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직전까지 새누리당이 180석은 기본이고 단독 개헌이 가능한 200석까지 넘본다는 전망이 나돌았지만 결과는 16년만의 여소야대 구도,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국민의당과 무소속이 선전할 거라는 전망은 있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으로 부상한 건 그동안의 여론조사나 언론의 예측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과거 그 어느 선거 못지않게 뜨거웠던 4·13 총선의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째, 대부분의 언론이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과신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지난 3년 동안 40%선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몇 차례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은 연거푸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가 국민의당으로 옮겨 탄 것으로 분석된다. 딱히 국민의당을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새누리당에 실망하고 그렇다고 더민주를 찍기도 싫다는 유권자들을 언론은 간과했다.

둘째, 국민의당은 더민주의 표를 잠식했지만 새누리당 표도 상당 부분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의 정당 지지율이 더민주를 웃돌 것이란 건 대부분의 언론이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당선 가능성을 보고 더민주 후보를 선택한 야권 성향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을 찍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정권 심판 못지않게 무능한 야당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은 복잡한 민심을 언론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셋째, 최대 변수는 역시 투표율이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선거 판도를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 4년 전 19대 총선에서는 20대와 30대 투표율이 각각 36.2%와 43.3%였으나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49.4%와 49.5%까지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50대와 60대 이상 투표율은 큰 변동이 없었다. 2030세대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셈이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 투표로 이어질지는 예측이 쉽지 않았다.

넷째, 그나마 광주·전남의 변심은 어느 정도 예측됐던 것이지만 국민의당을 단순히 호남 자민련 정도로 평가 절하했던 건 언론의 심각한 패착이었다. 호남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 호남 홀대론이 힘을 얻고 더민주의 친노 패권주의에 반발이 컸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 28석 가운데 23석을 석권한 것은 안철수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더민주와 대권 주자로서 문재인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라고 보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다섯째, 영남의 민심 이반도 언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대구 지역 투표율은 54.8%로 전국 최저였다. 부산이 55.4%, 경남과 경북도 각각 57.0%, 56.7%로 평균 투표율을 밑돌았다. 광주와 호남이 국민의당에 표를 몰아준 게 적극적인 ‘항의’의 성격이 짙다면 대구·부산과 영남에서 새누리당이 40개 의석 가운데 27석을 얻는 데 그친 것은 소극적인 ‘포기’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숱하게 치른 여론조사에서는 분노의 강도와 의지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여섯째, ‘야권 분열은 필패’라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진보 성향 언론의 구호도 통하지 않았다. 국민의당의 모호한 정치적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유권자들은 될 사람을 밀어주는 투표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국민의당의 출현이 전통적인 양당 구도를 흔들어 오래된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이탈을 부추긴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곱째, 여론조사 결과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결론을 얻었다. 여론조사 업체들이 의존하는 유선전화 조사의 한계도 있고 임의로 가중치를 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획일적 기준도 문제다. 투표 당일까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는 중도 무당파층의 표심을 읽지 못하는 데다 투표율이 60%를 밑도는 총선의 경우 지지 후보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투표소에 가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여덟째, 언론은 족집게 점쟁이가 아니고 돼서도 안 된다. 여론의 추이를 읽고 예측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경마중계를 하듯 여론을 계량화하고 지지율 등락과 당락 가능성을 좇는 과정에서 여론을 왜곡하거나 유권자들의 판단 범위를 제약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선거는 단순히 우리 편이 이기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민의를 반영해 대표자를 뽑는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다. 언론의 잘못된 예측은 합리적인 선택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아홉째, 상당수 국민들이 언론 보도를 믿지 않았거나 독자적으로 판단했다는 사실도 주목할만한 포인트다. 언론이 경쟁적으로 속보를 쏟아내면서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공천 갈등과 추태가 가감없이 전달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와 달리 1면과 사설 중심의 아젠다 프레임이 먹히지 않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뉴스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일부 언론의 주의주장이 여론을 흔드는 게 불가능하게 됐다.

▲ 선거를 나흘 앞둔 4월9일 조선일보 1면.
열째, 선거 막바지 국면, 국가정보원이 주도하고 보수 언론이 거든 북풍 공작도 거의 효과가 없었다. 북한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식당 종업원들이 집단 망명을 신청했다는 언론 보도는 오히려 실소를 자아냈다. 북한 체제 붕괴의 신호로 읽기에는 지나치게 지엽적인 사안인 데다 정부의 언론 플레이도 빤히 속이 들여다 보였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대변인에게 항의하는 영상이 소셜 네트워크에 퍼졌고 한겨레가 후속 보도로 조작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열한째, 정책 검증이 실종됐다는 비판은 선거 때마다 있었지만 이번 선거는 더했다. 새누리당은 정권 심판론에 맞서 야당 심판론을 내세우며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외쳤지만 구호 이상의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더민주는 이념논쟁으로는 안 된다며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고 국민의당은 제대로 된 공약도 비전도 없이 단순히 야당 심판이라는 구호만으로 선거를 치렀다.

열두째, 쟁점이 사라진 자리에 등장인물과 드라마만 남았다. 칩거에 들어간 김종인이 와인을 마시고 잠들었다거나 김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를 해서 부산 영도 다리에 갔다거나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승민에게 ‘존영’을 돌려달라고 했다거나 하는 흥미진진한 보도가 쏟아졌지만 정작 큰 흐름을 읽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대부분 유권자들은 혼란한 판세 예측만 읽고 미인 투표라도 하는 심정으로 투표장을 찾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민심이 천하삼분지계의 구도로 갈렸지만 정권 심판 정서 못지않게 야권 심판의 정서 역시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대 선거를 돌아보면 총선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다수당이 집권하지 못한 경우도 흔했다. 드러난 결과 이면의 숨은 민심을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더민주와 국민의당도 유권자들의 준엄한 경고를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이번 4·13 총선은 언론에도 많은 과제를 남겼다. 언론 비평 전문지인 미디어오늘 역시 이번 선거에서 여러 차례 결과를 예단하고 상황 논리에 휩쓸린 보도를 내놓았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선거 보도에서 언론은 선수가 아니라 심판이 돼야 한다. 결과를 예측하는 것 못지않게 민심과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공정한 경쟁을 촉구하고 감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고 책무다.

이정환 편집국장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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