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복면 시위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회 참가자들의 복장까지 강제하는 것이어서 헌법상 집회 결사와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도 이번 주 내 복면 금지법을 발의할 것을 예고해 논란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24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작정하듯 민중총궐기 대회 집회를 강력히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오늘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긴급히 소집한 이유는 이번 순방 직전과 도중에 파리와 말리 등에서 발생한 연이은 테러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고 이에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급박함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회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진당의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테러의 위험을 말한 뒤 곧장 헌재 결정에 따라 해산된 통합진보당 부활 위험성을 연결시켜 집회 시위가 불법으로 변질됐다는 주장이다.

박 대통령은 집회 시위대의 위험성과 불법성을 강조하기 위한 복면 시위대에 그치지 않고 테러무장단체까지 끌어다 붙여 비유하는 화법까지 보였다. 박 대통령은 "특히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말했다.

오는 12월 5일로 예정돼 있는 2차 민중총궐기를 염두에 두고 원천 차단 시키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발언도 이어갔다. 박 대통령은 "불법 폭력 행위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며 "이번에야말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사로 피신해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향해서는 "2차 불법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고 말해 종교 시설에서 검거 작전이 전격 이뤄질 수 있음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이 오는 5일 평화적 집회 시위를 보장하라며 정부와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오히려 강력 진압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셈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특별 지침이 내린 복면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집회 시위의 자유를 급격히 떨어뜨리면서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위축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상임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폭력시위 203건 중 129건에서 복면 사용자가 출현했다. 예를 들어 2008년 광우병 파동 집회는 모두 106회가 열려는데 이 중 폭력시위가 52회 발생하고 복면시위가 44회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통계는 하지만 복면을 한 시위대의 출현이 곧 폭력 시위로 나타났다고 입증하기 어렵다. 집회 현장에서 폭력이 발생했을 때 단순히 복면 시위대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인과를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이 그때마다 다를 뿐 아니라 반대로 복면 착용이 금지되면 폭력 시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도 억지에 가깝다. 

복면 금지법이 집회 시위의 폭력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복면'이라는 부정적인 말로 집회 시위 자체를 위축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이 차벽 설치와 살수차량 금지법을 발의하자 경찰의 폭력 진압을 은폐하기 위해 오히려 공세적으로 복면 금지법 같은 집회 시위를 원천 봉쇄하는 맞불 성격의 법안을 제출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복면 금지법은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추진됐던 ‘후드 금지법(Hoodie Ban Law)’을 연상시킨다. 후드 금지법은 공공장소에서 '의도적 목적'으로 신분을 감추기 위해 모자나 마스크, 후드티 등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난 1월 공화당 상원의원 돈 베링턴이 추진한 바 있다. 법을 어기면 최대 500달러의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면서 공공장소에서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드 금지법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범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며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법안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은 '의도적 목적' 즉 공공안전 및 법 집행을 방해하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에만 법이 적용된다고 설명했지만 '의도적 목적'을 판단하는 것도 결국 공권력이기 때문에 재량권이 남용될 수 있다는 반박이 나왔다. 

복면 금지법 역시 시위대의 폭력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적인 발상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김종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위헌 판결을 받은)인터넷 실명제와 뭐가 다르냐, 거기까지 들어갈 필요도 없이 시민이 복면을 쓰던 말든 국가가 상관할 게재가 아니다"라며 "말 그대로 공안 통치다. 공공의 안전질서가 여의봉도 아니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권력 유지의 핑계가 되고 있다. 통과되면 전 세계의 놀림감이 될 것이고 위헌이 확실하기 때문에 헌재에 가더라도 법안을 정당화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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