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오보에, 클라리넷, 파곳, 호른을 위한 오중주곡은 아주 특이합니다. 악기 편성도 전례가 없지만, 피아노와 관악기들 사이의 관계가 아주 절묘하지요. 솔로 피아노 입장에서 보면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네 관악기가 한 묶음으로 오케스트라 역할을 하니까요. 모차르트는 빈에서 작곡한 첫 피아노협주곡들을 언급하며, “오케스트라 대신 실내 앙상블로 협연해도 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곡은 오케스트라 대신 관악 앙상블이 연주하게 만든 ‘피아노협주곡’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네 명의 관악기 연주자 입장에서 보면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인 셈입니다. 오보에, 클라리넷, 파곳, 호른을 위한 ‘협주교향곡’처럼 들리는 거지요. 이 곡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어떤 악기를 맡든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역할도 아주 공정하게 배분되어 있습니다.

이 곡은, 어찌 보면 근대 민주주의의 이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군요. 각 파트가 주체로 참여하여 평화와 조화를 이루니까요. 게다가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악상으로 가득 차 있으니,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1784년 3월 30일 완성됐고, 이틀 뒤인 4월 1일 부르크테아터에서 모차르트 자신이 피아노를 맡아 초연됐습니다. 모차르트는 이날 피아노협주곡 Bb장조 K.450과 D장조 K.451도 연이어 초연하며 기염을 토했지요. 이 세 곡의 피아노 파트는 거장다운 카리스마와 자신감이 넘칩니다. ‘성공의 정점’에 오른 모차르트의 당당한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지요. 모차르트는 1784년 4월 10일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오중주곡을 가리켜 “지금까지 제가 쓴 작품들 중 최고”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곡을 들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나 아름다운 연주였는지요!”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협주곡의 경계선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그 선을 넘지 않는 감정의 섬세함은 정말 놀랍다”며, “어떤 작품도 이 오중주곡을 능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피아노 오중주곡 Eb장조 K.452
https://youtu.be/3zxqpLEQcp0



1악장은 내면을 성찰하는 듯 라르고의 신비스런 서주로 시작, 활기찬 알레그로 모데라토로 이어집니다. 네 관악기가 함께 피아노와 주고받는 대화, 네 관악기가 서로 눈을 맞추며 자기 목소리를 내고 상대의 노래를 들어주는 정다운 대화에 귀 기울여 보셔요. 2악장 라르게토는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중간 부분, 피아노의 반주에 맞춰 클라리넷, 오보에, 호른, 파곳이 애수에 잠겨 차례차례 노래하는 대목에 마음을 맡겨 보셔요. 3악장 론도 알레그레토는 경쾌하고 발랄하지요. 끝부분에 카덴차 표시가 돼 있는데, 초연 당시 모차르트가 즉흥연주를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요즘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아노 파트는 어느 지점에서든 서두르지 않고 앙상블의 중심을 잡아주는 ‘선생님’ 역할도 하는 것 같군요. 아,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파곳의 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분도 계시다고요? 오보에는 ‘높은 목관악기’란 뜻이죠. 동그란 음색으로 가늘고 애절한 소리를 냅니다. 클라리넷은 18세기에 개발된 악기로, 소리가 부드럽고 따뜻해서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것 같지요. 모차르트는 만하임에서 이 악기를 처음 접하고 열광한 뒤, ‘사랑’의 느낌을 표현할 때 클라리넷을 즐겨 썼습니다. 파곳은 할아버지 목소리처럼 낮은 소리를 내는데, 때로 익살스레 들리기도 하지요. 모차르트는 슬픔을 노래할 때 이 악기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모차르트는 꿈꾸는 듯한 소리를 내는 호른을 무척 좋아했지요. 이 오중주곡에서 유일한 금관악기지만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울림으로 앙상블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지요.

이 곡을 쓸 무렵인 1784년부터 약 3년 동안 모차르트는 작곡가로서 ‘성공의 정점’을 누렸습니다. 이 때 그의 일과는 어땠을까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9시까지 작곡을 하고, 오후 1시까지 레슨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초대되는 경우가 아니면 2~3시 경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5시까지 작곡을 조금 더 하고, 저녁때는 연주를 하든지 밤 9시까지 작곡을 했습니다. 급한 일거리가 있으면 새벽 1시까지 작곡하기도 했지만 다음날은 어김없이 아침 6시에 일어났습니다. 무척 부지런히 살았지요?

당시 모차르트는 해마다 3천 플로린이 넘는 돈을 벌었는데, 이는 에스터하지 궁정악장 하이든의 연봉에 비해 3배가 넘었다고 합니다. 사치품인 당구대를 샀고, 카드게임을 즐겼고, 앵무새와 애완견을 키웠고, 하인을 고용하여 여유를 누렸지요.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즐겼습니다. 저녁에는 빈의 프라터 공원을 산책했고, 밤새 무도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1784년 9월에 태어난 둘째 칼 토마스는 건강히 자라 주었지요.

모차르트는 이 오중주곡 직전에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14번 K.449부터 스스로 작품번호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자기 관리를 할 필요성을 느낀 거지요. 이는 음악사상 저작권 개념이 처음 발생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작품 번호 매기기는 이내 흐지부지됩니다. 작품으로 돈을 벌면 그 또한 좋은 일이겠지만 모차르에게 돈을 위해 작곡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 앞이라면 몇 시간이고 기꺼이 연주해 주는 소탈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자기 작품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른 사람들이 사용 못하게 하려 들진 않았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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