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도입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정부는 가계통신비가 떨어지는 등 단통법의 효과가 분명히 나타났다는 입장이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보조금 공시 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난 건 사실이지만 판매점 ‘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정책 목표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분리요금제의 성공을 강조했는데, 이는 보조금이 부족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24일 ‘단말기유통법 관련 주요통계’를 발표하고 단말기유통법 도입 1년 6개월 동안 뚜렷한 성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 부처가 밝힌 성과는 △이용자에 따른 차별행위 시정 △가계통신비 인하 △기기값 인하 △분리요금제, 알뜰폰 등 단통법과 병행된 정책 활성화 등이다. 

방통위와 미래부는 ‘모두가 호갱이 됐다’는 지적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영수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기존 시장은 이용자별로 보조금이 천차만별인 상황이었으나, 현재는 보조금이 일관되게 지급되고 있고 그 액수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단통법 도입이후 이동통신 평균가입요금이 2014년 7~9월 4만5155원에서 2016년 1~3월 3만9142원으로 떨어졌고, 가계통신비 역시 2014년 15만350원에서 지난해 14만7725원으로 떨어졌다는 게 근거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국내 출고가가 미국 출고가보다 싸다는 점을 공개하며 기기값 인하효과가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 출시된 갤럭시노트3의 출고가는 미국 659달러, 한국1004달러로 한국의 가격이 높은 데 반해 지난해 8월 출시된 갤럭시 노트5의 경우 미국 765달러, 한국 758달러로 역전됐다는 것이다.

이들 부처는 단통법과 함께 추진된 정책의 성과도 강조했다. 이용자가 핸드폰을 구입할 때 보조금을 받지 않는 대신 요금을 20% 할인받는 분리요금제 의 이용자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분리요금제 누적 가입자는 지난달 기준 648만 명에 달한다. 알뜰폰 가입자 역시 2014년 458만 명에서 지난해 592만 명, 올해 3월 기준 620만 명으로 급증했다.

지난 21일 오후 미래창조과학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단 스터디에서 양환정 미래부 통신정책국장은 “전반적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있지만 가계통신비는 오히려 감소됐다”며 성과를 강조했다. 전영수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무조건 고가의 핸드폰과 요금제를 선택하던 경향에서 이제 성능과 이용패턴 등을 고려하는 소비가 늘어 통신 과소비가 줄었다”고 말했다. 

▲ 미래창조과학부의 단통법 1년 6개월 성과발표 자료.
그러나 단통법의 효과가 나타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반쪽짜리’ 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판매점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정책 목표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단통법 도입 이후 통신3사의 ‘직영점’과 영세자영업자의 ‘중소판매점’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중소판매점이 ‘줄폐업’을 맞았지만, 통신3사의 지원을 받는 직영점은 오히려 지난해 말 기준 304개 점포가 늘어난 것이다. 기자단 스터디에서 판매점이 과포화된 상황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지 않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방통위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방통위가 중소판매점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방통위는 중소판매점이 2014년 말 1만2000개에서 작년 말 1만1000개로 감소했다고 밝혔는데 판매점이 국세청에 신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추정치일 뿐 정확하지는 않다. 신종철 방통위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은 “중소판매점이 10% 감소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편차가 크다”면서 “판매점들이 여러 통신사의 상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어떤 통신사를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수치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분리요금제의 성공은 역으로 보조금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미래부가 지난해 4월 분리요금제의 요금 할인율을 12%에서 20%로 올리면서 방통위는 보조금 상한선을 30만원에서 33만원으로 올렸다. 이용자가 핸드폰을 구입할 때 기기값을 부담할 여력이 되면 분리요금제를 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보조금을 받는 식으로 상황에 맞게 선택하되, 차별받지 않도록 두 제도의 가격할인율을 거의 동등하게 맞춘 것이다. 

그러나 실제 나온 보조금이 상한선인 33만 원에 크게 미달됐다. 이용자가 분리요금제에 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4월22일 기준 SK텔레콤의 보조금 공시현황을 살펴보면 G5 22만8000원, 갤럭시S7 24만8000원, 아이폰6SPLUS 12만2000원에 불과했다.

▲ 서울 시내 통신대리점. 사진=연합뉴스
가계통신비가 떨어진 건 기기값이나 요금이 저렴해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통신비가 비싼 탓에 이용자들이 중저가 기기와 요금제를 찾은 영향도 크다. 2014년 7~9월 50만 원 미만의 중저가 핸드폰 판매 비중은 단통법 도입 이전 21.5%에서 올해 1분기에는 38.4%로 늘어났다. 참여연대는 24일 입장문을 내고 “(중저가 기기구입 증가는) 고가 단말기 거품에 저항한 결과라는 측면이 더 클 것”이라며 “평균 가입요금 수준이 하락하고 있는 건 가계통신비에 큰 부담을 느끼는 통신 소비자들의 불만표출이자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기기값이 어느정도 인하된 건 사실이지만 인기품목이 제대로 인하됐는지, 그것이 단통법의 영향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인기 품목의 출고가는 단통법 도입 이전에도 내려가는 경향을 보였다. 삼성 갤럭시노트 시리즈의 국내 출고가를 보면 2013년 106만7000원(노트3)에서 2014년 95만 7000원(노트4)으로 출고가가 내려가고 있었고, 갤럭시S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LG의 G시리즈는 오히려 단통법 도입 이전에는 출고가가 떨어지는 추세였으나 지난해 출시된 G4(82만5000원)에 비해 올해 출시된 G5의 출고가가(83만6000원) 소폭 오르기도 했다.

핸드폰 기기값과 요금을 지금보다 인하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점에서 단통법의 개선이 꾸준히 요구돼온 바 있기도 하다.

특히 단통법 도입 이후 과도한 경쟁이 사라진 탓에 통신3사의 마케팅 비용이 줄었으나 보조금은 그만큼 풀리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통신3사의 마케팅비는 2014년 8조8220억 원에서 2015년 8669억 원으로 1조 원 가까이 줄었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마케팅비용 감축 기조에 따른 이익 성장은 올해 통신산업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조만간 발표될 통신3사 1분기 영업이익과 매출 모두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신사의 전국적인 망 구축이 완료되었음에도 이용자들로부터 받고 있는 기본료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 역시 국회와 시민사회단체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핸드폰 제조사의 보조금 규모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조사와 통신사의 보조금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해 가격인하를 유도하는 분리공시제 도입 역시 필요한 과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