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먼나라 이웃나라’ ‘정의란 무엇인가’ 모두 이름이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다. 국내 최대 출판사로 꼽히는 김영사가 만든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들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지난해 7월 김영사의 서울지역 총판인 북촌이 김영사의 ‘도서 밀어내기’를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는데, 이 책들이 모두 ‘밀어내기’의 사례로 지목된 것이다.

이 논란은 2015년 9월 국감에도 등장했다. 이운룡 새누리당 의원은 “김영사가 지역총판거래처의 판매 지역을 일방적으로 변경해 강요에 의해 계약서를 재작성, 또 과다 물량에 대해 밀어내기식 영업행위를 하고 현금 수금을 강요했다, 또 현금 수금 실적이 미미하다며 도서 출고를 정지하고 서점으로 배포된 도서 반품을 요구하는 등의 사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해서 지금 제소가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철저히 조사해달라’는 이운룡 의원의 말에 “파악해보겠다”고 답했지만 이후 변한 것은 없었다. 이운룡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언급한 지역총판거래처는 도서총판 ‘북촌’이고, 공정위 제소의 당사자는 북촌의 김형준 대표다. 김 대표는 2015년 7월2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 사이 북촌은 폐업했고 김 대표가 담보로 잡아둔 부친 소유의 아파트도 처분될 상황에 놓였다.

▲ 지난해 9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강유 김영사 회장. 연합뉴스 TV 갈무리.
쟁점1. ‘김영사 서울지사’에서 일반총판이 된 북촌

사건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사는 2011년 12월12일 북촌과 계약을 맺었다. 북촌이 김영사의 도서를 정가의 55%에 공급받고, 서울지역 영업권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북촌이 김영사의 책을 서울지역에 독점 공급하는 ‘김영사 서울지사’가 된다는 뜻이다.

김형준 대표는 “김영사에서 일하다 퇴사를 앞두고 있는데 회사 측에서 ‘앞으로 지사체제를 운영할 건데 서울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나’라고 제안했다”며 “출판업이 어려운 걸 잘 알고 있지만 김영사의 단일 브랜드 총판, 게다가 서울지역 영업권을 보장받으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해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2011년 11월30일 퇴사한 김 대표는 퇴사 10여일 만인 12월12일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북촌은 김영사 사옥이 있는 지역 이름이다. 북촌이 사업자 등록을  한 2011년 12월12일 김영사와 북촌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북촌이 ‘김영사 서울지사’를 전제하고 탄생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계약은 한 달을 가지 못했다. 2012년 1월5일 김영사는 북촌을 서울지사가 아니라 지역총판의 하나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서울지역 총판사에도 도서를 공급하겠다는 뜻으로, 북촌의 서울지역 영업권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도서공급가액도 원가의 55%에서 60%로 바뀌었다. 김 대표는 “보통 김영사에서 55%에 받아 서점에 65%에 넘기면서 마진이 10% 남는데, 55%로 받으면 마진이 5% 밖에 안 남는다. 경상비 빼고 인건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 상황은 2014년까지 이어졌다. 김 대표는 “새로 온 사장이 서울지사를 운영하지 않는 게 낫겠다며 엎어버렸는데, 회사 임원들은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서점에 책 다 깔아놨는데 회수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믿고 일단 일반총판으로 해보기로 했다”며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사장을 설득하지 못했고 2~3년 간 김영사에 납부하지 못한 돈만 쌓여갔다. 그 때 다 수거하고 끝냈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김영사는 계약이 변경된 것은 맞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영사 관계자는 1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영업을 잘 모르는 당시 대표가 계약했으나 회사에서 ‘지사체제로 가긴 힘들겠다’고 판단해 1~2주 만에 바꾸고 공급율도 올렸다.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 없다”며 “서울지역 모든 서점에 유통하는 영업권을 세 명이 일하는 북촌에 다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2011년 말부터 거래해서 작년에 망하기 전까지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이제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쟁점2. ‘도서 밀어내기’ 있었나

총판은 구조적으로 대형출판사에 비해 ‘을’이다. 인기 있는 대형출판사 책을 유통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유통 독점을 보장받지 못하면 출판사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을 ‘밀어내기’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떠안을 수밖에 없고 책이 팔리지도 않았는데 돈을 달라고 독촉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출고정지를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북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2012년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이 대표 사례다. 대선을 앞둔 2012년 7월 19일 김영사에서 출간한 ‘안철수의 생각’은 수개월 만에 50만~60만 부가 팔려나갈 정도로 대박이 났다. 하지만 책은 일부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만 풀리고 중소서점에는 거의 풀리지 않았다.

