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1위 SK텔레콤이 케이블방송(SO) 1위 CJ헬로비전을 인수하겠다고 나서서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종 플랫폼의 결합인 데다 워낙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라 향후 미칠 파장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업계 전문가들은 경쟁의 구도가 플랫폼과 플랫폼의 충돌에서 플랫폼과 콘텐츠의 충돌로 옮겨갈 것으로 내다봤다. 미디어오늘이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을 정리해 문답 형태로 풀었다.

1. 왜 인수한 건가.
“통신 시장은 이미 성장의 한계에 이르러서 방송 쪽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는 상황이다. SK텔레콤은 콘텐츠가 없기 때문에 플랫폼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방송 플랫폼을 하기는 가입자 기반이 취약하다. 하나로텔레콤 시절부터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하긴 했는데 유선에서는 만년 2위였다. SK텔레콤은 그동안 3위 SO 사업자 씨앤앰을 두고 저울질했는데 CJ헬로비전을 인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2. CJ는 헬로비전을 왜 판 건가.
“과감하다는 평가와 무모하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CJ의 판단은 대략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첫째, TV 플랫폼에 기대할 게 많지 않다. 둘째, CJE&M이 바게닝 파워가 있어서 CJ헬로비전과 독립할 수 있다. 결국 TV 시장은 하향세고 회복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당한 모험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웹 드라마 신서유기가 기대 이상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도 새로운 시장에 기회가 있다는 판단에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3. 매물로 나왔던 씨앤앰은 갈 데가 없게 된 건가.
“아노미 상태 아닐까.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을 오가면서 사주세요 했는데 유력했던 인수 후보 둘이 갑자기 짝짜꿍을 했다. 가뜩이나 제값을 못 받아 전전긍긍했는데 둘의 합병이 최종 성사되면 나머지 SO들의 시장 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 경쟁력도 더 떨어질 텐데, 더 큰 문제는 가격이 떨어져도 사줄 데가 없다는 거다. 33% 규제 때문에 SK텔레콤도 살 수 없고 KT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 CJ헬로비전 홈페이지
 

4. SO 업계 2위 티브로드는 어떻게 되나.
“티브로드도 고민이 많다. 나름 CJ헬로비전과 맞먹는 업계 맹주였는데 졸지에 더블 스코어 이상 1위와 간극이 벌어지게 됐다. 그나마 티브로드는 홈쇼핑도 없고 여차하면 팔고 떠날 가능성도 고민하고 있었을 텐데, 이제 퇴로가 차단된 상황이다. 그렇다고 공룡이 된 SK텔레콤과 붙어봐야 갈수록 어려운 경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티브로드가 씨앤앰을 인수할까. 워낙 현금을 중시하는 회사라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5. 결국 SO와 통신의 간극이 무너지고 IPTV 기반으로 가게 되는 건가.
“케이블은 가입자당 단가(ARPU)가 정체상태지만 IPTV는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장기적으로 CJ헬로비전의 가입자를 SK텔레콤의 IPTV 가입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IPTV가 케이블보다 주문형 비디오 소비율이 높기 때문에 CJ헬로비전 가입자 415만명을 IPTV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수익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둘 다 HFC 기반 망이라 약간만 업그레이드하면 쉽게 망을 호환할 수 있다.”

6. CJ는 플랫폼을 포기한 건가.
“포기했다기 보다는 온라인과 모바일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유선망 플랫폼에서 손을 뗐을 뿐 지금도 CJE&M 차원에서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다. CJ헬로비전에서 티빙 스틱에 기대를 걸었지만 제대로 투자도 못했고 시장을 확대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한 것 아닌가 싶다. CJ 입장에서는 타고 온 보트를 불사르는 전략이다.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7. 업계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졌다. 당장 케이블방송협회(KCTA)는 어떻게 되나.
“케이블협회에서 큰 목소리를 냈던 CJ헬로비전이 빠졌으니 흐지부지 와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유명무실했던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IPTV협회)가 갑자기 살아날 것 같지도 않다. 그동안은 KT가 IPTV협회를 주도했는데 이제 KT와 SK텔레콤이 양강 구도가 됐다. 케이블협회가 군소 SO들 중심으로 뭉치거나 KT와 SK텔레콤이 새로운 형태의 협회를 구성해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 IPTV 3사 홍보물.
 

