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몸은 따로 놀기 쉽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더라도 실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행동이 바뀐 사람들이 많아져 문화가 바뀌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에서 ‘자전거 타는법 잃어버리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자전거는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간다. 하지만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가는 특수 자전거를 만들었다. 영상의 주인공은 자전거 타는 법을 어렸을 때 배운 사람인데 이 특수 자전거를 배우기로 했다. 

자전거는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도 몸으로 익혀 자연스럽게 타게 된다. 따라서 머릿속으로는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자전거가 간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에는 1m도 앞으로 가지 못한다. 주인공은 이 특수자전거를 타는데 8개월이 걸린다. 머리로 깨닫는 건 순간이지만 몸에 밴 습관을 완전히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특수 자전거에 익숙해진 사람이 다시 보통 자전거를 탔다. 이번엔 보통 자전거를 타기 어려워했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아는 것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별개의 차원이다. 특수 자전거를 배우는 데 어린 아이는 2주의 시간이 걸렸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것을 바꾸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적게 걸린 것이다. 

이처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어렵다. 가부장적 사회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20일 SBS스페셜 ‘발칙한 그녀들’편에는 당당한 여성 셋이 나왔다. ‘젖은 잡지’ 편집장 정두리, ‘이기적 섹스’ 저자 은하선, 행위 예술가 송아영이 그들이다. 그들은 여성이 성의 주체라는 점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한국사회에서 성의 주체는 남성이다. 남성은 당연히 성욕을 느끼거나 성을 향유하는 존재이고, 여성은 남성의 성을 보조하거나 성의 대상이 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남성의 섹스는 (당연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하거나 못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좋거나 싫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여성이 성을 즐기면 불편하다. 은하선은 ‘섹스토이’를 즐긴다. 단순히 성이 금기시 되는 사회라서 성 기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 민망한 차원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의 기분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성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욕을 주도하고 ‘이기적’으로 성생활에 참여해야 하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 사진=pixabay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이 다르다는 것은 권력으로 나타난다. 남성과 여성의 수직적인 질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9월 맥심 표지에 여성이 납치된 후 살해당한 것 같은 사진이 실렸다. 남성의 폭력이 ‘나쁜남자’의 한 형태, 성적 취향 정도로 표현된 것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정두리는 이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담아 ‘젖은 파티’를 열었다. 

성과 관련한 행위나 예술 작품이 대부분 남성관점에 머문다는 게 정두리의 문제의식이다. 여자들이 짙게 화장을 해야 하며, 꽃처럼 아름답고 조용하게 기다려야 하는 분위기는 남성이 ‘보는 주체’이며 여성은 ‘보이는 자’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시각으로 보려는 정두리의 시도 역시 한국사회에서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 SBS 스페셜 발칙한 그녀들 편 화면 갈무리
 

보이는 자(여성)는 보는자(남성)가 허락할 때만 보여야 한다. 남성들은 웃통을 벗고 있어도 되지만 여성은 함부로 그럴 수 없다. 행위예술가 송아영은 지난해 7월 세월호 광장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상의를 벗었다. “생명을 존중하자”는 그의 메시지는 사라졌고, 그는 과다노출로 벌금 5만원을 문 ‘음란한’ 여자가 됐다. 

송아영은 “평화적이되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목소리만 높인다고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감히’ 여성이 길거리에서 가슴을 드러냈더니 많은 사람이 집중했다. 그는 최근 ‘메갈리아(여성혐오 미러링)’ 페이지는 삭제하고 ‘김치남(여성혐오 성향)’페이지는 유지하는 페이스북 코리아를 향해 “혐오는 커뮤니티의 표준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많은 남성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성혐오나 일베 안 해”, “나는 페미니즘 좋아하지”,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냐” 하지만 위의 세 사람은 특별한 사람으로 비친다. 아직 한국이 가부장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녀들은 아직 ‘발칙한’ 존재다. 머리로 안다고 현실이 바뀐 건 아닐 수도 있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바꾸는 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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