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5일 오전 8시 10분.
A : “공천 룰 관련해 청와대의 입장은?
B : “새누리당 공천특별기구가 최고위에 상정된 것으로 안다. 청와대에서 달리 특별하게 드릴 말씀이 없다”
A : “논의 내용을 존중하겠다는 것인가?”
B : “청와대에서 공천 등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
A : “한국형 전투기 사업이 논란이 있다”
B : “거기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

# 9월 18일 8시 13분.

A : “일본 아베 총리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입장은?”
B : “오늘 외교부에서 나올 것으로 안다” 
A : “오늘 나오나?”
B : “그쪽에 물어봐달라”
A : “친박의 비박 흔들기에 대해 어떻게 보나”
B : “드릴 말씀 없다”
A :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국감에서 한은 총재는 내부 논의하고 있다는 취지로, 최경환 장관은 전에 무리라고 했다. 청와대 입장은?”
B : 거기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

위의 두 대화에서 A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그리고 B는 최근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한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민 전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되기 직전까지 KBS 보도본부 문화부장직을 맡다가 청와대로 향해 큰 논란에 휩싸였다. 이제 그는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총선 출마 준비를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직 언론인 출신을 대변인에 기용하면서 언론과 소통의 폭을 넓힐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민 전 대변인이 대변인 직을 마친 현재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가 기자들의 질문에 “잘 모른다”는 식의 대답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자주 나오는 답변 중 하나는 “논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24일 “KB하나은행이 청년희망펀드 가입을 강제했고 일부 시중은행도 반강제적인 사례가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민 대변인은 “논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9월 17일 북한의 핵 실험이 논란이 돼 기자가 이에 대해 질문하자 “아는 바 없다. 논평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다. 

   
▲ 민경욱 청와대 전 대변인. 사진=KBS
 

민감한 의제는 논평 대상이 아니다. 9월 14일 기자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위의 마약과 관련된 보도가 청와대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자 민 대변인은 “논평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6월 18일 ‘문고리 3인방’인 안봉근 비서관에 관한 의혹이 터지고 기자들이 이에 대해 질문했을 때도 “거기에 대해선 논평,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인사’에 관한 질문도 논평 대상이 아니다. 6월 10일 기자들이 법무장관 인사에 대해 묻자 민 대변인은 “인사와 관련해서는 논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기자가 “미국 가기 전에 정무수석이나 장관 등 최대한 인사를 마무리하고 가시는 거냐”고 물었으나 여전히 대답은 “인사에 관해선 논평 안 하겠다”였다.  

“아는 게 없다”는 답변도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 12월 문체부가 박근혜 대통령 의중을 따르지 않아 표적 감찰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민 대변인은 “아는 바 없다”고 답했다. 올해 9월 17일 기자들이 대통령의 뉴욕 유엔총회 연설 순서가 7번째인 이유에 대해 묻자 “아는 게 없다”고 답했다.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도 단골 답변이다. 지난 7월 20일 기자들이 국정원의 해킹사찰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이 있냐고 묻자 민 대변인은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6월 18일 정무수석 내정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기자들이 “정의화 의장이 국회법 거부권 행사하면 헌법대로 하겠다고 했는데”라고 물어도 민 대변인의 답변은 변함없이 “드릴 말씀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답변도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입장을 물어도 “(대통령 입장 외에) 더 보탤 말이 없다”고, 광복절 특사에 대해 물어도 “(대통령) 말씀 외에 가감할 내용이 없다”고 답한다. 

민 대변인의 이러한 스타일은 임명 초기부터 논란이 됐다. 민 대변인의 첫 데뷔는 지난해 2월 6일 오후 7시 박 대통령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해임한 사실을 브리핑하는 것이었다. 민 대변인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잠시 전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한 정홍원 국무총리의 해임 건의를 받으시고 윤진숙 장관을 해임 조치하셨습니다”라는 한 문장만 읽었다.

최재혁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는 2014년 2월 8일 기자수첩을 통해 “출입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윤 장관을 왜 전격적으로 해임했는지, 그 과정을 듣고 싶었던 기자들과 국민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카메라가 꺼진 상태에서 이뤄진 민 대변인의 백브리핑(공식 브리핑이 끝난 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것)도 궁금증을 해소시키진 못했다”고 지적했다. 백브리핑 자리에서도 민 대변인이 “그건 내가 확인 못한다” “내가 확인한 바 없다” “거기까진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인 A기자는 “민경욱 대변인은 기자들 모아놓고 설명할 때(백브리핑)는 주로 청와대가 입장을 밝힐 일이 아니다, 논평할 가치가 없다고 한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그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고 밝혔다. 

민경욱 대변인이 잇따른 ‘설화’로 몸조심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민 대변인의 말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앞에서 라면을 먹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자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닌데”라고 말해 구설수에 오른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9일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퇴 등을 요구하며 항의하자 이들을 향해 “순수 유가족은 120명 정도”라고 말해 반발을 산 적도 있다. 또한 지난해 5월 24일 기자들과 오찬에서 “세월호 구조작업에서 잠수사가 일당 100만원, 시신 1구당 500만원을 받는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사실도 아닐뿐더러 희생자와 잠수자들을 모욕했다는 논란이 일었던 것. 

민경욱 대변인의 잘못이라기보다 박근혜 정부의 스타일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기자들에게 정책을 미리 알렸다가 정책이 수정되는 것을 혼란이라고 여겨 이야기가 새 나가면 질타하는 분위기가 있고, 완전히 결정된 것만 통보하고 설명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말을 적게 할수록 유리한 박근혜 침묵의 정치>

또 다른 청와대 출입기자인 B기자는 “계속 위의 수석 등과 회의해서 애매한 부분에 대해서는 논평을 하지 않겠다고 자르는 것 같다. 기자들도 복선을 깔고 질문하고 그러니 말려들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대변인 나름대로는 기술적으로 잘 피해나가는 것 아닐까”라고 밝혔다.

청와대 출입기자인 C 기자는 “정권의 특성상 대통령이 의도하지 않은 발언이 새 나가지 못하도록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 말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고 그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들은 대변인이 뭔가 숨기려고 하기보다 진짜 대통령의 의중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C 기자는 “윤창중 대변인 때는 (민 대변인 때보다) 더 심했다. 이정현 홍보수석 정도만 제대로 말해줬다”고 강조했다. 

A기자는 “아는 데 모른다고 거짓말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진짜 잘 모르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대변인들이 다 그랬다”며 “이정현 홍보수석은 그래도 대통령의 의중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민경욱 대변인을 비롯해 윤창중 전 대변인, 김행 전 대변인 등은 다 물어보면 모른다는 식으로 답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대변인이 누구로 바뀌어도 언론과 소통은 늘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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