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주인구면서 호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이가 있으면 학교에 보낼 수 있고 가족들은 취업도 할 수 있고 생활이 곤란해지면 정부에서 연금을 받을 수 있고 방이 없으면 방을 빌릴 수 있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고 아프면 치료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농민공들은 이런 당연한 것들을 전혀 누릴 수 없다. 이런 농민공들이 중국에 2억6000만명이나 된다.”

차이찌밍(蔡繼明) 중국 칭화대 사회과학원 교수의 이야기다.

농민공(農民工) 또는 민공(民工)은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중국의 빈곤층 노동자들을 말한다. 차이찌밍 교수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베이징의 인구는 1883만명인데 호적에는 1645만명만 등록돼 있다. 12.4%의 유령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농민공일 것으로 추산된다. 차이 교수는 “15년 전 호적을 사려면 5만 위안이면 됐는데 현재는 100만 위안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1억8000만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금액이다.

전국인민대회 대표 출신인 차이찌밍 교수는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서방 경제학의 가치 비교, 지대이론 및 토지제도, 도시화 등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차이찌밍 교수를 18일 중국 베이징 칭화대 인문대학 본관에서 만났다. 차이찌밍 교수는 미디어오늘이 주최한 글로벌 창업 캠프에 강연자로 나서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빈부격차와 계급갈등 문제를 설명했다.

   
차이찌밍 중국 칭화대 사회과학원 교수. 사진=이정환 기자.
 

특히 베이징에서는 베이징 호적을 갖고 태어나는 게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고 할 정도로 큰 혜택이 보장된다. 교육비와 의료비 등 지원은 물론이고 대학 입학과 취업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베이징 호적 자체가 신분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칭화대만 해도 지역별 쿼터 때문에 베이징 이외의 호적을 가진 학생이 입학하기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어렵다. 어린아이들도 베이징에서는 유치원 무상교육을 누리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찬조금을 내야 한다.

차이찌밍 교수는 “상주인구와 호적인구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면서 “베이징은 2200만명, 상하이는 1000만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6개월 이상 한 곳에 거주하면 상주인구로 치는데 중국 전체로 보면 도시 상주인구가 55% 정도 된다. 그런데 호적 인구로 보면 37% 밖에 안 된다. 그 차이가 18%, 2억5000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농민공과 가족들일 거라는 분석이다. 자살률도 높지만 제대로 된 집계조차 없는 상태다.

농민공의 문제는 도시에 국한되지 않는다. 차이찌밍 교수에 따르면 도시에 사는 농민공의 자녀들만 350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호적에 등록되지 않을뿐더러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당연히 취업도 할 수 없다. 농민공이 도시로 옮겨오면서 시골에 남겨진 농민공의 자녀도 6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시골에 남겨진 부인이 5000만명, 이들의 부모도 5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중국 상주인구(위)와 호적인구(아래)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차오찌민 교수 자료.
 

차이찌밍 교수는 “농민공 가운데 20대와 30대도 1억6600만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도시 생활이 아무리 고달파도 시골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설명했다. 차이찌밍 교수는 “중국은 엄격한 산아제한의 효과로 고령화의 충격에 직면해 있다”면서 “뒤늦게 둘째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실질적으로 노동인구가 늘어나려면 20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농민공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게 중국 정부의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차이찌밍 교수는 도시화(urbanization)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도시화는 농촌을  도시로 바꾼다는 개념 보다는 오히려 공업화에 가까운 개념이다. 공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도시로 편입된다는 의미다. 단순히 직업이 바뀌는 걸 넘어 농민을 시민으로 바꾼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차이 교수는 “본질은 사람에게 있지 토지나 공간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국에서는 대학 입학시험인 가오카오 응시자가 해마다 1000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북경대나 칭화대, 런민대 등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은 1만여명. 각 성에서 1~2위를 해야 입학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베이징에 호적을 두면 입학이 쉽다. 사진은 칭화대 자연과학대 전경.
 

