고 제1야당은 늘 새누리당이 반대한다는 핑계를 준비한다. 이제 유권자들이 말이 아니라 실천의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가 됐다. 큰 정당은 말을 앞세우지만 의지가 없어서 안 하고 정의당 같은 작은 정당은 의지는 넘치지만 힘이 없어서 못한다. 정치적 역량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갖고도 못하는 쪽에 힘을 실어야 변화가 있지 않나.”

- 최근 사드 배치를 두고도 정의당은 더민주보다 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사드는 단순히 전력 보강을 위한 무기가 아니고 한반도 주변정세에 큰 전략적 변화를 가져오는 사안이다. 또한 배치에 들어갈 비용, 부지선정에 따른 사회적 갈등 고려할 때 헌법 60조가 규정하는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큰 재정을 수반하는’ 사안이기에 헌법 60조에 따라 국회 논의 절차를 거쳐야한다는 것이 정의당의 입장이다. 더민주는 내년에 정권을 잡으려면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하기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유감스럽다. 여론을 의식한 무소신이 과연 유능한 안보인지 되묻고 싶다. 산토끼 의식하다 집토끼 크게 잃어버릴 것이다. 이런 행동은 더민주가 오랫동안 정체성으로 제시해온 평화정책의 수정을 의미하고, 지지자들의 큰 실망과 이탈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심상정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 야당 지지층이 보기에 정의당의 한계도 명확하다. 당장 언론 전문가로 데려온 추혜선 의원도 미방위에 배치시키지 못했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이 갖는 막대한 비중을 생각할 때 언론개혁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추혜선 의원을 발탁했는데 정작 상임위에 제대로 배정하지 못해서 대표로서 속이 많이 상하고 추 의원에게도 미안하다. 여소야대라지만 교섭단체가 둘에서 셋으로 늘었을 뿐이고 패권의 당사자가 둘에서 셋으로 늘어난 차이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 피해자가 추혜선 의원과 정의당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개혁이 모든 사회정치개혁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을 갖고 지속적으로 싸워나가겠다. 추 의원이 외통위로 갔지만 외교통일분야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에 거기서도 최선을 다하리라고 보고, 정의당 대변인으로서 언론개혁의 사명은 계속 추혜선 의원의 과제로 안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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