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간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한국 측이 먼저 “불가역적(不可逆的ㆍ돌이킬 수 없음)”이라는 내용을 담자고 제안했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이 나왔다. 이번 합의에서 일본측에 협상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줬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그러나 일본 현지 언론들은 이미 11월 이후 아베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조건으로 해왔음을 보도한 바 있어, 박근혜 정부의 이같은 주장은 국내용 언론플레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는 30일 정부 당국자가 “‘불가역적’은 우리가 먼저 얘기했다” “(약속을) 해놓고 뒤엎는 발언을 해서 되겠느냐, 그런 측면에서 ‘불가역적 배경’이 들어간 것이 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28일 최종 결론에 이른 한일 외무부 회담에서 한국측이 먼저 불가역적인 해결을 제안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지난 11월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서로 합의하면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다시 제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불가역적 합의를 협상 타결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발언은 11월 2일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아베 총리가 산케이 계열의 방송국인 BS후지TV에 출연해 직접 내놓은 것으로, 한국에서도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SBS는 이같은 아베 총리의 발언을 전하며 “한일 외무장관회담에서는 기시다 외무장관이 위안부 소녀상 철거 문제까지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결국, 일본의 주된 요구사항은 위안부상 철거를 포함한 최종 해결 보장으로 해석됩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 11월2일 정상회담 직후 아베 총리는 일본 TV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가역적” 합의를 요구했다. 사진은 SBS의 인용 보도 화면 캡쳐.
 

한국측이 불가역적이라는 제안을 내놓았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11월초 아베 총리의 발언 이전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목표가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최종결착’에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확인가능하다. 일본의 이른바 ‘골대이동론’(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계속 변한다는 주장)이 이같은 불가역적 해결 주장의 근거로 오랫동안 작용해왔다. 

예컨대 지난 8월에 공개된,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 자문보고서는, 1998년 김대중 정부와 오부치 게이조 총리 사이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거론하며 “(이후)한국 정부가 역사인식 문제에서 ‘골대’를 움직여온 경위에 비춰 영속하는 화해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책임을 한국측에 전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현재 위안부 합의의 실제 협상조건 등과 관련해, 익명의 ‘당국자’ 형식으로 언론에 한두마디 언급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이 아베 총리를 앞세워 구체적인 협상 조건들을 거론하고 있는 것과 사뭇 대비된다. 

반면 이번 합의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희색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 정가에선 아베 총리의 협상전략이나 한일 양국이 합의에 이른 막후 상황에 대한 자세한 해석들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마이니치신문은 30일 조건신문에서 “합의에 이르기까지, 실무자간의 협의과정을 무시하는 정치적 결단이라는 수법이 돋보였다”며 이것이 일본 국내 소비세율 관련 정책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아베 총리의 수법의 “재현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마이니치는 “이번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둘러싸고도 ‘한국사람이니까 어떻게될지 모르겠다’는 등 신중한 외무성”과 달리 “총리와 가까운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이 1년 전부터 한국의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물밑조정, 한일 양국 정상의 측근 라인에서 극비리에 조정을 진행해 전격적으로 합의를 실현시켰다”고 설명했다.

합의의 시점과 관련해서도 “한국은 올해를 넘기면 4월에 총선이 있고 선거 모드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려워진다. 대통령의 임기인 2018년까지 임기중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장면이 필요할 것이다”라는 점을 배경으로 “이러한 한국 측의 사정에 기반해 총리는 전후 70년, 한일국교정상화 50년인 올해 안에(타결)’을 명분으로 단번에 움직였다”는 일본 자민당의 간부의 말을 전했다.

마이니치는 아베 총리의 국내 정치적 의도도 덧붙였다. 즉, 이번 위안부 합의에 이어질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어 외교성과를 내걸면서 내년 6월1일 정기국회종료를 기다리지 않고 사실상 경선에 들어갈 의도"라는 것이다. 

“불가역적"이 한국이 제시한 조건이었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은 확실히 거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가와 언론이 내놓고있는 위안부 문제 타결의 다른 협상 조건들(일본대사관앞 소녀상 철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포기) 역시 우리 정부의 설명을 믿을 수가 없게 된 상황이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는 이미 지난 11월2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한국 측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같은 소식은 일한친선협회회장인 가와무라 다케오 전 관방장관의 자민당 본부 연설을 통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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