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누군가 잃어버린 핸드백을 줍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잃어버린 모자가 알고 보니 대통령의 모자라면? 주운 가방 속 수첩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친필 편지가 꽂혀 있다면?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랑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로랭이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 <빨간 수첩의 여자> 두 권의 소설을 들고 처음 한국을 찾았다. 기자, 영화감독, 골동품 열쇠 수집가까지 색다른 이력을 가진 작가의 상상력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마법과도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빛을 발한다. 마치 뒤죽박죽 엉킨 일상의 실타래에 숨어 있는 특별한 순간을 모으는 수집가처럼.

로맨틱한 수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별것 아닌 사소한 내 일상에도 마법 같은 순간이 숨어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 프랑스의 소설가 앙투안 로랭 (사진 기준서 스튜디오춘)

Q 한국에 처음으로 두 책이 동시에 출간됐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표지가 마음에 쏙 들어요. 한국에서 두 책이 동시에 나와서 일관성이 느껴져요. 그게 마음에 듭니다. 또 한국에 독자가 있다는 게 놀랍고 기쁩니다. 번역본이 많이 나왔는데, 프랑스와 가장 떨어진 나라가 한국이에요. 지난달에 중국판이 나왔는데, 한국이 조금 더 멀잖아요. 한국이 이겼네요.(웃음)

Q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소설을 쓸 줄은 몰랐는데… 모디아노의 책을 모두 읽었거든요. 모디아노의 세계가 몇 년에 걸쳐 저를 작가세계로 이끈 것 같아요. <빨간 수첩의 여자>에 모디아노가 등장하는 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오마주예요.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소설을 모디아노에게 보냈는데,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기쁘죠.

▲ 프랑스의 소설가 앙투안 로랭 (사진 기준서 스튜디오춘)

사소한 일상에서 찾은 마법 같은 이야기

Q 소설을 쓰기 전에는 기자, 영화감독, 골동품 열쇠 수집가까지 정말 색다른 일을 했습니다. 여러 경험이 글을 쓰는 데 영감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같은 일만 할 때는 경험도 늘 비슷해요. 그런데 전 여러 직업을 가지다보니까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죠. 그런 경험은 인생을 꾸려나갈 때도 도움이 돼요. 전 골동품 열쇠를 수집하는데, 열쇠만 수집하니까 자물쇠는 없거든요. 이 열쇠로 어떤 문을 열 수 있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게 오히려 낭만적인 생각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다양한 경험은 책을 쓸 때도 유용해요. <빨간 수첩의 여자>에 나오는 주인공 로르의 직업은 실제 있는 직업군이에요. 액자에 금박 입히는 일을 하는 사람과 5년 전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거든요.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소설에 넣었어요. 그런 것도 제 경험에서 온 거죠.

Q 두 권의 소설에 모두 실존인물이 나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소설은 환상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로 느껴져야 공감할 수 있어요. 언제 읽더라도 감동을 줄 수 있으려면 소설을 쓰기 전에 리서치를 많이 해야 해요. 작품에 나오는 공간은 제가 잘 알고 있는 골목길을 배경으로 했고요, 또 미테랑 대통령이 쓰고 다니는 모자를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어요. 익숙한 물건이나 장소를 이야기의 소재나 배경으로 삼은 건 기발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현실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려고 하죠.

그런 이유로 실존인물을 등장시키는 걸 좋아해요. 현실감이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잠깐 등장만 하는 게 아니라 인물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해요. 모디아노의 경우에는 그의 말투나 평소 습관을 정확하게 구현한 거예요. 소설에 모디아노가 아침마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산책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것도 리서치를 해서 알게 된 내용이에요.

Q 일상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인가요? 경험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런 편인 것 같아요. '상황'의 힘으로 글을 쓰거든요. 그런데 상황만으로는 이야기가 완성이 되지 않잖아요.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글을 쓰려면 그걸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죠.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을 때 내 삶과 비슷한 요소를 찾으면 호감이 가고 공감하게 되잖아요. 평범한 사람들한테 일어나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실제 자주 가는 파리의 어떤 카페에 좋아하는 모자를 두고 나온 적이 있어요. 저는 그 모자를 다시 찾지는 못했는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모자를 주웠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상상을 한 거죠. 어떻게 보면 이 책으로 복수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웃음)

Q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캐릭터나 이야기를 모두 계획한 다음에 글로 옮기는 편인가요?

글을 계획적으로 쓰는 편은 아니에요. 물론 중요한 요소는 가지고 시작을 하지만 글을 쓰면서 등장인물이 이끄는 대로 흐름을 따라가요.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상했던 대로 글이 풀리지 않는다는 건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처럼 생생하다는 뜻이니까요. 등장인물이 살아 움직이죠. 그럼 제 자신도 놀라기도 하고 겁을 먹기도 해요. 그럴 땐 글쓰기가 모험처럼 느껴져요.

▲ 프랑스의 소설가 앙투안 로랭 (사진 기준서 스튜디오춘)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은 가능하다"

Q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도 그렇고, <빨간 수첩의 여자>도 사소한 물건을 갖게 되면서 그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아주 행복하게. 삶을 통째로 바꾸는 물건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건가요?

삶이 바뀌는 게 책에 나오는 물건의 힘인지, 아니면 책을 읽는 독자의 힘인지는 알 수 없어요. 글을 쓸 때도 알 수 없게끔 썼고요. 현실에서도 마술 같은 힘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어떤 힘이든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은 분명히 있어요. 그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또 제 소설은 늘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전 작품 속 주인공에게 불행한 운명을 안겨주고 비극적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게 어려워요. 제 소설이 해피엔딩인 건 그게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Q 두 책을 읽어보면, 사소한 상황이나 물건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또 해결되기도 합니다. '사소함'이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전 미신을 강하게 믿는 편인데, 인생에는 운명이라는 게 있고, 그 운명은 아주 사소한 걸로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운명한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지고, 또 사소한 걸로 표현돼요. 그래서 사소한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봐요. 아주 작은 일이 큰 효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아끼는 모자를 카페에 두고 나간 적이 있다고 얘기했잖아요. 만약 사소한 그 일이 없었다면 아마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는 쓰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모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책을 썼고, 이후에 소설가가 될 수 있었죠. 그리고 지금 여기 한국에 오게 됐잖아요. 모두 다 연결된 거죠.

Q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이야기나 쓰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쓸 계획이에요. 더 이상의 플롯을 공개하는 건 곤란해요.(웃음) 이후에 쓰고 싶은 이야기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일 테고, 역시나 마법 같은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Q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두 소설을 읽고 독자들이 즐거움을 많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두 책 모두 프랑스적인 요소가 있어요. 그렇지만 프랑스만의 분위기를 받아들이면서도 프랑스와는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읽었으면 좋겠어요. 문화적 바탕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 상황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잖아요. 우리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나의 일이기도 하니까요.

▲ 프랑스의 소설가 앙투안 로랭 (사진 기준서 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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