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학회가 22~23일 전북대에서 개최한 ‘정기학술대회’에서 현행 방송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에 계류된 통합방송법안의 소유와 겸영 규제는 미비점이 많고 중요한 사안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해 자칫 '괴물 시행령'이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KTV 등 공공채널은 의무재송신 혜택을 받고 있지만 선정심사를 받지 않는 등 견제장치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심영섭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22일 ‘방송법제분과 세션’에서 통합방송법(방송법 개정안)의 소유 및 겸영규제의 쟁점에 대한 발제를 했다. 통합방송법은 방송통신 융합에 따라 기존에 따로 입법됐던 방송법과 IPTV법을 통합해 ‘동일규제’를 적용하고, 변화한 환경에 맞는 방송의 성격을 규정한 법을 말한다. 지난해 정부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통합방송법은 통합된 시장에 대한 독점 규제 장치는 마련했으나 미비점이 있다. 특히, 보도기능을 갖춘 방송에 대해서만 소유제한을 두는 기존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합방송법은 대기업과 신문, 뉴스통신사와 그 특수관계자가 지상파방송의 지분 10%이상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며 종편과 보도채널의 주식 30% 이상을 소유하는 것 역시 금지하고 있다. 반면 다른 방송사업자에 대한 진출은 사실상 허용된다. 보도기능을 갖춘 방송의 경우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소유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 통합방송법(방송법 개정안)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된 방송법과 IPTV법을 통합하는 내용이다. 이미지=심영섭 한국외대 외래교수 교수 제공.

그러나 심영섭 교수는 “시사정보 프로그램만 여론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게 아니라면 모든 방송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소유제한은 방송법에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심영섭 교수는 “방송법에서 매체간 합산영향력을 판단할 때, 신문에 게재된 시사보도로만 한정하지 않고 기사 전체를 단일한 영향력으로 판단하는 점을 고려하면 동일 법령 내에서 입법취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만 ‘여론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하고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미디어집중도조사위원회는 모든 프로그램이 ‘여론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오늘날 방송장르간 경계가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 역시 사회적 의제를 담을 수 있고, 여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지난해 기준 지상파에 필적하는 9.3%의 시청점유율을 보인 CJ계열 채널의 경우 보도기능은 없지만 교양, 예능, 오락, 드라마 등의 장르를 통해 여론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 한때 정치풍자 코미디인 '여의도 텔레토비'를 방영하고, MBC 출신 최일구 앵커를 기용했던 tvN은 돌연 관련 프로그램 제작을 중단하고 '창조경제 응원'캠페인을 벌여 총수일가 수사에 대한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통합방송법은 방송사업자 간 겸영을 막고 있지만 주요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통합방송법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사업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자 및 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시장점유율과 사업자수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를 초과해 상호겸영을 할 수 없다.

심영섭 교수는 “대통령령에 위임함으로써, 행정부의 ‘임의적인’ 위임입법을 허용하고 있다”면서 “세월호특별법과 테러방지법등에서 보듯, 대통령령을 통해 위임입법이 입법취지를 벗어난 법체계의 정당성을 위반하는 갈등사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대통령령에 두게 되면 입법의도를 벗어난 시행령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통합방송법은 기존 방송법과 마찬가지로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매체의 여론 장악을 우려해 신문 구독률이 전체 가구의 20%이상인 신문은 지상파나 종편, 보도채널을 겸영하거나 주식을 소유하는 걸 금지한다. 이에 대해 심영섭 교수는 “신문을 구독하는 가구와 구독하지 않는 가구를 모두 합산하여 모수로 하고 있다”면서 “실질적으록 구속력이 없는 규정이다. 일간신문을 구독하는 전체가구 기준으로 개정하거나, 관련 조항 삭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방송 공익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영섭 교수는 “통합방송법은 유료방송시장에 대한 통합적 규제의 틀 마련에 중점을 뒀다”면서 “여전히 방송 공익성에 대한 공적책무와 이에 대한 기관으로서 공영방송에 대한 제도적 보장에 대해서는 미흡하다”고 밝혔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3일 ‘국방홍보원(국방TV) 후원세션’에서 공공채널과 공익채널에 대한 의무전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채널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정한 3개 채널(KTV, 국회방송, 방송대학TV)로 정부가 운영의 주체다. 공익채널의 경우 방송의 공익성 실현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매년 9개 채널을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KTV를 비롯한 정부의 공공채널은 공익채널과 달리 평가에 따라 지정이 철회되지 않으며, 의무재송신 혜택을 영구적으로 받고 있다. 최진봉 교수는 “공공채널이 설립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채널에 대한 평가를 통해 공공채널의 선정과 철회에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KTV 화면 갈무리.

반면 공익채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공공채널 3곳은 유료방송이 의무재송신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공익채널의 경우 9곳 중 3곳만 의무재송신 대상이다. 최진봉 교수는 “현행처럼 3개 방송분야별로 1개의 채널만을 의무편성토록 하는 것만으로는 공익채널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기 어려운 만큼, 공익채널 제도의 실효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채널 운영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료방송채널이 공익채널을 의무재송신하면서도 ‘기본채널묶음’이 아닌 높은 번호대에 배정하고 있는데, 최진봉 교수는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이러한 꼼수를 통해 공익채널의 의무편성 의무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 공익채널과 공공채널 개념도. 표=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제공.

공익채널 선정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익채널 선정 심사 때 총점 1000점 중 '공정성, 공익성 및 실현가능성'의 배점은 50점 뿐이다. 최진봉 교수는 “공익채널을 선정하는 심사기준에서 공정성과 공익성 실현가능성 항목의 배점이 다른 항목에 비해 6배 이상 적게 책정된 것은 바람직한 공익채널 심사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무재송신 제도 개선에는 종합편성채널의 의무재송신 철폐도 포함돼야 한다는 게 최진봉 교수의 견해다. “종편은 의무전송제도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 향상에 전혀 기여하지 않고, 되레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파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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