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투자로 2조 5000억 원 이상을 챙겨 나간 론스타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43억 달러의 소송을 냈죠. 소송에 이기면 네 배 남는 장사가 되겠죠. 론스타는 거대한 음모의 한 조각일 수도 있습니다. 론스타와 한 편이었던 자들이 론스타와 소송에서 우리 정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죠. 내부의 적을 밝혀내지 않고서는 외부의 적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미디어오늘이 '투기자본의 천국' 기획 연재를 다음 스토리펀딩과 동시 게재합니다.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3만원 이상 후원하시면 단행본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펀딩 바로가기. <편집자 주>

2001년 5월, 미국 월스트리트는 한국에서 날아온 전자우편 한 통이 돌고 돌면서 화제가 됐다. 발신인은 칼라일그룹 한국 사무소 직원인 피터 정, 그가 미국의 친구들에게 보낸 전자우편 제목은 “나는 왕처럼 살고 있다(Living like a king)”였다. 낯 뜨거운 내용이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어. 왜 방이 세 개나 필요하냐고? 좋은 질문이야. 안방은 나와 뜨거운 영계들(chicks)이 앞으로 2년 동안 뒹굴 퀸 사이즈 침대가 있는 곳이지. 두 번째 방은 내 영계들을 위한 할렘이고 세 번째 방은 너희 바람둥이들(fuckers)이 한국을 방문할 때 머물 곳이야. 나는 이곳에서 왕이야. 이틀에 한번 그리고 주말마다 한국 최고의 클럽과 술집에 가는데 바이(buy) 사이드 업무를 더 배우면 날마다 가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 밤마다 여자들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한번 나가면 적어도 3명의 영계들이 우리 집에 오고 싶다고 달라붙어. 은행가들(bankers)로부터 이런 저런 사업 제안을 받고 있는데 이들은 나의 변덕스러운 취미(골프, 최고의 저녁식사, 술집 접대 등)를 모두 충족시켜주지. 그러니까 너희 바람둥이들은 나와 연락을 끊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 전자우편은 그의 전 직장인 메릴린치를 비롯해 월스트리트는 물론이고 세계 전역으로 쫙 퍼졌다. 블룸버그와 다우존스 등이 이 전자우편을 소개했고 며칠 뒤에는 워싱턴포스트까지 비중 있게 이 사건을 다뤘다. 결국 왕처럼 살던 그는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일부 다루기는 했지만 외신을 인용해 그의 여성 편력을 가십거리로 다뤘을 뿐 그 의미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세계의 여러 언론이 이 우스꽝스러운 전자우편에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은 칼라일이 그 무렵 한미은행의 최대주주였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건을 두고 “한국 은행 산업의 추악한 단면”이라고 비난했다. 그때만 해도(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칼라일이라는 이름이 낯설었고 칼라일이 한미은행의 대주주라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외자유치에 목을 맸던 그 시절, 검은 머리 외국인들

피터 정이라는 칼라일의 직원은 프린스턴대 출신의 미국 교포 2세로 그때 나이 24세였다. 그가 한국에서 한 일은 뭐였을까. 왜 한국의 은행가들이 그에게 줄을 서서 온갖 향응을 제공해야 했을까. 이 전자우편은 칼라일 같은 외국계 펀드들과 피터 정 같은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케 하는 한 단편이다.

돌아보면 2000년과 2001년, 그 무렵에는 뉴브리지나 칼라일에 대해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다. 이 전자우편 사건이 터졌을 때도 칼라일이 한미은행의 대주주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 칼라일이 JP모건 뒤에 숨어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칼라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나는 2003년 외환은행 불법매각 사건을 추적하면서 론스타와 칼라일, 뉴브리지 등 사모펀드들이 한국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한국 경제를 농락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게 시장의 원리라고 말한다.

적어도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숱하게 팔려나간 기업들,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 론스타는 그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먼저 “왕처럼 살고 있다”던 칼라일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하자. 칼라일의 역사를 다룬 ‘철의 삼각지대’에 추천사로 썼던 글의 일부를 다시 인용하고 일부 보완한다.

