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할 수 없었다. 여야는 물론 보수신문까지도 합창을 결정한 국가보훈처를 비판하며, 제창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지상파방송은 ‘갈등’만 전달했다. 결과적으로 지상파가 신빙성이 낮은 주장에 확성기를 달아준 셈이다. 

SBS는 16일 8뉴스에서 “가사에서 ‘님’과 ‘새날’이 김일성과 사회주의 혁명을 뜻하고, 북한이 제작한 영화에서 배경 음악으로 쓰여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라며 ‘제창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을 ‘찬성’하는 측의 주장과 나란히 배치했다.

▲ 지난 16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KBS는 16일 뉴스9에서 “보훈처의 결정에 대해 5.18 단체들은 반발한 반면, 상이군경회 등 일부 보훈 단체들은 곡 자체를 반대한다며 맞서는 등, 사회적 갈등 조짐도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17일 MBC 이브닝뉴스는 ’보수단체 “국가보훈처 결정 환영”’ 리포트에서 “국내 보수언론 ’올인코리아’는 5.18 기념식에서 보훈처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사안에 대한 ‘갈등’을 전달하는 보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은 그렇게 볼 수 없다. ‘님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제정 결의안’은 여야가 합의를 해 통과시킨 바 있다. 제창을 반대하는 쪽은 보훈처와 일부 단체이며 이들이 제기하는 색깔론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검증된 바 있다. 

▲ 지난 17일 MBC '이브닝뉴스' 화면 갈무리.
‘님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로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로 쓰고 전남대 학생 김종률이 작곡해 만들었다. 1990년대 북한 영화에 이 노래의 멜로디가 나오고, 작사가 황석영이 방북한 전력이 있다고 해서 북한과 연관짓는 건 ‘5.18 북한군 침투설’처럼 개연성 없는 주장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양쪽의 주장을 ‘갈등’ ‘논란’ ‘이념 대립’ 프레임으로 보도하는 건 결과적으로 근거가 빈약한 반대 논리에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기계적 중립을 가장한 왜곡보도인 셈이다. 

특히 MBC는 17일 100분토론 주제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vs 합창’을 선정해 마치 양측의 논리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다뤘다. MBC는 ‘이념 대립 격랑 속으로’라는 자막을 내보냈고, 어김없이 색깔론이 전파를 탔다.

토론에 출연한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이 노래의 역사적 배경과 작사, 작곡가의 친북행적으로 인해 노래에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면서 “(황석영이) 김일성한테 융숭한 대접을 받고 온갖 친북선전선동에 이용당하고, 김일성이를 국가민족의 영웅의 반열에 올려놨다”고 말했다. 그는 “5.18정신이 다양성인데 제창을 강요하는 건 반민주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17일 방영된 MBC 100분토론 화면 갈무리.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가사가 반체제 혁명봉기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면서 “작사자들도 친북 반국가 활동 경력이 아주 짙게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작사한 노래를 기념식에서 부른다는 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5.18의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회복이다. 그런 기념식에 자유민주주의를 뒤엎자는 노래를 제창하는 건 5.18을 모욕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JTBC는 물론이고, 보수적 성향을 드러낸 보수신문조차도 기계적 중립으로 사안을 바라보지 않았고, 그렇다고 흠집내기성 논리에 확성기를 달아주지도 않았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정파에 따라 판단이 갈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중앙일보는 16일 사설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시민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문화유산이요, 역사다. 이 노래에 이념적 잣대를 대거나 ‘종북’ 논란의 소재로 삼는 건 민주화정신을 욕보이는 것 아닌가”라며 공식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요구했다. 동아일보는 17일 사설에서 “왜 보훈처장이 이 문제의 결정권을 쥐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5·18 노래 문제로 모처럼 조성된 협치의 분위기가 깨져선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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