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여의도 국회 앞에 붙은 하나의 현수막이 큰 논란이 됐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새누리당 현수막이다. 정부여당이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기 위해 사실왜곡도 서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좌편향된 교과서가 ‘김일성 주체사상’까지 가르친다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7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기존 교과서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세습정권을 미화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교과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 출처=김종민 정의당 서울시당위원장 페이스북.
 

급기야 황교안 국무총리까지 나섰다. 황 총리는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현재 학교에서 사용하는 역사교과서가 많은 왜곡이 있고 그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있다”며 “예를 들면, 북한에서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게재하고 6.25 전쟁에 대해 남한에도 책임 있는 것처럼 서술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역사교과서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미화한 부분을 확인했냐”고 묻자 황 총리는 즉답하지 않은 채 “일부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교과서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나아가 김일성 주체사상이 교과서에 있다는 이유로 이를 ‘좌편향 교과서’라 주장하는 것은 매도에 가깝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 교육과정 적용을 위해 만든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는 “북한사회의 변화와 오늘날의 실상을 살펴보고 남북한 사이에서 전개된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을 파악 한다”고 나와 있다. 북한의 세습 체제 및 경제 정책의 실패, 국제적 고립에 따른 체제 위기와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 등을 서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일성 주체사상은 1950년대 북한이 중국과 소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난 ‘자주 외교 노선’을 천명하고 김일성 유일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상이다. 이 시기 북한의 통치 이념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변화한다. 이후 발생한 북한 세습 체제와 경제정책 실패, 국제적 고립,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 이후 군사력 증강과 산업불균형 등 북한의 역사와 현실을 서술하면서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한 설명을 빼놓는 것이 가능할까.

교육부도 이런 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23일 교육부는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및 교과 교육과정’에 대해 고시한다. 2017년부터 적용될 교육과정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중 사회과 한국사 파트에 보면 ‘북한의 변화와 남북 간 평화통일 노력’을 학습하기 위한 학습요소로 ‘주체사상과 세습체제’ ‘천리마운동’ ‘7.4 남북공동성명’ ‘이산가족 상봉’ 등을 명시하고 있다.

   
▲ 교육부가 고시한 2015년 고등학교 교육과정 중 발췌.
 

주체사상과 북한 세습정권을 미화한다는 주장도 왜곡에 가깝다. 정부여당이 ‘좌편향’됐다고 비난한 교과서 중 하나인 금성출판사 교과서에는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항일 유격대 활동을 혁명 전통으로 삼은 김일성 중심의 유일사상 체계였으며 결국 김일성 개인숭배로 이어졌다”(407페이지)고 서술한다.

금성출판사는 또한 같은 페이지 아래 ‘참고자료’ 코너에서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고 기술한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318페이지 자료읽기 코너에서 “조선 혁명이야말로 우리당 사상의 주체”라는 ‘김일성 전집’ 내용을 소개한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이어 “이후 권력을 독점한 김일성은 만주지역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 이외에는 어떤 항일운동도 언급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자신의 항일 무장 투쟁만이 유일한 혁명 전통임을 내세우고, 이것만이 진정한 주체의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김일성은 이를 바탕으로 1967년 ‘주체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확립하였으며 이는 김일성의 권력독점 우상화로 이용되었다”고 덧붙인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일방적으로 미화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 지난 13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촛불문화제의 한 장면. 사진=이치열 기자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한 교수는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적이 무엇을 주장했는지(주체사상) 알아야 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주체사상을 소개한 내용을 두고 교육부가 주체사상 선전이라고 한 적이 없다”며 “그래도 문제가 된다고 판단한 부분은 수정 명령을 내렸고 교과서는 이 명령대로 수정이 된 결과지, 필자들이 우겨서 만든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새누리당은 전체 교과서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부분만 따오며 교과서를 비난하고 있다. 교과서를 분석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사실 왜곡을 넘어서 거짓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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