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인 2월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물론 밸런타인데이가 소비 위주의 기념일로 흘러가는 것에 경종을 울리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안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기리는 것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두 사실을 엮어 밸런타인데이를 즐기는 이를 ‘개념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지나친 엄숙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14일 쏟아진 기사들은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일본 측에 넘겨져 뤼순 교도소에 갇혔고, 1910년 2월14일에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내용이다.

▲ 2월14일자 YTN의 카드뉴스.
“2월14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된 안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밸런타인데이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가려진 역사적 순간을 기억해야 민족정기가 바로 선다는 차원에서다” (연합뉴스 “2월14일 안중근 사형선고일…'밸런타인 상술'에 실종” 2월12일자)

“일본에 뺏긴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2월14일. 연인과 초콜릿과 선물을 주고받는 일본식 상술로 변질한 2월14일.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YTN 2월 14일자 카드뉴스)

▲ 사진 출처=pixabay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날도 아니고 안중근 의사의 서거일도 아닌 ‘사형선고일’이 뉴스가 되는 것은 이날이 밸런타인데이이기 때문이다. 연인끼리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사랑고백을 하는 밸런타인데이는 3세기에 순교한 로마 성직자 성 발렌티노의 기일이라는 설이 가장 우세하다. 당시에는 황제의 허락 없이는 결혼이 불가했다. 성 발렌티노는 젊은이들에게 황제의 허락 없이 결혼을 시켜줘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을 기리라는 기사들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소개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라니라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는 젊은이들은 마치 ‘개념이 없는’ 이들처럼 취급하다는 데 있다. 마치 밸런타인데이 때문에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 가려진 것처럼 읽히는 기사들이다.

SNS에도 “안중근 의사를 한 번 더 생각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고 상술에 놀아난다고 한심하게 여기는 것은 불쾌하다”, “밸런타인데이 없었으면 사형 선고일 챙겼을까”등의 글이 올라왔다.

▲ 사진 출처=pixabay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에 “코미디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버린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밸런타인데이는 크리스마스와 비슷하게 서양의 공식적인 기념일이고, 이 문화를 본인들이 즐기겠다면 문제가 없는 사안”이라며 “밸런타인데이에 안중근 의사의 기일도 아닌 사형선고일을 끼워 맞추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보도가 넓게 퍼진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지향하는 ‘긴축 모드’에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긴축모드’는 근검절약하는 정신을 강조하며 소비를 비판하고 특히 청년층의 즐기는 문화‧성문화 등에 ‘나태하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며 “이런 기본 정서에서 밸런타인데이를 즐기는 이들에게 소비문화를 비판한답시고 민족주의 이슈를 가져와 권위를 억지로 세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하루라도 안중근 의사가 더 언급되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사형 선고일보다 돌아가신 날이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안중근 의사의 기일인 3월26일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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