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일본 정부가 유엔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유엔 인권위에 출석한 한국 외교부장관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굴욕합의 논란에 이어, 한국이 사실상 일본 정부의 행보를 국제사회에서 승인해주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지점이다.

연합뉴스는 2일(현지시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연설을 전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윤 장관의 침묵을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연합뉴스는 “한일간 최종 합의 이후 첫 국제 인권 무대에서의 연설이라는 점에서 이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윤 장관의 발언 수위는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면서 “그러나 3천600자 가까운 연설문 어디에도 위안부라는 단어는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를 우회적으로라도 기술하는 그 어떤 내용도 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외교부청사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담 당시 윤병세(왼쪽)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사진=포커스뉴스
윤 장관은 이날 “가장 비인간적인 만행 중 하나인 전시 성폭력에 관해서도 (인권)이사회는 물론, 그 전임기관, 그리고 인권최고대표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의 양심을 깨우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을 했는데, 연합뉴스는 이 대목과 관련해 “여기서 언급한 ‘전시 성폭력’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유추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연합뉴스는 “이날 연설에서 윤 장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발언 수위가 급격히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은 지배적이었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자체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은 거의 없었다”며 “한일간 합의 이후 첫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 자체를 거론하지 않은 것은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는 “한일간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특히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 등의 표현을 두고 ‘굴욕적 협상’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는 가운데 이날 윤 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침묵으로 논란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썼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이같은 행태는 일본 정부가 유엔에서마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며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것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이의 정상회담에서 공개되지 않은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이미 20여년이 지난 1993년의 ‘고노 담화’(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바 있으며 그 후로는 강제성 문제를 부인하지 않아왔다. 일본이 이 같은 국제사회에서의 합의를 되돌리고 있는 것은 지난해말 ‘군의 관여’라는 표현만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천명한 한일 합의 때문인데, 이 표현은 일본 극우 세력들의 오랜 주장이었다. 아베 총리는 한일 합의 이후 언론인터뷰와 국회 등에서 ‘군의 관여’의 의미가, 민간사업자들이 모집한 위안부들에 대한 일본군의 위생관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2주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출석한 일본측 대표인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부장관은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요시다 세이찌(吉田淸治)의 증언 논란을 언급하며 위안부 강제 동원은 “완전한 날조”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 역시 한일간 위안부 합의 직후부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