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국회 선진화법 일방 처리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걸린 시간은 단 4분45초다. 더불어민주당은 적법절차를 부정한 “3선 개헌법 같다”고 강력 비판하고 있고 여당은 야당이 법을 몰랐던 것이냐며 반박하며 맞서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8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열고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낸 국회 선진화법 개정안(의장 직권상정 요건 완화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상임위에서 부결되더라도 의원 30인이 요구하면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하는 ‘프리패스’ 과정을 거치겠다는 셈법이다.

일반적으로 법안은 ①소속 상임위 전체회의 상정→②상임위 법안소위 의결→③상임위 전체회의 의결→④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상정→⑤법사위 제2법안소위 의결→⑥법사위 전체회의 의결→⑦본회의 상정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국회법 제87조는 7일 이내 의원 30인 이상이 요구하면 ②~⑥ 단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법안 ‘프리패스’ 조항이다. 당초 국회가 소수 의견 보호를 목적으로 해당 상임위에서 폐기된 법안이라도 본회의에서 전체 구성원의 의견을 물을 수 있도록 했던 법안을 새누리당이 악용한 사례다. 

이에 걸린 시간은 단 285초였다. 이 과정에서 여야 합의를 강조했던 기존 국회법(선진화법)은 무력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15일 소집을 요구했던 운영위 전체회의 날짜를 이날로 옮기면서 국회법 52조(위원회 개의), 58조(위원회 심사), 59조(의안의 상정 시기), 77조(의사일정의 변경) 등 법조항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국회 선진화법 '꼼수' 처리를 위한 절차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새누리당은 지난 15일 운영위 전체회의를 소집했다가 이날로 옮겼다. 운영위 홈페이지에는 당시 회의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15일 회의를 소집한 새누리당 의도는 두 가지로 분석이 가능하다. 

먼저 야당에게 ‘이번 운영위 회의 소집도 지난번과 같이 불참하면 무산시킬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야당이 안심하고 회의에 불참한 사이 여당 단독으로 회의를 개최해 법안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안은 지난 15일 이미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줬음에도 야당이 회의에 불참했다는 새누리당의 반박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날 회의 자체를 야당 측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위 야당 간사인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 부대표는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에게 항의하기 위해 전화했더니 ‘알면 곤란해 질까봐 전화하지 않았다’고 했다”며 “결국 이번 운영위 소집 자체를 밝히지 않기 위해 전화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수석부대표는 이런 새누리당에 대해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한 폭거로 국회 존립 근거를 무시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반면 운영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원내수석 부대표는 “야당이 지난 금요일 전체회의 소집 때 출석해서 반대하든 안건을 의사일정으로 올리지 말자고 하든 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조 원내수석은 “우리 당은 국회 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말했고 정책위의장이 국회법 87조(위원회에서 폐기된 의안)에 따라 처리할 수 있다고 법 조항까지 들어가면서 야당에게 말했다”며 “언론에도 가능성이 수차례 보도 됐는데 준비하지 않은 야당이 잘못 아니냐”고 반박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부터 수차례에 걸쳐 선진화법 때문이 입법이 마비됐고 경제 활성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고 엄포를 놨던 터다. 

운영위 소집에 이어 상임위 안의 법안 처리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권 의원이 지난 11일 발의한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은 위원회에 회부된 15일 후 상정을 하도록 한 요건 자체에 결함이 있다. 

   
국회 운영위 야당 간사인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18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여당의 국회 선진화법 '날치리' 처리를 비판하며 백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 원내수석은 이와 함께 “국회법 58조1항을 보면 △법안 취지 설명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대체 토론 및 축조 심사 △찬반토론 등을 거쳐야 하지만 오늘 논의 과정은 어느 하나 합치된 의견조차 없다”며 “새누리당이 법에 근거한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3선 개헌하듯 날치기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조 원내수석은 전체회의에서 “국회 입법 마비라는 중대하고 비상한 상황은 국회법 59조 단서에 따라 긴급 불가피 상황에 해당하므로 의결을 위해 상정해 달라”고 해 숙려기간을 15일 두도록 한 법안을 피해갔다. 

운영위 위원장인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특별히 안건이 추가된 상황”이라며 생략했고 숙려 기간을 지키지 않은 점은 의결로 통과시켰고 축소 심사·찬반 토론 등은 모두 생략하는 등 법안 처리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더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위법적인 선진화법 개정 공작은 원천 무효’라며 국회 의사일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서기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여야 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을 본회의에 우회 상정하기 위해 국회법 87조를 끌어다 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 개정 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운영위 전체회의의 선진화법 개정안 처리 절차는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고 국회법에 따라서 한 것”이라며 “야당이 지난 금요일 전체회의 소집 때 출석해서 반대하든 안건을 의사일정으로 올리지 말자고 하든 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조 수석부대표는 또 “안건 상정에는 여야 간사 간 협의를 통해서 할 수 있지만 전체회의에서 안건을 상정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도 있는데 야당은 한 가지 방법만 있는 줄 아는 것 아니냐”며 “쟁점법안의 경우 야당이 반대한다고 하면 안건조정심의를 요청해 90일간 논의할 수 있는 데 야당이 입법적 절차를 몰랐던 것 아니냐”고 야당을 탓했다. 

새누리당은 국회법 87조에 따라 본회의에 직행할 요건을 갖춘 국회 선진화법을 이번 주 내로 처리할 수 있도록 국회의장에게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본회의에 상정할 경우 재적 위원 과반수가 동의하면 새누리당의 새 국회 선진화법이 처리된다. 

다만 정의화 의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새누리당의 ‘프리패스’ 시도에 대해 “마음속으로 심히 유감스럽다”며 직접적인 상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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