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됐고 새누리당은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국민의당은 호남을 잡고 제3정당의 입지를 굳혔다. 당초 약속한 대로라면 김무성은 과반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이고 문재인 역시 호남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으니 정계 은퇴를 해야 할 상황이다. (남더라도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줄어들 건 뻔하다.) 김종인은 107석을 조건으로 걸었으니 남을 것이고 안철수는 확고한 캐스팅 보터로서 입지를 굳히게 됐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여야 전선을 무너뜨리면서 새누리당 지지자들과 중도 무당파 층의 일부를 흡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철수가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기반을 잠식하면서 더민주가 지역 정당의 색깔을 벗게 된 것은 원치 않았던 반사이익이다. 그러나 국민의당을 단순히 ‘호남 자민련’이라고 평가 절하하기에는 양상이 복잡하다. 의석 수로는 더민주에 크게 뒤졌지만 정당 득표율은 오히려 앞섰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선거 결과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교차 투표다. 더민주 후보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새누리당을 심판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지지한 것일 뿐 애초에 더민주와 국민의당에 큰 차이가 없고 국민의당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좀 더 경쟁력을 갖춘 후보를 내세웠다면 기꺼이 국민의당 후보에 표를 던졌을 거라는 이야기다.

▲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국민의당 당사를 들어서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광주와 전남의 몰표 역시 안철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라기 보다는 더민주 또는 문재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표출이라고 보는 게 맞다. 딱히 안철수가 대안이라서가 아니라 문재인으로는 다음 대선을 맞을 수 없다는 상황 판단과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걸 안철수의 표현 대로 ‘무능한 야당 심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광주 사람들이 딱히 국민의당에 기대나 애정이 있어서 표를 몰아준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국민의당은 양쪽에서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특히 더민주에 딴죽을 걸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는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더더욱 더민주와 맞서는 전선을 그어야 한다. 굳이 새누리당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안철수는 더민주를 공격하는 것만으로도 대안 세력으로 입지를 굳힐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집요하게 더민주를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의석 수는 줄어들었지만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등장은 오히려 한국 정치의 무게 중심을 좀 더 오른쪽으로 옮겨놓을 가능성이 크다. 바야흐로 보수 양당 체제가 보수 3당 체제로 전환되면서 거대한 보수 블록을 형성하고 헤게모니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사이에서 전선을 무너뜨릴 것이고 더민주가 확고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정권은 언제든지 다시 넘어갈 수 있다.

새누리당 과반을 막았다는 데 안도하는 사람들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새누리당을 떠난 민심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옮겨와 16년만에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지만 정작 정의당은 6석에 그쳤고 노동당과 녹색당, 민중연합당 등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새누리당을 심판했을 뿐 한국 사회는 여전히 대안정치 세력이 부재한 상태다. 과연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가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내디딘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본다면 이왕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더민주와 손잡고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다. 당초 국민의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고 더민주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보수 양당 또는 3당 체제를 벗어나 새누리당의 장기 집권을 막고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이런 기회를 만든 게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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