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민심. 2016 총선의 고갱이다. 기실 총선 전에 새누리당의 과반의석 확보를 낙관하는 여론조사를 볼 때마다 생게망게 했다. 언론의 책임을 묻는 칼럼을 곰비임비 쓴 이유다. 선거 결과를 보며 새삼 민중 앞에 겸손하자고 다짐했다.

총선 다음날, 청와대는 ‘달랑 두 줄’의 논평을 내놓았다. 예상했지만 그들의 낯이 얼마나 두꺼운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다. 지금 김종인과 안철수에게 성찰을 촉구한다면 너무 불공정하지 않을까. 하지만 쓰기로 했다. 박근혜에 이미 비판이 쏟아져서만은 아니다. 민심을 모르쇠 하는 박근혜 못지않게 김종인과 안철수도 버금가는 언행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마침내 김종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부세력이 지금도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많이 한다. 이를 차단하지 못하면 절대 정상적인 집권당으로 가기 힘들다”고 단언했다. 기막힌 일이다. 자신이 이끄는 더민주당에 대해 외부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말은 자가당착 아닌가. 바로 그가 ‘외부세력’ 아니었던가.

▲ 지난 18일 오전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 사진=포커스뉴스
김종인은 자신의 힘으로 더민주당이 제1당이 되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게으름의 자기폭로일 뿐이다. 제1당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반사이익’이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라는 해석은 조금만 ‘외부 의견’을 들어보아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김종인이 예뻐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김종인은 총선 정국에서 자신을 비롯한 비례대표 공천으로 큰 실망을 주었다.

나는 더민주당의 비례대표에 누가 공모했는지 명단을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해온 사람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들을 ‘운동권’이라는 ‘조중동 용어’로 차단해도 좋은가. 김종인이 전두환의 ‘국보위’에 동참하고 금덩어리와 돈을 수십억 모아갈 때 노동현장과 통일운동 현장에서 애면글면 몸 던져 온 사람들이 있다. 이 나라 민주주의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제자논문 표절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수학교수를 비례대표 1번으로 내놓은 행태는 얼마나 오만한가. 당시 그의 아내와 ‘연줄’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묻고 싶다. 대체 그런 작태가 ‘정상적인 수권정당’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자신이 꼭 국회 배지를 달아야 옳았는가. 비례대표 공천만 잘했다면 결과는 더 좋았을 터다. 총선 앞에 그가 겸손해야 할 이유다.

안철수에게도 성찰이 안 보인다. 그는 야권연대와 관련해 자신의 선택이 외연을 넓히는 방법이었다며 “고정관념에 갇혀 일대일 구도를 만들면 100% 진다”고 합리화했다. 통합론으로 흔들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취지의 말도 서슴지 않았다.

▲ 지난 18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 마포구 국민의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과연 그런가. 안철수는 ‘운동권 정당’이라고 날 세워 비난했던 더민주당이 제1당이 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근혜 실정의 ‘반사이익’으로 풀이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분열되지 않고 정의당과도 연대했을 때 더 좋은 심판을 이룰 수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그가 눈물까지 보이며 아쉬워했다는 국민의 당 몇몇 낙선자들이 연대가 안 되어 떨어졌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고통스레 살고 있는 안산 단원구를 보라. 야권 분열로 두 선거구 모두 새누리당이 당선되는 꼴에 유가족들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겠는가. 게다가 호남 후보들이 참신해서 광주가 표를 주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4월13일 유권자들은 ‘고문’을 당했다. 어떻게 투표해야 박근혜 정권을 심판할 수 있을까 숙고할 수밖에 없었다. 총선 결과는 그 ‘고문의 흔적’이다. 그럼에도 김종인과 안철수가 늘어놓는 자화자찬은 민망함을 넘어 살풍경이다. 성찰을 촉구하며 권한다. 아침, 저녁으로 두 사람에게 표를 준 민중을 거울로 들여다보기를. 조금만 더 겸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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