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좋다’고 하니까 ‘좋은가보다’하는 책이 있다.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가 쓴 소설 ‘어린왕자(1943)’도 그렇다. 전 세계 250개 언어로 번역돼 1억4500만부 이상(성경 다음으로 많이 판매)이 팔렸고, 한국에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며 ‘중학생 권장도서’로 선정된 소설이다. 학창시절 한번쯤 배우는 작품인 것이다. 

막상 책을 읽어보면 세계적인 명작임을 체감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왕자가 ‘모자’ 그림을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으로 알아채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비판하지만 사실 어떤 아이들도 이 그림을 보아뱀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 소설 ‘어린왕자’에 감명을 받은 사람은 드물다. 

성신여대 불문과 어순아 교수가 지난 2005년 발표한 논문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에 따르면 ‘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는 세 명 중 두 명(61.3%)을 차지했다. 어교수는 “이 작품이 특별히 남에게 꼭 권할 만큼 감명을 받지 않았거나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가 아니라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어린왕자'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다만 어린왕자의 평가는 과장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린왕자를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난해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쉬운 언어를 사용해 모두가 읽을 수는 있지만 동화로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동화는 일종의 교훈과 희망을 담기 마련이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 부르노 베틀하임은 ‘동화의 정신분석적 해석’에서 “인생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대결은 불가피한데 이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일부이며 피하기보다는 시련에 맞서며 승리를 거두게 된다”고 동화의 목적을 설명한다. 대부분 동화가 권선징악, 해피엔딩의 구조인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 어린왕자는 이별 저별을 떠돌지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도망치는 데 더 가깝다. 오히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임금이 어린왕자에게 “이따금씩 그 쥐를 사형에 처하도록 하라”고 말하는 장면도 특별한 맥락이나 이유 없이 죽음을 말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신 ‘어른용 동화’라고 포장했다. 어린이가 보기엔 난해하거나 부적절한 모습이 있다는 걸 느낀 것이다. ‘고전’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이 소설에 인간에 대한 본질적 통찰이 담겨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시대정신이 담겨있지 않아 어느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몇몇 구절만이 명언처럼 떠돌게 된다. 

어린왕자의 한계, 현실과 분리된 생텍쥐페리 자신

원인은 저자에게 찾을 수 있다. 주인공 어린왕자는 실제 생텍쥐페리 자신을 의미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백작 신분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성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프랑스 마지막 귀족세대다. 1900년대 초 귀족은 몰락해갔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의 분위기는 그의 특권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과 거리두기 시작했다. 

현실에 밀착하지 않고 세상을 구경하는 데 그치는 그의 작품들의 특징은 생텍쥐페리의 실제 삶이 반영된 결과다. 그의 다른 작품 ‘야간비행’에는 ‘야간에 비행기로 우편을 나르는 게 위험하다’는 말에 ‘철도도 야간에 운행한다’, ‘악화된 여론은 다시 조성하면 된다’고 답하는 내용까지 나온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고전이라기 보단 귀족출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작품에 불과하다. 또한 주인공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 소설 어린왕자처럼 생텍쥐페리도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비행정찰 중에 실종됐다. 저자가 죽은 뒤 출판된 작품의 신비감을 더한다. 

원작을 현대적으로 읽은 영화

※ 영화 ‘어린왕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23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어린왕자’는 여기에 21세기 현실을 덧입혔다. ‘쿵푸 팬터’(2008)를 연출한 마크 오스본이 선보인 화려한 애니메이션 효과가 인상적이다. 화려한 CG(컴퓨터그래픽), 파피에 데쿠페(papiers découpés, 종이 오려붙이기) 효과 등을 사용해 장면마다 색감이 달라져 보는 재미가 있다. 

   
▲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어린왕자' 스틸컷
 

등장인물은 크게 세 명이다. ‘플랜 맘’(레이첼 맥아담스)이 짜놓은 인생계획표대로 살던 소녀(맥켄지 포이)가 옆집 괴짜 조종사 할아버지(제프 브리지스)를 만난다. 이 할아버지가 원작에 나오는 비행기 조종사로 소녀는 할아버지를 통해 원작 내용을 듣게 된다. 영화 ‘어린왕자’에 소설 ‘어린왕자’가 적절히 녹아든 형태다.

영화에서 엄마는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도록 딸의 계획을 세운다. 명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엄마가 알려준 모범답안을 외웠지만 엉뚱한 질문에 답안을 답했다. 진학은 다음으로 미루고 딸은 더 많은 모범답안을 외운다. 10분마다 일정을 확인하고 노는 시간은 없다. 다음 생일 선물까지 모두 계획돼 있다. 

성신여대 어순아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원작 어린왕자를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대사는 “나를 길들여줘”라고 한다. 인간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이 외로울 때 ‘순수한 존재와 관계 맺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엄마가 딸을 길들이려는 모습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며 원작의 비현실성을 드러낸다. 

영화는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그리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자가용을 대기했다가 학원까지 태워다주며 차안에서 숙제를 확인하는 한국의 일부 부모들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던 소녀가 옆집 할아버지를 만나며 자유롭게 세상을 떠도는 어린왕자를 만난다. 

   
▲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어린왕자' 스틸컷
 

소녀는 어린왕자를 통해 별들을 떠돌며 왕, 허영심이 많은 사람,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하지만 무의미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 등을 만나지만 어른들에게 실망한다. 귀족출신 저자가 어린아이로 머무르며(피터팬 콤플렉스) 세상을 바라보던 원작에 비해 현실적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원작보다 더 동화의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감독을 높이 평가할 유인은 충분하다. 덕분에 최근 어린왕자 어린이용 출판물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책들, 지난달에는 솔, 지난 21일 더클래식에서 어린왕자를 다시 펴냈다. 다시 어린왕자 열풍이다. 그러나 왜 다시 아이들이 숙제하듯 이 ‘낡은’ 책을 읽어야하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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