8. 지상파 방송사들도 계산이 복잡할 것 같다.
“IPTV 가입자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은 케이블이 메인 플랫폼이었다. 그런데 케이블 시장이 급격히 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SO들 상대로 재송신 수수료 달라고 압박하면서 푼돈을 받아 챙겼는데 이제 KT 840만 가구에 SK텔레콤 750만 가구를 더하면 전체 유료방송 시장의 70%를 차지하게 된다. 재송신 협상의 주도권이 지상파가 아니라 KT와 SK텔레콤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수 틀리면 지상파를 먹통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9. 둘 다 유료방송 시장 33% 상한에 육박했는데, 달리 제제할 방법은 없나.
“실제로는 33%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이 확고한 투 톱과 나머지로 구분되게 된다. 티브로드나 씨앤앰 등은 통신 결합상품을 제공할 수 없으니 저가 시장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가입자는 33%에 묶여 있겠지만 매출 점유율은 두 회사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KT와 SK텔레콤이 모두 5위권 광고주들이라 지상파 방송사들도 함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10. 종편들은 어떨까.
“그동안 종편은 SO들을 쥐어짜면서 특혜를 누려왔다. 의무전송 지위에 황금 채널을 받고 프로그램 공급 대가까지 챙겼다. 정권 차원의 비호도 있었지만 조중동이라는 막강한 보수 언론 카르텔이 종편에 힘을 실어줬는데 KT와 SK텔레콤이 뭉치면 종편도 함부로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이나 황창규 회장을 비판하는 것으로 압박할 수는 있겠지만 누가 갑인지 따지기 애매한 껄끄러운 관계가 된 것은 분명하다. ”

11. KT도 긴장하고 있지 않을까.
“대외적으로는 독점을 강화해 방송시장을 황폐화시킬 거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KT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이 싫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KT도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한 플랫폼 사업자다. 케이블 시장이 무너지고 IPTV 시장이 확대되면 KT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SK텔레콤과 적과의 동침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진짜 문제는 LG유플러스다. 티브로드나 씨앤앰과 함께 군소 사업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12. 이종 플랫폼간 합종연횡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해관계의 전선이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플랫폼과 플랫폼이 서로 경쟁했다면 이제는 플랫폼과 콘텐츠가 충돌하게 된다. 케이블을 중심으로 뭉치고 IPTV를 중심으로 뭉쳤다면 이제는 한 시장에서 서로 싸우게 됐다. 지금까지는 프로그램 사업자(PP)들이 SO에 목을 맸지만 이제는 KT와 SK텔레콤 눈치를 봐야 한다.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인 경쟁이 시작된다. CJ가 CJE&M 중심으로 해볼만 하다고 판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3. 새로운 규제 이슈가 등장할 것 같다.
“방통위가 그동안 통신시장을 5 대 3 대 2 구도로 유지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나. 온갖 꼼수와 반시장적 조치를 남발해 왔다. 그런데 유료방송 시장이 사실상 5 대 5 구도로 고착될 상황이 됐다.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서 황금 비율을 만들려고 할 텐데,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철학이 없는 상태다. 합병이 마무리되는 내년 4월 이후에는 방송시장의 풍경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15. 수평적 경쟁에서 과거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도 있겠다.
“플랫폼은 플랫폼끼리 콘텐츠는 콘텐츠끼리 뭉치게 될 것이다. 지금은 PP협의회가 SO협의회에 기생하고 있지만 CJ헬로비전이 빠져나가면 PP협의회도 갈라져나올 거고, 광고 시장에서는 서로 박 터지게 싸우겠지만 PP들과 지상파 방송사가 콘텐츠 홀더로서 연대하는 상황도 가능하게 된다. SO협의회와 IPTV협회도 상황에 따라 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범플랫폼 연합 같은 것도 가능할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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