칼라일은 1987년 스티븐 노리스와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 그들이 자주 모이던 호텔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이들은 알래스카의 부실기업들을 지원하는 특별법을 이용해 우량 기업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재미를 봤고 여기서 얻은 이익이 칼라일의 설립 자본금이 됐다. 기회를 잘 잡기는 했지만 이때만 해도 칼라일은 다른 수많은 사모펀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칼라일 호텔. ⓒ위키미디어.
몇 차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칼라일은 이 사업에 인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래서 칼라일은 정치권에 줄을 대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결국 성공한다. 이 부분이 칼라일이 다른 사모펀드들과 다른 점이다. 기대 수익이 높으면 그만큼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투자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칼라일은 위험을 피하거나 줄이는 방법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의 마법

칼라일이 가장 먼저 끌어들인 퇴직 관료는 닉슨 전 대통령의 인사담당관이었던 프레데릭 말렉. 공화당 전국위원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던 그가 닉슨 시절의 스캔들이 뒤늦게 문제돼 물러나자 칼라일은 그를 재빨리 영입한다. 말렉은 그 뒤 칼라일이 케이터에어라는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회사의 인수는 칼라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의 아들이었던 무렵, 그러니까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무렵인 1990년, 칼라일은 아들 부시를 케이터에어의 이사로 영입한다. 항공기 기내식을 납품하는 이 회사의 실적은 형편없었지만 칼라일은 이를 계기로 현직 대통령과 그의 아들을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이게 된다. 이들의 인연은 물론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칼라일은 이에 앞서 1989년, 프랭크 칼루치 전 국방부 장관을 영입했다. 칼루치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과 대학시절 룸메이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은 아버지 부시 시절 장관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들 부시 시절 장관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칼루치는 그 뒤 칼라일이 퇴직 관료들을 끌어들이는 데 다리를 놓은 것은 물론이고 칼라일이 군수산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칼라일은 1990년 군수회사인 BDM을 헐값에 사들여 칼루치를 회장으로 앉힌다. 전직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에 납품하는 군수회사의 회장으로 옮겨간 것이다. BDM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칼라일은 1994년 이 회사를 주식시장에 공개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된다. 이밖에도 칼라일은 1992년 파산 위기에 몰린 LTV의 항공 부문을 인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칼라일과 경쟁해서 탈락한 상대는 미국 최대의 군수회사인 록히드마틴이었다.

1993년에는 제임스 베이커 국무부 장관과 리차드 다르멘 예산관리국장이 퇴임하자마자 칼라일로 옮겨갔다. 칼라일은 갑자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됐고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가 칼라일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칼라일은 이를 떠들썩하게 홍보했고 소로스의 뒤를 이어 씨티그룹과 공무원 퇴직 연금 같은 굵직굵직한 투자자들이 칼라일에 돈을 싸들고 왔다.

9·11 테러로 가장 많은 돈을 번 기업

칼라일의 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인맥도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영국 수상이었던 존 메이저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박태준 전 국무총리, 필리핀의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태국의 아델 파냐라춘 전 총리 등이 칼라일에 합류했다. 칼라일은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아들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도 앞장섰고 결국 성공했다. 부회장으로 있던 제임스 베이커는 아예 부시의 선거 캠프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칼라일은 심지어 9·11 테러의 주범으로 꼽히는 오사마 빈 라덴 집안과도 거래를 했다. 9월 11일 아침, 아버지 부시는 샤피크 빈 라덴과 한 자리에 있었다. 칼라일 연례 투자자 회의에서였다. 샤피크 빈 라덴은 오사마의 이복 형제다. 그는 칼라일의 주요 투자자 가운데 한 명이고 아버지 부시는 칼라일의 고문이다.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무기 구입 예산을 크게 늘렸고 칼라일의 자회사들은 덕분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9·11 테러로 가장 많은 돈을 번 곳이 칼라일이란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 조지 부시와 빈 라덴 가문의 네트워크. ⓒ미디어오늘 이우림 기자.
전직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와 사업 파트너라는 사실, 그리고 테러와 전쟁 덕분에 이들이 함께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때 칼라일의 자회사에서 일했던 아들 부시는 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이라크를 공격했다. 이 모든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과 칼라일의 이해가 충돌할 때 이들은 어느 편에 서는 것일까.

