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부간 위안부 문제 합의과정이 주로 일본 언론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한일 외교장관이 협상 결과를 발표한 지난해 12월28일 이후 일본 언론은 협상 뒷얘기와 양국 정부의 입장 등을 전했다. 합의 조건으로 소녀상 철거가 논의됐고, 한국 정부가 이를 알았다는 일본 보도가 나오자 한국 언론은 일본을 비판했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한일 양국 합의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9일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위안부 매듭… 남은 건 ‘아베의 진정성’”으로 정했다. 향후 일어날 문제의 책임을 일본에게 돌리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한일 외교장관이 기자회견을 발표한 전날(28일)부터 “피해자의 목소리가 없다”,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등의 비판이 나온 것을 외면한 보도였다. 

합의 과정 공개하는 일본

일본 언론 분위기는 달랐다. 같은날 교도통신은 “일 정부, ‘위안부 합의 법적책임 포함 않는다’ 설명 방침”에서 일본 외무상이 표명했던 ‘일본의 책임’이 법적책임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보도했다. 한국과 협상 중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 마땅히 설명해야 할 정부의 책임이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는 합의당일 저녁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회담에서도 “1965년 일한 청구권협정에 따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이 끝났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고, 이 역시 법적 책임을 부정한 발언이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회담 당시 일본 측은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에 일본 정부가 약 10억엔을 기부하기 전에 위안부 동상이 철거 될 수 있도록 요청했다”며 “한국 정부도 일본의 요구에 이해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탓 하는 한국 정부와 언론

이 내용이 국내에 전해지자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국내 언론은 일본의 보도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31일 조선일보는 1면에서 “해도 너무한 일본의 언론플레이” 기사를 통해 ‘소녀상 철거가 10억엔 전제조건’이라는 내용을 “일본 정부가 흘리고 일본 언론이 확대 보도한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일본의) 이런 행태 때문에 합의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 지난해 12월31일 조선일보 1면
 

12월30일 석간 문화일보는 “‘소녀상 이전’ 기정사실화… 막나가는 일본”에서 “합의과정에서 전제조건 자체가 없었는데 그런 식으로 가다간 판이 깨질 수 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경고를 전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2월30일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일본 측의 언행이 없길 바란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입장의 보도였다.

같은날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독일 지도자가 사과하는 모습을 일본 아베 총리와 비교하며 일본책임론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소녀상 철거가 10억엔 전제조건’에 대해서도 “(양국) 합의 내용에 ‘관련단체와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만 돼 있다”며 일본의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 지난해 12월31일 중앙일보 사설
 

외교부와 국내 일부 언론의 주장처럼 일본이 합의를 흔든 걸까? 일본 기시다 외무장관은 이미 지난해 12월25일 외무성 기자단에 대한 브리핑에서, 한일 위안부 협상의 대체적인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해당 브리핑에서는 1억엔의 새로운 기금창설 제안, 아베 총리의 사죄 표현인 ‘책임 통감’, 양국간 합의문에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합의”등의 표현 등이 등장했고 소녀상 철거 역시 거론됐다. 

12월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 한일 양국이 최종 해결을 명기한 공동 문서를 정리하고, 미국 입회하에 문서에 서명하는 방안도 있다”며 미국이 최종 승인해 한국에서 정치문제화 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도 전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외무장관 회담이 공식 합의문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기시다 외무상은 “한일외무장관 회담에서 내가 윤병세 장관과 무릎을 맞대고 협의해 직접 한국 정부의 다짐을 만들었고, 윤 장관은 양국 국민과 국제 사회에 TV카메라 앞에서 강하게 천명했다”며 문서화와 무관하게 한일 합의가 국제적 협정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언론을 종합하면 한일 양국은 사전작업을 통해 사죄 표현, 소녀상 철거 문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란 표현 등의 문제를 논의했다. 또한 한국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것을 대비해 제3국인 미국이 최종 승인해 문제를 마무리하는 방안을 계획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이 12월28일 이전부터 구체적으로 나왔던 일본 보도를 ‘일본의 언론플레이’로만 보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입 다문 한국 정부와 미래를 말하는 언론

한국 정부는 “양국 정상간 협의내용을 상세히 밝히는 것은 자제하고자 한다”며 “사실과 다르다”는 소극적 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합의 직후부터 일본 총리와 외무상의 발언이 쏟아진 일본과는 다르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2월30일 내놓은 첫 입장은 일본에게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에 불과했다. 

다음날인 12월31일 청와대는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내용에 대해 ‘유언비어’라고 규정했다.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은 “양국의 언론 역시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며 “사실관계가 아닌 것을 보도해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 한쪽에서는 위안부 타결 이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위안부 협상에 대한 문제제기는 덮어두고 한일양국의 관계개선에 힘쓰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5일 서울신문은 “위안부 타결, 그 이후 과제는”이란 칼럼에서 “이런 조건에 타결한 것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역사적 죄인이 되는 길을 피했다는 생각도 든다”며 “일본 지도자들에게 독일 지도자들이 했던 사죄를 요구하기에는 무리였다”고 보도했다. 

   
▲ 지난해 12월28일 오후 청와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왼쪽)과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5일 국민일보는 “‘외교·안보·경제’ 손잡아야 국익에 도움”에서 “한일 협력의 배경으로 미중 양강 구도, 북핵 위협 등을 꼽을 수 있다”며 “동북아와 세계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한일의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보도했다. 정책 공조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 한일군사보호협정 논의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5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도 위안부 협상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 정부에서는 손대지 못했던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왔다”고만 말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협상 뒷얘기를 ‘유언비어’로 규정했던 데 대해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아예 입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의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양쪽 언론보도의 차이는 있지만 발표문에 소녀상 이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에 일본 측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며 “소녀상 이전과 10억엔이 병렬식으로 언급은 돼 있는데 별개의 사안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정부를 향해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정 대표는 “애초에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와 연결한 것이 실책이었고,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한일관계의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림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양측의 합의 과정이 드러나지 않아 서로 감정을 자극해 안 하니만 못한 협상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언론에 더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2월28일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리는 것도 한국 언론이 아니라 일본 NHK 속보를 통해 알았고 이후 나오는 ‘소녀상 철거’ 등의 문제도 일본 언론에서 하는 얘기가 더 사실에 가깝다”며 “(나눔의집) 일본 스텝이 일본 언론 모니터링을 꼼꼼하게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 소장은 “합의 전후로 수차례 기자회견을 했지만 정부는 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 연락이 없었다”며 “할머니들이 정말 소외당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안 소장은“일본 정부와 싸우던 할머니들이 갑자기 일본 얘기를 들으며 한국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지금은 전화도 일본기자들한테 더 많이 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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