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했던 것처럼 박근헤 대통령이 아버지를 따라 국정교과서 전환 절차를 밟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972년 3월 대구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총력안보를 위한 전국 교육자대회'에 전국 77개 대학 총학장과 초중고등학교 교장, 대학교수 등 8천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적없는 교육을 국적있는 교육으로 바꾸고 한민족 국가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을 자각해 북괴의 남침 야욕을 억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자 국정교과서의 전환이 진행됐다. 국사교육 강화위원회가 설치됐고 중고등학교 과정에 국사과목이 신설됐다. 대학도 국사교과 학점을 이수하게 했다. 그리고 1973년 6월 23일, 국사교육 강화를 위해 교과서를 현행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국정교과서 추진은 일사처리로 진행됐다. 곧바로 집필자 선정에 들어갔고 문교부는 1974년 2월 22일 중고등학교 국정교과서를 발간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지난 2005년 4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이 일자 "초중등 대학교육과정에서 국사시간을 확대하고 고시에서도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근혜 대표는 "교육 과정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우려할 만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강만길씨가 광복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으로 임명됐고, 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사실은 편향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인사가 책임을 맡게 됐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해 2월 한일 과거서 공청회에서 "일본군 장교 출신이 쿠데타를 해서 정권을 잡으니 문제가 안 풀렸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에 초점이 맞춰 역사 교육 강화를 강조했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국정교과서를 통해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 지난 2004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두고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시인"(송영길 전 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됐고 박근혜 대표 측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은 박근혜 전 대표와 비판적 언론을 겨냥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시민연대가 초안을 마련했는데 단체의 대표가 맡은 사람이 강만길 명예교수다.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진 국정 고등학교 교과서는 10월 유신을 미화했다.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하고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우리는 이제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립하고 사회의 비능률과 비생산적 요소를 불시하여할 단계에 와 있다"고 기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책인 새마을운동도 미화됐다. 교과서는 새마을운동의 목적에 대해 국민의식 혁명을 이룩하려 한 것이라고 기술했다.

이번 국정교과서에서도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술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마을운동은 박근혜 정부가 최근 집중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제2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새마을운동 같은 변혁과 혁신으로 세계적인 저성장시대를 극복하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어려웠는가. 이제는 새마을운동이 세계 번영에도 기여하는 정책으로 채택됐다"며 "새마을운동으로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던 발판을 마련했듯이 그때했던 우리의 역량을 믿고 최선을 다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국민교육 헌장을 발표하고 1970년 새마을운동을 펼치고 1972년 국적있는 교육을 강조하고 10월 유신 뒤 국정교과서로 전환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실행에 옮겼던 로드맵에 따라 국정교과서 추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준성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은 13일 통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도 국정 교과서를 통해 새마을운동과 10월 유신을 미화하는 등 역사를 독점하고 현재 지배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삼았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를 따라 박정희 정권과 현 지배세력인 보수 세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박근혜 대통령
 

박 연구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금치 동학혁명군위령탑에 비문을 써서 동학혁명을 끌어다 10월 유신을 정당화한 것처럼 이번 국정교과서도 역사를 왜곡 독점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973년 충청남도 공주시 시내에 있는 고개 우금치에 동학혁명군위령탑이 세워졌는데 위령탑 비문에는 "님들이 가신지 80년, 5. 16혁명 이래의 신생조국이 새삼 동학혁명군의 순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빛나는 10월 유신의 한돌을 보내게 된 만큼 우리 모두가 피어린 이 언덕에 잠든 그 님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세우노니 오가는 천만대의 후손들이여! 그 위대한 혁명정신을 영원무궁토록 이어받아 힘차게 선양하라. 서기 1973년 11월 11일 제자 대통령 박정희"라고 쓰여 있다.  

이번 국정교과서에 5. 15 쿠데타가 어떻게 기술될지도 관심사다. 5. 16 군사쿠데타가 군사혁명으로 바뀐 순간 박정희 정권의 출범 배경은 의미가 달라진다. 반란이 아닌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혁명이었다고 5. 16를 규정하게 되면 연이어 유신 독재에 대한 정의도 바뀔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이 반란에 의한 출범했고 독재를 통해 통치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뒤바뀌는 것이다. 

박근헤 정부 국무위원들이 5. 16를 쿠데타로 정의하지 못한 모습이 잇따라 나오는 것도 심상치 않다. 정권 차원에서 진행되는 국정교과서 내용 중 5. 16 쿠데타를 어떻게 기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 인사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13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5. 16를 군사정변이라고 하나 군사혁명이라고 해야 하나”(백재현 의원)의 질문에 답을 피했고 법원 판결이 나왔다고 지적하자 "지금 어떤 역사적 사건에 관해서 법원의 판단이 특정 사건을 규율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진 합참의장은 인사 청문회에서 2001년 석사논문에서 5. 16 군사정변을 군사혁명으로 표기한 것에 대해 질의가 쏟아지자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국무위원 후보들은 인사청문회에서 대부분 답을 피하면서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나마 야당 의원들이 다그치면 그제서야 교과서와 법원 판결에 따라 5. 16 군사정변이라고 마지못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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