칼라일의 투자자산 규모는 2015년 3분기 기준으로 1877억 달러로 3340억원의 블랙스톤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운용 인력은 7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세계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200여개, 이들 기업이 고용한 임직원 수는 65만명에 이른다. 구스타보 슈워드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칼라일 같은 사모펀드들은 뉴욕이나 런던 사무실에 앉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백개 투자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며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했던 GE의 잭 웰치 전 회장보다 영향력이 더 센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천문학적인 이익은 결국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퇴직 관료들의 광범위한 인맥과 영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돈이 돈을 벌지만 돈만으로는 안 된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인지, 그 이면에 더 거대한 음모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불가능을 모르는 이 엄청난 투자가 완벽하게 합법이고 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드는 비결

놀랍게도 이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0년 9월 칼라일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미은행을 인수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칼라일은 그해 3월, 금융감독위원회에 한미은행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했다.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걸렸던 것이다. 칼라일은 사모펀드였을 뿐 금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런데 그해 9월 칼라일은 금융기관인 JP모건을 앞세워 금감위 승인을 받아낸다.

칼라일은 JP모건과 50 대 50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금감위를 설득했다. 그런데 칼라일 컨소시엄이 인수한 한미은행 지분 36.6% 가운데 칼라일과 JP모건이 각각 8.2%, 나머지는 금감위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4% 미만으로 분산된 칼라일의 위장 계열사들 지분인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JP모건이 대주주라고 금감위를 속였지만 실제로는 칼라일이 대주주였고 그나마 간판 역할을 했던 JP모건 역시 직접 투자가 아니라 JP모건코세어2호라는 사모펀드를 내세웠다. 이 사모펀드에도 JP모건의 지분이 50%가 넘지 않았다. 명백한 불법 매각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반반씩 투자한 걸로 돼 있지만 사실상 칼라일이 한미은행의 대주주였다는 이야기다. 금감위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후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칼라일은 당시 홈페이지에 위장 계열사들 지분 비율을 버젓이 공개하기도 했다. 금감위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지만 금감위는 끝까지 침묵했다.

김병주가 2000년 홍콩의 파이낸스아시아와 한 인터뷰를 보면 한국 정부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김병주는 당초 단독으로 한미은행을 인수할 계획이었으나 대주주 자격이 안 된다는 금감위 입장을 전해 듣고 독일의 도이체방크를 접촉했다. 그러나 도이체방크는 한미은행 인수에 대주주로 참여할 의사가 없었고 그래서 찾은 게 JP모건의 사모펀드 코세어펀드였다.

“문제는 우리가 한미은행에 4억5000만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는 겁니다. 코세어펀드는 내부 규정상 투자 한도가 1억달러 밖에 안 됐고요. JP모건이 총 소요자금의 4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제공했는데도 경영권을 공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죠. 결국 우리는 각각 1억달러씩 출자해서 2억달러의 특수목적 회사(SPC)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신동아 2005년 4월호 재인용)

2005년 9월 국정감사에서는 이 인터뷰가 뒤늦게 쟁점이 됐다. JP모건이 출자한 사모펀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위장 계열사들에 지분을 분산해 금감위를 속였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있는데도 금감위 관계자들은 이 인터뷰를 4년이나 지나 신동아 보도를 보고 확인했다고 답변했다. 이때는 이미 칼라일 컨소시엄이 보유 지분을 모두 씨티은행에 넘기고 7107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겨 빠져나간 뒤였다. 금감위가 침묵해야만 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칼라일은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세종에 법률 자문을 맡겼는데 2000년 8월 금감위 회의록을 보면 김앤장과 세종이 칼라일에 자문해 준 내용이 거의 그대로 인용돼 있다. 금감위가 김앤장과 세종에게 법률 자문을 받은 것 같은 상황이다. 회의록에는 외국 금융기관의 관행 등을 고려할 때 칼라일 컨소시엄의 한미은행 인수는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칼라일의 주장을 금감위가 그대로 받아들여 매각을 승인하는 논리로 활용했다는 이야기다.

금감위는 속았나? 국민들을 속였나?

