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위안부 합의 환영 성명을 방패삼아 종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여론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측 대표인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부장관은 16일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정기심의에서 반기문 UN총장이 환영했던 것처럼 국제사회가 일본 정부의 성실한 노력을 이해해달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발언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는 없다는 주장을 한 뒤 곧이어 이어졌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이날 유엔 심의에서 스기야마 대표는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제주도에서의 위안부 강제 연행이 있었다는 요시다 세이찌(吉田淸治)의 증언 논란을 언급하며 강제 동원은 “완전한 날조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위안부를 ‘성 노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16일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회의. 사진제공=민변.
스기야마 대표의 이같은 주장은, 일본정부의 배상과 일본군의 역할에 대한 진상조사 및 역사교육 등 유엔측 권고사항의 이행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왔다. 또한 스기야마 대표는 다른 나라의 위안부 관련 배상 문제 역시 샌프란시스코조약과 양자간 조약, 기타 합의 등을 통해 이미 최종적, 법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한일 합의와 관련해 스기야마는 일본 정부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으로 설립될 재단에 10억엔을 제공하여 위안부 여성의 존엄 회복에 지원하려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성실히 노력해왔다며 “반기문 UN사무총장이 환영했던 것처럼 국제사회가 이와 같은 사정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의 조우(Zou Xiaoqiao)위원은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면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합의를 했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은 모순된 것”이라며 과거 강제연행을 인정했던 일본 정부의 입장 번복을 비판하고, 법적 책임의 인정 등 유엔인권기구의 권고 이행을 촉구했다.

한국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파견한 김기남 변호사는 NGO 브리핑에서 “위안부피해자의 고통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슈이며, 지난 80년간의 지속적인 인권침해는 더 이상은 안된다”면서 “위원회가 너무 늦기 전에 위안부피해자에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반기문 총장이 일본정부의 강제성 부인 정당화”

앞서 반기문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외무상 간 ‘위안부 합의’가 발표된 직후 UN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의 리더십과 비전에 감사한다”며 “환영한다(welcoming)”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또한 “이번 합의가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데 기여하길 희망한다”며 “한일 양국은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나가야한다”고도 했다.

일본 정부가 직접 UN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UN에서는 과거 ‘나데시코 액션’등 일본의 극우 민간단체가 “위안부 문제가 반일 정치 캠페인에 이용되고 있다”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한 적이 있을 뿐이다.

일본 정부 역시 1993년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고노 담화’(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 이후 이 강제성 문제를 부인하지 않아왔다. 지난 2014년 9월 일본 정부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했던 보고서 역시 역대 총리의 사과 내용과 아시아여성기금 등 일본의 노력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일본은 지난해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진전들을 되돌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군의 관여’라는 모호한 표현만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천명함으로써, 일본측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할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다. 이에 더해 최초의 한국인 UN사무총장인 반기문 총장이 UN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환영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일본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민변은 논평을 통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2월 양국간 합의를 환영한다고 밝힌 것이 유엔인권조약의 권고를 무시하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정당화한 모양새”라며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위안부 피해자와 국민을 속이지 말고, 일본 정부에게 사실인정과 법적 책임을 비롯한 후속조치를 이행할 것을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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