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3사가 수사기관에 국민들의 통신자료를 제공해 논란인 가운데 통신자료를 경찰에 넘긴 네이버가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제 포털마저 무분별하게 통신자료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으나 네이버는 영장이 없는 한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사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이용자 정보를 수집할 방법이 많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네이버 이겼지만, 통신자료 넘겨도 된다는 판결은 아냐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지난 10일 포털 이용자 차아무개씨가 네이버(당시 NHN)가 영장없이 자신의 정보를 경찰에 넘겨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네이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2심에서 포털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는데, 최종심에서 엎어진 것이다. 통신자료는 이름, ID, 주민등록번호, 이메일주소, 핸드폰 번호 등의 이용자 정보를 말한다.

대법원에서 네이버가 이겼지만 우려와 달리 포털사업자들이 영장없는 통신자료 요청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엄밀히 말해 이번 판결은 포털이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응했을 경우 책임이 없다”고 밝힌 것일 뿐, “반드시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명시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헌법재판소가 2012년 8월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관서의 장의 요청이 있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있고, 이 경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고 결정하기도 했다.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가 10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네이버 “영장 없으면 안 넘겨” , 카카오 “논의 중”

네이버는 앞으로도 영장이 없는 경우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판결은 사업자가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반드시 응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서 “현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영장이 없을 경우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포털은 수사기관이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채 통신자료를 요구할 경우 자료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네이버의 통신자료제공에 대한 재판 2심에서 포털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자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포털사들이 영장없는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투명성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이들 업체는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1건도 제공하지 않았다.

다만 카카오는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판결문 내용이 확인되는대로 내부 논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가 소송 당사자가 아닌 만큼 관련 논의에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이는데, 네이버와 같은 결정을 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압수수색 영장 요청하면 그만

포털이 통신3사와 달리 영장없는 통신자료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포털의 통신자료 제공 거부 이후 수사당국이 우회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실제 네이버와 카카오가 통신자료 제공 거부 선언을 한 이후인 2015년, 포털에 대한 수사당국의 압수수색 영장집행이 크게 증가했다. 당시 네이버는 “통신자료 제공 중단으로 통신자료에 해당하는 이용자 가입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이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통신3사는 왜 마음대로 통신자료 넘기나

포털과 통신3사 모두 전기통신사업자이지만 통신3사는 포털과 달리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무분별하게 넘기고 있다. 통신3사는 수사기관의 요청이기 때문에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사업자가 수사기관의 요청을 거부하긴 힘들다. 포털의 경우 관련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통신자료 거부선언을 한 것인데, 우린 그런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신3사가 이용자 개인정보를 소홀히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관련 법이 모호한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통신사업법 83조3항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요청할 경우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가 아니기 때문에 의무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오픈넷이 지난 11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전기통신사업법상에) 영장주의를 적용하고, 적법절차원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전기통신사업법을 신속하게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포털 관계자는 “어느 사업자가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근본적으로 모호한 법의 문제가 크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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