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녹색당은 “동아일보와 문화일보는 영덕 주민투표에서 손 떼시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정부가 경북 영덕군에 신규 핵발전소(천지원전)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 두 신문이 나서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다수 반대 주민들의 의견을 왜곡·축소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어서다. 지난 11일~12일 영덕주민과 시민단체가 참여해 만든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주민투표 실시 전부터 ‘흠집내기’

동아일보는 10월29일 ‘외부세력이 주도하는 영덕 원전 주민투표 두고 볼 건가’라는 사설을 통해 “현행 주민투표법은 국책사업인 원전 건설을 대상에서 제외해놓고 있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주민투표 추진 배후에 원전반대그룹 등 외부세력이 있다는 점”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주요 문건을 해킹했던 ‘원전반대그룹’이라는 해커를 연상케 하지만 동아일보가 지칭한 ‘외부세력’인 ‘원전반대그룹’은 녹색당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다. 

   
▲ 10월29일자 동아일보 사설
 

문화일보는 지난달 22일 “법에도 없는 투표 강행…영덕원전 ‘반대 여론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절차상 공정성 논란은 물론 인위적 반대여론을 조성했다”고 보도했고, 지난 2일 이희진 영덕군수 인터뷰 기사 제목을 “원전 찬반투표는 불법…시설·인력 등 제공할 수 없다”로 뽑아 “원전사업은 국가사무이기 때문에 군에서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행정자치부 등 정부부처와 한수원 등 공기업 역시 핵발전소 건설이 국가사무라서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주민투표법 제7조 ‘국가의 권한 또는 사무에 속하는 사항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 지난 2일 문화일보는 이희진 영덕군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시민들은 주민투표를 자발적으로 진행하고자 했지만 영덕군에서 행정지원을 거부해 선거인 명부조차 확보하지 못해 반대 서명명부로 대신했고, 주민투표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유권자 인원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도 신문들은 문제제기 했다. 문화일보는 투표추진위원회 구성에 “전교조 영덕지부 등 원전건설을 반대했던 인물이 대부분”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투표를 이틀 간 진행하는 것은 저조한 투표율로 반대의견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11~12일 이틀간 투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런 주장들은 핵발전소를 짓게 되면 이익을 보게 되는 기업들의 논리와 맞닿아있다. 실제 영덕군 곳곳에 설치된 핵발전소 건설 찬성 주장을 담은 현수막의 내용은 이렇다. 

“천지원전, ‘안전 최우선’으로 건설하겠습니다” 현대건설
“영덕 주민의 신뢰, 철저한 원전 안전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두산중공업
“천지원전 건설, 영덕군의 희망찬 미래를 함께 열어가겠습니다” 한화건설
“안전한 천지원전 건설, 한전KPS도 함께 하겠습니다” 한전KPS 주식회사
“천지원전 건설, 영덕군의 희망찬 미래를 함께 열어가겠습니다” 한국원자력연료
“영덕의 미래를 여는 천지 원전, 안전하게 설계하겠습니다”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누가 외부세력인가? 투표 무효?

녹색당은 “동아일보는 녹색당에게 외인부대라는 딱지를 붙였는데 동아일보는 핵발전소 사고가 나도, 방사능에 오염된 먹거리를 섭취해도 피폭당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주민투표결과 유효투표수(1만1139표) 중 ‘핵발전소 유치 반대’가 91.7%(1만274표)로 집계됐고 ‘유치 찬성’은 7.7%(865표)에 그쳤으며 무효표는 0.6%(70표)였다. 주민투표위원회가 영덕군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유권자 수는 모두 3만4432명이다. 10명 중 9명이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것으로 밝혀지자 문화일보는 13일 주민투표법상 ‘3분의 1 유권자 참여’라는 기본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해 원천 무효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영덕 핵발전소 건립 추진을 놓고 갈등하고 있는 영덕군 모습. 사진=녹색당 제공
 

문화일보 등 핵발전소 추진 찬성 입장에서는 전체 유권자 3만4432명 중에서 32.5%(1만1139명)만이 참여했다고 투표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정부·공기업·건설사·지자체·언론이 모두 나서 핵발전소 유치에 대해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결과가 나오자 주민투표법을 들이댄 것이다. 