▲ 2012년 7월 23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이 매대에 쌓여 있다. ⓒ연합뉴스
이에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7월26일 성명을 내고 “안철수의생각이 1분에 수십권씩 팔려나간다고 하는데 전국 2000개 영세 지역서점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항의가 빗발치자 김영사는 불균형 배분을 인정하고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사과문을 보냈다.

북촌은 이 과정에서 북촌도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김형준 대표는 “안철수의 생각이 잘 팔려나가서 이 책만 잘 팔아도 그동안의 손해를 다 만회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김영사에서 서울지역에 유통하라고 고작 300부를 보냈다. A급 거래처에만 1부씩 보냈는데, 서점에서 난리가 났다”며 “한 두 달 지나 조금 시들해지자 그 때가서는 여유가 있다며 원가 60%로 1000~2000부를 내려 보냈다”고 설명했다.

김영사의 대표작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도 비슷한 사례다. 김영사는 온라인 오픈마켓을 통해 ‘먼나라 이웃나라’를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 할인된 가격에 유통했다. 오프라인 서점주인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온라인에서 싸게 풀어버리면 오프라인에서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형준 대표는 “우리도 싸게 받을 수 없냐고 물어봤더니 15권짜리 세트물을 500~1000개씩 현금으로 사가라고 하더라. 팔리지도 않을 것을 어떻게 가져가냐고 했더니 100~300개 가져가라고 부수를 낮춰줬다”며 “북촌에서 한 달에 10~20개 소화되는 상황인데 가져가야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재고는 쌓이고 김영사에 납입해야 하는 미수금은 늘어났다는 것이 북촌의 입장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사건도 있었다. 2014년 6월부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김영사의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남은 책을 팔 수 없게 됐고, 김영사가 이 책을 북촌이 매입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 대표는 “창고에 2만 부가 있다며 매입 확인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그 때서야 ‘북촌이 김영사의 서울지사 아니냐’며 부담을 같이 지자고 하더라”며 “반품 없는 조건으로 2만 부를 가져가라는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한다고 버티다 어쩔 수 없이 2100부를 매입했다”고 전했다.

북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5년까지 1년 간 북촌이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김영사가 ‘밀어내기’하듯 공급한 책은 1만 부에 달하며 총액은 1억 원이 넘는다. 주문하지도 않은 책을 공급하고 월말이면 현금 수금을 요구해 회사가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김영사는 밀어내기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김영사 관계자는 “밀어내기라는 용어을 두고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신고인 측(북촌)에서는 남양유업과 비슷한 경우라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김영사가 책을 밀어내고 돈 받은 내역도 없고 반품도 다 받았다”며 “판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하겠지만 그런 신고 내용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김강유 김영사 회장도 같은 입장을 취했다. 김 회장은 2015년 9월 국감에서 “주문하지 않은 책을 공급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 오픈마켓에서 판매되는 먼나라이웃나라.
하지만 김영사가 도서 밀어내기를 했다는 여러 증언이 존재한다. 김형준 대표가 지난 7월8일 김영사의 전 경영지원본부장이던 송아무개씨로부터 받은 확인서에 따르면, 송씨는 “김영사의 강요에 의해 북촌에서 (먼나라 이웃나라) 100세트를 오픈마켓보다 비싸게 공급받았다”고 증언했다.

송씨는 또한 “김영사에서 추가 제작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저작권이 만료돼 사실상 폐기처분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타 유통사에 판매할 수 없으니 북촌에게 2만 부 전량 매입할 것을 강요했고 매입조건으로 ‘현금구매, 반품없음’이라고 쓰여진 확인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하여 2100부 북촌에서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희영 전 김영사 마케팅본부장 역시 2015년 국정감사에서 “1만 부를 북촌 사장과 협의 없이 밀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 현재 출판사 총판 거래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부당행위”라고 증언했다.

쟁점3. ‘2억5천만원’ 보상은 왜 이루어지지 않았나

김영사와 북촌의 관계가 바로 잡힐 기회는 있었다. 김강유 김영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2014년 4월23일 김영사 사옥에서 북촌 관련 끝장토론회가 열린다. 김강유 회장은 이 자리에서 김영사가 처음에 계약을 깬 것이 잘못이라며 피해금액이 얼마인지 물었다. 김형준 대표가 ‘2억5천만 원’을 이야기하자 김 회장은 “2억5천만 원을 보상해주라”고 지시했고 공급가 55%를 약속했다.

