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애들만 데려갔네”

팀원 중 한 명이 기획 중에 사내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팀원들이 어리긴했다. 취재팀 맏이인 송윤경 기자가 올해 34살이다. 나머지 5명의 기자는 가장 최근에 입사한 3개 기수에서 선발됐다. 취재팀 평균 나이가 30살이 안된다. 누군가 “‘애들’이라는 표현이 너무 싫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축’을 취재하며 만난 취재원 이야기가 그렇다. 대기업에 다녔던 그는 “회의를 해도 눈치가 보여서 의견을 펼칠 분위기는 아니다. ‘막내’들은 들러리처럼 앉아만 있는다”고 말했다. 언론사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막내’들이 있다. ‘막내’는 도제식 수습교육 때 조직의 위계를 익힌다. ‘탈수습’해도 때로는 의견을 내는 것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주제도 구성원도 ‘청년’인 까닭에, 기획 취재팀은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다. 교과서처럼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가졌고, 연공서열에 의한 가중치 없이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취재팀이 구성된 131일간 눈만 마주치면 회의를 하다보니 의견대립 끝에 눈물을 보이는 위기도 몇 차례 있었지만, 토론으로 최선의 길을 찾자는 기조는 계속됐다.

편집국의 전폭 지원은 그 밑바탕이 됐다. 새해 벽두부터 “우리는 붕괴를 원한다”는 암울한 이야기를 하자는 아이디어나, 기획의 제목을 ‘부들부들 청년’으로 정하자는 아이디어는 편집국장 및 데스크들과의 회의에서 무리 없이 통과됐다. ‘청년리포트’나 ‘청년실록’ 등의 후보 제목들이 폐기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한 일이다. 기사 첫 출고까지 45일이라는 충분한 준비기간이 주어졌고, 만성적으로 부족한 편집국 인력상황에도 팀원은 6명까지 충원됐다.

지원이 강할수록 부담은 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주제였다. 2007년 ‘88만원 세대’가 나오고 9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발에 채이는 게 ‘청년’ 이야기였다. 지난 한 해에 나온 ‘청년’ 기사만 29만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통계를 보면 매일 6명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제 의식은 충만한데, 기사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또 청년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지켜야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단순히 청년의 고통을 전시하는 방식은 피하고자 했다. 사례를 통해 청년을 기사화할 때도 극단적인 사례보다는 평범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주목하기로 했다. 대안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투표하라’는 손쉬운 주문을 해결책으로 내놓고 싶지도 않았다.

세대론으로 흐르는 것도 염려됐다. 계급이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청년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리고 싶었다. IMF 이후 질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현재 청년세대의 어머니들은 질낮은 서비스업 일자리로 취업했다. 그 와중에도 자녀 교육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자녀는 취업에 애를 먹거나, 취업해도 저임금에 시달린다. 성공한 자녀가 가족을 돌보는 가족복지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쌍봉형 빈곤을 다룬 것은 그때문이다.

언론이 ‘청년’이라 부르지 않았던 이들도 다루고자 했다. 그간 청년의 문제는 취업문제와 주거문제로 양분됐다. 하지만 전날 그만둬도 다음날이면 취업할 수 있는 고졸 청년들과 지역에 남았다는 이유로 패배감을 안고 사는 수도권 외 지역 대학생들의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기획을 연재하는 동안 이 원칙들을 지키려 노력했다.

▲ 이효상 경향신문 기자
지난 겨울 시작했던 기획은 벚꽃이 필 무렵에야 마무리 됐다. 그간 청년 문제는 큰 진전이 없었고, 앞으로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다만 최근 이사온 옆방 세입자가 어젯밤 아이스크림을 내밀며 통성명을 하고 갔다. 29살인 그와 31살인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빠른 변화의 시작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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