더 놀라운 것은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이 퇴직 후 세종의 고문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칼라일이 퇴직 관료들을 끌어들였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법률회사들이 법조계는 물론이고 재정경제부와 국세청, 금융감독원, 금감위 인맥을 무더기로 끌어들이고 있다. 법률회사들이 변호사도 아닌 이들을 왜 끌어들이는지, 이들이 이곳에 가서 얼마의 연봉을 받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칼라일 고문을 맡고 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제주도에서 열렸던 칼라일 투자자 회의에서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당시 국무총리)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을 만났다는 대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칼라일이 한미은행 인수를 발표한 것은 제주도 회의 직후였다. 칼라일 고문으로 활동했던 박 전 총리는 김병주 당시 칼라일 아시아 회장(지금은 MBK파트너스 회장)의 장인이다. 김병주 회장은 박 전 총리를 비롯해 이헌재 당시 금감원장과 재정경제부 이종구 금융정책국장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부분은 이헌재 당시 재경부 장관 겸 부총리의 역할이다. 이 전 부총리는 부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앤장의 고문으로 옮겨간다. 이른 바 이헌재 사단이라고 불리는 그의 인맥은 재경부뿐만 아니라 금감원과 금감위, 그리고 금융권 곳곳에서 발견된다. 칼라일과 정부 관료들이 만나는 지점이 칼라일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김앤장이고 그 인맥의 그 중심에 이 전 부총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헌재 전 부총리의 인맥은 재경부뿐만 아니라 금감원과 금감위, 그리고 금융권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외환은행 매각을 결정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던 정부 관료들,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김석동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 등도 모두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이헌재의 사람들이고 김앤장과 한 다리 건너 엮이는 사람들이었다.

이헌재와 김앤장, 회전문 현상의 두 축

김앤장은 이 전 부총리를 비롯해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동민 전 법무부 보호국장, 김회선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등 쟁쟁한 검찰 출신 인사들을 영입해 왔다. 한덕수 총리 역시 김앤장의 고문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밖에도 원봉희 전 재경부 금융총괄국장, 현홍주 전 주미대사, 구본영 변호사 전 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 서영택 전 건설부장관 등이 김앤장을 거쳐갔거나 재직 중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윤창번 청와대 미래전략수석비서관과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김학준 민원비서관 등이 김앤장 출신이고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김앤장을 찍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회전문 현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에 김앤장 자문위원인 김형민씨가 외환은행에 들어가 부행장까지 지냈다. 공정위 독점국장을 지내고 김앤장으로 옮겨간 서동원씨가 공정위 부위원장으로 다시 옮겨간 사건도 있었다. 서동원 부위원장 시절 공정위가 외환은행의 HSBC 인수를 승인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김앤장은 칼라일 뿐만 아니라 제일은행의 대주주였던 뉴브리지나나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의 법률자문도 맡았다. 이들이 과연 칼라일이나 뉴브리지, 론스타를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부당한 압력을 넣었을까. 아직까지 명확하게 드러난 바는 없다. 그건 칼라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매우 적절치 못한 자리에 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고문으로 있는 법률회사가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과 관련, 의혹을 불러일으킬만한 거래에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다.

칼라일과 김앤장의 인맥, 그리고 그들과 정부의 역학관계는 거의 대부분 겹친다. 칼라일은 굳이 로비스트를 따로 고용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도 없다. 극단적으로 전직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가 현직 대통령인 아들 부시에게 조언하거나 의견을 구하는 것이 로비일까.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드러난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퇴직 관료들이 정부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통제 영역 밖이다.

칼라일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그 어느 사모펀드나 기업도 갖지 못했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앤장을 비롯해 법률회사들과 회계법인들이 칼라일의 흉내를 내고 있다. 멀쩡한 은행이 부실은행으로 둔갑하고 헐값에 팔려나가기도 하지만 역시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외국 자본 앞잡이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이들을 통하면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통하면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

퇴직 관료들이 특정 기업의 이해를 위해 일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들의 영향력은 정부와 나라 전체의 이해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행사될 가능성이 있고 충분히 그런 정황도 있다. 다만 이들의 움직임은 거의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나더라도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칼라일이 두려운 것처럼 김앤장이 두려운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법의 구멍이 바로 여기에 있다.

▲ '투기자본의 천국' 2006년 초판본 소개 카툰. 워리넷의 허락을 얻어 전재합니다.

참고로 칼라일의 최근 한국 투자 실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칼라일아시아회장을 맡고 있던 김병주씨가 2005년 독립해 MBK파트너스를 설립하면서 운용 인력을 대거 빼내갔고 칼라일은 한국 투자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김병주씨가 MBK파트너스를 설립한 이후의 행보도 석연치 않다. 한미캐피탈은 한미은행의 자회사였고 2004년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팔리면서 함께 팔려갔다. 그리고 2년 뒤 MBK파트너스가 한미캐피탈을 사들이고 1년 만에 두 배 가격에 우리금융지주에 팔아넘긴다. 한미캐피탈을 씨티은행에 팔아넘긴 것도 김병주고 이걸 다시 사들인 것도 김병주였다는 이야기다. 매매 가격이 적정했는지를 두고 뒷말이 난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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