핵발전소 유치여부는 국가사무일까? 전문가들은 ‘발전소 건설’은 국가 사무일 수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 이를 유치할지 여부는 지자체 사무라고 주장했다. 지난 4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는 “영덕 주민투표는 지방자치법과 주민투표법에 의한 주민투표 대상인데도, 정부·지자체가 주민들과 지방의회의 정당한 주민투표 실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부득이 민간 주도로 실시되는 것”이라며 “정부는 헌법과 지방자치법, 주민투표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지방자치’ 정신에 따라 주민의 생존과 안전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한 영덕 주민들의 주민투표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승수 변호사 역시 1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난 2012년 경남 남해에서 화력발전소 유치에 대해 주민투표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했고, 선관위에서 선거관리도 해줬다”며 “핵발전소 유치 여부를 국가사무로 해석한 산자부(산업통상자원부)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찬성 측과 동아일보·문화일보는 투표 절차에도 문제제기를 했지만 문제의 원인은 애초 영덕군이 행정지원을 하지 않아서 선관위가 선거관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다. 또한 주민들이 구성한 투표추진위원회는 핵발전소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추진위원회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90%가 반대, 갈등 더 키웠다?

13일 동아일보는 주민투표 결과를 보도하면서 ‘갈등’에 초점을 뒀다. “갈등 더 키운 영덕원전 주민투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찬반 양측이 서로를 비난하고 있어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지역 갈등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고 보도했다. 같은날 한국일보도 “영덕 원전 찬반 투표 투표율 못 미쳐 무효” 기사에 부제를 “반대 주민들 입지 약화”로 달아 보도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주민투표 결과 85%가 핵발전소 반대하는 것으로 나온 뒤 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영덕에서는 91.7%가 반대했지만 투표자체를 무효라고 보도해 반대의견을 축소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 13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
 

유치 강행하는 정부 “투표 인정 못해”

하승수 변호사는 “환경영향평가도 해야 하고, 아직 핵발전소 유치가 확정된 것이 아니고 언론에서 유치를 기정사실화해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왜곡 보도”라며 “전북 부안에서도 핵폐기장을 지으려고 했다가 백지화된 사례가 있듯이 철회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영덕은 지난 2010년 영덕군민 4만여명 중 1%에 해당하는 주민 399명의 찬성 서명을 받아 핵발전소 유치를 신청했고, 지난 2012년 9월14일 신규 핵발전소 4기를 건설하기 위한 예정 구역으로 지정 고시됐다. 1998년과 2003년 두 차례 주민들의 반발로 핵발전소 유치가 무산된 적이 있다. 이후 2015년 11월까지 공청회 한번 없었다. 

한수원은 영덕 지역에 ‘사회공헌 사업’으로 쌀과 기부금 총 4억2000여만원을 지원했고,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수원 직원이 영덕읍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전문점에서 70,80대로 보이는 40여명의 주민들에게 식사를 접대한 사실도 확인됐다. 주민투표를 못하도록 회유했던 정황이다. 주민투표가 진행된 날에는 투표소 인근에서 한수원 측이 투표소로 들어가는 주민들을 블랙박스를 이용하여 촬영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핵발전소유치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한수원 직원들이 투표소마다 배치되어 투표소에 출입하는 주민의 숫자를 헤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13일 오전 윤상직 산자부 장관은 담화를 통해 “이번 투표는 법적 근거와 효력이 없으며 따라서 정부는 투표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달 20일 산자부와 한수원이 제안한 대규모 열복합단지조성 등 10대 지역발전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산자부, 한수원,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원전소통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덧붙였다. 

   
▲ 영덕 핵발전소 건립 찬반 주민투표를 지지하는 영덕군 주민들. 사진=민중의 소리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