차이 교수는 “농촌 인구가 변하려면 도시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면서 “역으로 생각하면 도시의 발전과 건설이 인구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차이 교수는 “중국의 도시 인프라는 미국의 작은 마을보다 훨씬 좋다”면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도시화에 좀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성장의 수레바퀴를 계속 굴리면서 국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적극적인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차이 교수는 “2020년까지 상주인구를 60%까지 늘려야 하고 호적 인구의 도시거주 비율을 40%까지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도시거주 비율은 37% 수준이다. 그러려면 1억명 이상의 농민공을 호적에 등록시켜야 한다. “한국 인구가 5000만명이니까, 두 개의 한국을 만들 정도의 인구를 새로 만들어 내는 겁니다. 해낼 수 있을까요. 공산당 정부가 이뤄내지 못할 건 없습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도시화율은 54.8%지만 차이 교수는 실제로는 46.4% 정도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차이 교수는 이 비율을  8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에는 절대빈곤 인구가 7000만명에 이릅니다.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죠. 우리의 목표는 2020년까지 빈곤을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겁니다. 시진핑 주석은 빈곤이라는 단어를 없애겠다고 거듭 천명하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에서 도시화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한국은 오히려 도시 과밀화와 농촌의 황폐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도시의 집중 보다는 분산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차이 교수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의 도시화율은 이미 80%에 이른다”면서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차이 교수는 “한국과 대만을 비교해 봐도 도시화율이 높아지면서 성장률이 제고되고 소득 격차가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면서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가 환경오염을 관리하는 데도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은 시민을 낳고 농민은 농민을 낳으니,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일세.” 현대판 신분제에 종속돼 있는 중국의 농민공들.
 

차이 교수는 뿌리를 잃고 떠도는 농민공들을 도시에 정착시키기 위해 토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농민공들의 유일한 재산은 시골의 땅 뿐인데, 중국 정부는 토지거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도시에서 팔 수 없다. 토지 거래는  지방정부가 사유지를 몰수해서 국유재산으로 만든 다음에야 가능하다. 차이 교수의 주장은 시골의 땅을 도시에서 팔 수  있도록 허용해 농민공들에게 기반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시골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도시에서는 방값이 비싸서 살 수가 없으니 공장 인근과 지하 골방 같은 데서 살고 있다. 만약 이들이 시골에 있는 땅을 시장에 매매할 수 있게 되면 도시에서 집을 살 때 시골 집을 담보로 하는 것도 가능할텐데 제한돼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도시에 들어오면 누구에게도 팔 수 없고 정작 비워놔야 하고 막상 도시에 살 집이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차이 교수는 “토지의 몰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부득이한 경우에 한정돼야 하는데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토지 공유제를 빌미로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게 필요하다 싶으면 닥치는 대로 회수하면서 농민공들을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몰았다”면서 “공공의 이익의 범위를 정하고 거주지역의 토지는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개혁의 첫 번째 걸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부가 터전을 잃게 되면 30년 동안 먹고 살 걸 보상해줘야 합니다. 농지 1평(중국 단위, 한국 기준으로는 ㎡)에서 1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양식이 1000위안이라면 1평으로 30년 동안 얻을 수 있는 가치는 3만 위안입니다. 그런데 농촌이 도시화되면 20~30배가 되겠죠. 실제로 토지 경매 사례를 보면 평당 1000만위안에 계산되기도 했습니다. 농민공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벌 수 있는 돈을 정부에 의해 박탈당한 상황이죠.” 

차이 교수는 “시진핑은 토지 개혁에서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면서 “첫째는 토지 공유화 원칙을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하고, 두 번째는 정부의 토지 수용 금액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높여야  하고 세 번째는 어떤 경우든 농민들의 이익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협상회의 위원인 차이 교수의 이런 주장은 중국 정부의 토지 정책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 향후 진행 상황이 주목된다.

   
중국의 도시화 비율은 46.4% 정도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는 이 비율을 한국 수준인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사진은 베이징 시내.
 

“닭보다 먼저 일어나고, 고양이보다 늦게 자고, 당나귀보다 힘들게 일하고, 돼지보다 안 좋은 걸 먹는다.” 농민공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라고 한다. 중국은 그동안 음지에서 일하는 농민공들의 피와 땀을 먹고 성장했다. 마침 지난 19일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그동안 마지노선이라 여겨졌던 7%의 벽이 무너진 상황이다. 제조업은 이미 성장의 둔화를 맞고 있고 서비스 산업은 아직 제조업의 붕괴를 보완할 상황이 아니다.

차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내수 산업 활성화를 위한 대안 가운데 하나로 뒤늦게나마 농민공을 끌어안을 계획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등 이른바 메가시티의 진입장벽과 차별적 호구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계급격차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도시화율을 끌어올리고 농민공을 양성화한다는 차이 교수의 제안은 구호 이상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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