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창업주 격이었던 안철수 의원에 이어 김한길 의원이 탈당하면서 분당사태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김 의원의 탈당은 오래 전부터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이지만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이뤄지면서 그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실상 최후통첩 성격의 발언을 내놨다. 그는 "우리 당이 이대로 가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건 다들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지도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래야 야권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래야 총선 승리 정권 교체를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제 거취 문제는 여기에 이어지는 작은 선택일 뿐"이라고 탈당을 예고했다.

그리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통합의 이름으로 분열을 말하고 당을 위한다면 당을 흔드는 행동을 즉각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면서 "우리가 설령 좀 작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더 단단해져야 하고 더 결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한길 의원을 찍지 않았지만 탈당 그룹이 요구하는 당 지도부 교체 등을 일축하며 '나가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김 의원이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오죽하면 떠나겠나. 더군다나 공동창업자 두 명 모두 당을 떠난다는 게 이 당의 상황을 상징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제가 멀리 떠나는 게 아니다. 아까 회견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당 대부분의 당원 동지들과 함께 한다. 그분들에게서 떠난 게 아니라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떠날 뿐"이라며 끝까지 문재인 대표를 겨냥한 발언을 내놓은 것은 더불어민주당을 ‘문재인 대표당’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전력이 엿보인다.   

김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향후 행보를 밝히지 않았지만 세가지 정도의 길이 예상된다. 안철수 신당행에 바로 몸을 실는 경우, 그리고 중간지대에 머물다 중도층의 세를 규합해 가는 경우, 안철수 신당이 창당되고 난 후 철저히 '자리'를 만들고 가는 경우다. 

예상보다 김 의원이 빠른 선택을 한 것은 탈당의 명분을 쌓는 것보다 안철수 신당을 원내교섭 단체로 만들기 위한 작업 등 신당 창당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간을 버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의원의 탈당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비견할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김한길계라는 계파가 뚜렷하진 않지만 그동안 ‘전략통’으로서 자기 입지를 다져왔고, 당 대표와 공동대표를 통해 지지기반과 정치적 역량을 키워왔다. 안 의원을 실질적으로 영입해 당으로 데려온 것도 김 의원이었고 공동 대표 체제를 운영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탈당이 단순히 안철수 신당의 세규합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을 넘어 상징성을 갖는 것은 그가 야권에서 차지한 위상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지난 1992년 정주영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의 공천을 받고 정계에 입문했고, 김대중 정부에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내고 문화관광부 장관을 맡았다. 

특히 지난 2007년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 때 중도통합민주당을 창당하고 당을 나간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안철수 신당에선 어떤 역할을 맡을지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는 그의 입지가 2007년과 비교해 그다지 넓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리더십 문제만 보더라도 김 의원은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총선 승리를 할수 없다며 재보선 필패론을 들고 있지만 그가 대표로 재임하는 동안 당이 선거에 패배한 경험도 적지 않다. 야권의 선거 필패 책임으로부터 김 의원도 비껴갈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탈당과 신당 합류는 큰 명분을 갖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다. 일례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당시 치뤘던 지난 2014년 6. 4 지방선거에선 패했다는 평을 받았고 7. 30 재보궐선거에서도 압패를 당했다. 결과에 책임을 물어 공동대표에서 물러나고 문희상 비대위 체제로 넘어간 뒤 지난해 2. 8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것이 문재인 대표다. 

지난 2006년부터 현재까지 야당의 선거 패배 역사를 따져 책임있는 자리로 볼 때 누구의 책임이 크냐는 질문을 해보면 김한길 의원도 결코 만만치 않은 크기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탈당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대결 국면에서 어느 쪽에 이익이냐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문재인 대표가 김 의원의 탈당 선언 당일 게임회사 웹젠 김병관 의장을 새롭게 영입한 건 안철수 신당이 김한길 의원 등 기존 정치권 인사를 흡수해 세를 불리는 방식이라면 반대로 참신한 신입 정치인을 영입해 인물 경쟁에서 앞서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김한길 의원의 탈당이 오히려 인물 경쟁 구도를 부각시키면서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최근 흐름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인재 영입에 당력을 퍼붓고 있고 안철수 신당은 탈당 의원들의 세규합을 통한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 조바심이 나 있는 모습이다. 

야권 재편의 판을 짜기 위해 전략통인 김한길 의원의 신당행과 탈당 러쉬는 세규합에 결정적이지만 유권자 입장에 도로 민주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영입한 새로운 인물, 다시말해 '정치적 무오염자'들의 역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김한길 의원 등 탈당 의원 및 기존 정치권 인사들을 받아야만 하는 안철수 신당과 '새정치'를 위해 인물 영입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서로 파열음을 내면서 유권자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지가 관건이다. 

   
 
 

기성 정치권의 논리대로라면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최소 20석 플러스 알파’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하는 안철수 신당이 총선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물 면면으로 봤을 때 정체성이 모호하고 참신성이 떨어진 인물이 당에 포진돼 있다면 유권자의 외면을 받는 것도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총선 무렵, 어느 쪽이 새정치에 가깝냐는 질문에 결국 인물을 볼 수밖에 없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친문 세력에 더해 새로운 인물을 수혈한 모습의 조직으로 남아 의석수가 준다고 하더라도 안철수 신당이 기존 과거 인물의 이합집산된 모습만 보여주면 민심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안철수 신당이 파격적 인물을 영입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인재 영입에 주춤한다면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안철수 신당이 현역 의원의 세규합에 성공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4월 총선까지 제3당의 역량을 보여줘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처음 나온 제3의 상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깜짝’ 받을 수 있겠지만 구매로 이어질 것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오히려 기존 제품 중 싹 바뀐 물건을 살 수 있다. 최근 새누리당이 조동원 홍보본부장을 복귀시키면서 기득권과 개혁이라는 단어를 부쩍 입에 많이 올리며 혁신 이미지를 선점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결국 김한길 의원의 탈당은 인물 경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면서 양당의 인재 영입의 방향과 속도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어느 당이든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면 재활용 당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3당에 대한 기대감도 심리 때문에 반짝할 수 있지만 찍어서 맛을 보니 새로운 맛이 아니면 버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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