김강유 회장은 2015년 9월16일 국정감사에서 “전 사장 시절에 있었던 일인데 제가 보고받으니까 북촌이 억울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부사장한테 지시를 해서 억울한 점이 없도록 그렇게(손해배상)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희영 전 마케팅본부장도 국감장에 출석해 “그때 김강유 회장이 토론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김영사에서 북촌에 갑질을 했으니까 그 손해에 대한 보상금 2억5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현 김장기 부사장에게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약속한 내용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2014년 5월25일 김영사는 북촌 보상액이 이사회에서 2억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변경됐다고 밝혔고 9월12일 북촌이 김영사에 납부해야할 수금액 잔액에서 1억 원을 공제 처리했다. 2014년 5월20일에는 공급가 55%를 보장하는 계약서를 작성했으나 ‘2014년까지 55% 공급’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서울지역 영업권’도 마찬가지다. 김형준 대표는 “새로운 계약서에 해당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구두로는 약속했다. 계약서에 명시하지 못한 점은 잘못이지만, 회장이 약속한 내용이라 지켜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북센’ 등 김영사의 책을 서울지역에 유통하는 총판이 있었고, 북촌이 북센에 도서 공급 중단을 요구했지만 북센은 김영사와 협의된 사항이라고 답했다.

김영사 관계자는 “2억5천만 원은 북촌에서 제시한 금액이다. ‘회생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물어봤더니 (북촌에서) ‘2억 5천 까달라’고 한 건데 법적으로 까줄 이유가 없다. 직원이었고 그대로 놔두면 폐업할 게 뻔해서 회생의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라며 “대신 2억5천만 원은 과하고 1억 원으로 하자고 해서 동의하고 합의서도 썼다”고 말했다.

김강유 회장은 2015년 9월16일 국정감사에서 ‘왜 1억 원만 보상했나’라는 이운룡 의원의 질문에 “나머지는 일방적인 이야기지 실제로 2억 원 넘게 그쪽이 피해본 것은 아니다. 양쪽 이해가 엇갈린다”며 “합당한 보상을 하라고 해서 상의해서 피해에 대해 1억을 보상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운룡 의원은 또한 ‘김영사가 북촌 이외의 여타 도매상에게 도서를 공급하게 함으로써 거래계약을 좀 위반한 사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이에 “바로 그 점 때문에 (1억 원을) 보상한 것”이라고 답했다.

▲ 북촌이 주장하는 김영사 밀어내기 내역.
쟁점4. 미수금 갚아라 vs 갚지 못한 이유가 있다

이후 김영사가 북촌에 미수금을 갚으라고 요구하고 갚지 못하면 책 출고를 정지시키는 일이 반복됐다. 그 결과 2014년 12월 북촌은 1차적으로 폐업한다. 김 대표의 아내가 회사를 인수했으나 김영사의 요구는 계속됐고 2015년 5월29일 북촌은 총판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김영사의 최종 통보를 받았다. 계약해지 후 김영사는 잔금을 모두 갚으라며 담보로 잡혀있던 김 대표 부친 소유의 부동산을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사 관계자는 “1억 원을 차감해주고 1년 동안 지켜봤는데 갚아야할 돈이 계속 불어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몇 차례 독촉했다”며 “갑의 횡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입장에서도 북촌이 잘 되어야 하지 않나. 갚아야할 돈을 변제하지 않으려고 (공정위 등을) 활용하려는 면도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대표는 “김영사에 줘야할 돈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당초 계약대로 55%에 책을 공급받고 서울지역 영업권을 보장받았더라면 수년 간 빚은 안 지고 김영사에 돈을 다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김 대표는 “이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는데 이게 어떻게 북촌만의 문제냐. 아직 김강유 회장이 보상을 약속한 2억5천 중 1억5천이 남았다”며 “김영사에 줘야할 돈이 9700만 원인데, 회장이 약속한 보상만 해줘도 돈을 다 갚고도 남는다”고 설명했다.

북촌과 김영사 모두 공정거래위원회의 판정만 기다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판정에 따라 2013년 남양유업 사태의 ‘출판계 버전’이 탄생할 수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7월에 접수됐으나 중간에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넘어갔다 (김영사와 북촌 간) 조정이 성립되지 않아 다시 공정거래위원회로 돌아왔다”며 “조사 중인 사안이기에 자세한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긴 어렵다. 최근까지 김영사에 대해 자료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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