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광명성당 주임 신부(56)와의 인터뷰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괴짜 신부’라 불릴 만했다. 크게 손짓을 하거나 얼굴 전체를 일그러졌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무대에 선 연극배우 같았다. 실제로 연극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끼를 주체하지 못 한다”고 했다. 종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그의 ‘끼’는 복음의 수단이다. 사람들과 술 마시고 어울리고 떠들며 그들을 “주님의 세계”에 발 들이게 하는 것이다.

“과거 유럽 중세나 우리나라 민주화 시기는 종교의 전성시대였죠. 그때만 해도 신부나 스님이 홀로 고고한 척하고 잘난 척해도 됐어요. 왜냐?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하지만 지금 그랬다가 ‘삐꾸’ 소리 듣습니다. 이제 종교인이 먼저 다가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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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사진=홍창진 제공.

지난 10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홍 신부를 만나 1시 가량 대화를 나눴다.

- 요즘도 술을 마시나요.
“그럼요. 일주일에 2~3번은 마십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주량이 달라져요. 좋은 사람과 만나면 최소 소주 2병은 마십니다. 담배는 지난해 끊었어요.”

- 홍 신부를 만난다고 하니, 기독교 신자인 지인이 꼭 물어봐달라고 하더군요. 결혼 생각 없는지요. 쉽게 말해 여자 생각이 안 나냐는 건데(웃음)……
“결혼 생각은 굴뚝같아요. 여자 안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웃음)! 그런데 알다시피 카톨릭 계율은 결혼을 허용하지 않잖아요. 결혼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은데, 그런 본능을 넘어서는 가치 때문에 참는 거죠. 싫어서 포기한다기보다 더 좋아하는 가치 때문에 포기한다고 보면 돼요.”

- 더 좋아하는 가치가 뭐죠?
“신을 체험하는 것. 즉 신과의 교감이죠. 정확히 말하면 신이 있다는 믿음 하에 신의 명령을 받고 실천하는 거죠. 이를테면 가난한 이웃을 위해 희생해라 같은 신의 명령이죠. 신은 우리에게 온갖 구차한 일은 다 시켜요. 귀찮게 말이야(웃음). 그러나 장가를 가면 신의 명령이 떨어져도 ‘민첩성’이 떨어져요. 자기 아들이 아프면 가난한 이웃과 아들 중 누굴 먼저 생각하겠어? 한마디로 결혼하면 ‘신앙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거예요.”

- 김영하가 쓴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보면 남편과 사별한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신부가 등장하죠. 고뇌에 찬 모습이 인상적인데, 신부님도 그런 ‘이단’을 도모한 적 없습니까?
“제 생긴 걸 보세요. 여자가 따르겠나(웃음). 신부 중에 욕망을 견디지 못해 계율을 위반하는 이도 있지만 저는 워낙 외모가 후져서 그런지 그런 유혹을 받은 적 없네요.”

- 간증한 적 있습니까?
“네버네버(절대 없다). 간증은 일종의 신비주의예요. 기도 중에 황홀경에 달해 탈혼을 하는 체험인데 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 했어요. 저는 삶의 체험을 통해 신을 체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삶의 체험 말이죠.  신을 체험한다는 건, 결국 세상을 변화사키는 겁니다. 음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 그들을 우리 사회에 연결시키는 일이죠. 본능에 충실하면 쾌감이 오지만 삶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면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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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사진=이승환.
홍 신부는 대화 도중 “삐꾸” “갈아탔다” “개xx들” 같은 비속어를 썼다. 마치 욕쟁이 할머니처럼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기자 개인의 ‘취향’이지 다른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다.

- 종교인이라면 어느 정도 금욕주의가 필요하지 않나요? 술을 마시는 것도 일종의 욕망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술만 마시고 끝나면 그건 문제가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저와 술자리에서 어울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천주교로 귀의하잖아요. 그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마시고 떠들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요. 그렇다고 선교나 복음 때문에 일부러 술자리를 갖는 건 아니고, 좋아서 갖는 거예요.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맞아떨어진 거죠. 이에 대해 스스로 ‘외출한다’고 표현해요. 종교인의 외출! 성당 안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죠.”

- 그렇게 배우 권상우 씨도 천주교 신자로 만들었죠?
“상우가 2004년 ‘신부수업’이란 영화를 촬영했는데 역할이 신부였어요. 당시 제가 영화의 자문 신부였는데 상우와 술 먹고 얘기를 나누면서 굉장히 친해졌어요. 예상과 달리 저는 상우에게 천주교 귀의를 권한 적 없어요. 본인이 감화를 느껴 귀의한 거죠.”  

홍 신부의 ‘외출’은 종교가 아닌 연기 영역에까지 다다른다. 과거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서 추기경 역할을 맡았으며 장애인 성(性) 문제를 존명한 독립영화 `섹스 볼런티어`에서는 형사로 출연했다. ‘다양한 활동은 하시는데 정치적 활동은 안 하냐’는 질문에 그는“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봅니까?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와 쌍용차 해고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민감한 이슈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죠. 그런데 과거와 달리 내부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해요. 체감적으로 느끼기에 1% 정도의 지지를 받나? 이념적인 ‘편향성’ 때문에 그런 듯해요. 그래도 주교단 리더 그룹에서는 그들의 활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습니다. ‘열려있다’고 볼 수 있죠. 정치적 활동에 대해 열려있다는 의미입니다. 지지를 받지 않더라도 그들의 활동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겠죠.”

-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면이 있지 않나요? 특히 군부독재시절 민주주의가 안착되는 데 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때는 사제단이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죠. 당시 내부적으로 한 90%가 지지했어요. 그건 이념적으로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였죠. 민주화 활동은 누가 봐도 정의로웠으니까. 지금은 그런 시기는 지났다고 봐요. 민주화가 성공적으로 안착됐다는 게 아니라 우리(종교인)가 무대 중앙에서 외곽으로 밀렸기 때문이죠. 종교인이 앞장서 뭔가를 주장하는 건 아직도 자신들이 ‘주연’이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조연입니다.”

- 종교의 권위가 떨어졌다는 겁니까?
“떨어졌다는 표현 보다 아예 바닥을 기고 있다고 해야 정확할 건 같네요. 서구 13~14세기 만 해도 종교는 세상을 움직이는 트렌드였어요. 그 당시 똑똑한 놈들은 죄다 신학자가 되려 했지. 근대 초기까지도 그런 영광스러운 시기는 이어졌죠.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신이 종교가 아닌 정치로 갈아탔어요. 자연스럽게 정치가 시대의 주인공이 됩니다. 왜 갈아탔을까요? 종교에 힘을 실어주니까, 종교인들이 ‘교조주의’에 머문다고 신이 판단했던 것 같아요. 21세기 들어 문화·예술이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됐어요.  엘리트라고 하면 문화·예술을 전공하지 신학을 전공하지 않잖아요? 이제 우리는 격려와 지지를 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전문가가 돼야 해요. 베트맨을 보좌하는 집사 알프레도처럼 말이죠. 같은 얘기지만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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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사진=광명성당 제공
- 종교가 사회에서 의미를 얻을 때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섰을 때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상업화돼 부자의 편을 든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요.
“개신교의 역사 자체가 자본과 큰 관련을 맺으며 뻗어나갔죠. 유럽 산업 혁명 이후 신진 자본가들이 주축이 돼 개신교 활동을 하면서 교회가 자본화됐어요. 이상한 게 서구 교회는 20세기 넘어오면서 ‘탈자본화’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우리 개신교는 오히려 자본주의적 요소가 강화된 것 같아요. 강남 교회를 보면 상류층 사교의 장을 넘어서 일종의 사업을 한다는 느낌이에요. 실제 목사님이 신도 간 사업 거래를 뚫어주는 역할을 하죠. 그 자체에 대해 비판하고 싶지 않고 잘못 됐다고 보진 않아요. 다만 교회가 부를 좇다보면 신도들은 정신적 만족도가 떨어지기 마련이에요. 교회에서 정신을 치유하지 못하거나 영성을 키우지 못 하면 결국 눈을 돌리게 됐어요.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이 천주교나 불교로 발길을 돌리고 있죠. 천주교 신자 수는 개신교와 달리 증가세예요.”

-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립니다. 최근에 불교든 개신교든 천주교든 이슬람교든 ‘같은 신’이라 해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카톨릭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하죠. 우리는 ‘유일신’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특히 이슬람교는 역사적으로나 현재적으로나 카톨릭과 적대적인 관계 아닙니까. 교황이 이슬람교를 인정한 건 교리가 아니라 ‘이웃사랑’ 실천 차원이었죠. 특히 IS 테러 등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분쟁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행보라 생각해요. 교황은 진보적인 종교 지도자예요. 이 또한 주님의 요청이자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교황을 ‘완전’ 지지해요.”

홍 신부는 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성당 신부의 권유로 성직자의 길에 들어서기로 했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고 여학생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그에게 신부는 어느 날 느닷없이 “성직자가 네 길”이라고 했고 그 후 신학에 몰두하게 됐다고 한다. 홍 신부에게 “성직자의 재능을 타고난 다이몬드 원석”이라고 그 신부는 자신했다고 한다.

어떤 면을 보고 그런 자신을 했는지 홍 신부는 아직 알지 못 하다고 했다. 다만 고리타분함을 기질적으로 거부하는 홍 신부는 신도들에게도 솔직하다. 그는 “원수를 미워하는 건 당연하다”며 “자신의 인생에 암적인 존재는 도려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냐’고 되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얘기는 한 마디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악인이 죄를 뉘우칠 때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거죠.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뉘우치지 않는 원수를 미워할 권리는 인간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갈수록 뉘우칠지 모르는 놈들 천지라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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