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집권 하반기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힘겨루기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공천기구의 위원장 자리를 놓고 자기 사람을 앉히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고 당헌당규상 전략공천으로 해석되는 우선추전제의 적용 문제를 놓고 시끄럽겠지만 서로 치고받는 모습이 계속되면 양측에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일치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상당기간 밀월이 지속될 수 있다.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가 국정교과서 추진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정교과서 문제는 친박과 비박 등 계파를 하나로 묶고 청와대와 김 대표가 서로 화해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주제다. 

김무성 대표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다양성을 파괴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획일화된 역사관을 주입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다양성과 창의성은 오히려 현행 검정 체제에서 더욱 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8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내주 초 교육부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장관 고시를 발표할 것으로 안다"며 "여기에는 앞으로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데 있어 균형 잡힌 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대통령 의지가 반영됐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정교과서 추진에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여론은 국정교과서 추진 문제에 호의적이지 않다. 보수 신문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지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드는 국정교과서 추진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의 핵심은 정권이 주입하는 역사관에 있다. 친일과 독재를 정부의 입맛대로 미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부친은 모두 친일파라는 비판이 거세다. 

친일과 독재 등 가까운 낡은 것에 묶여 있다는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것은 고정 지지층을 확실히 다 잡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쟁점으로 한 이념 전쟁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역사 전쟁에 돌입하면 언제 싸움을 했냐는 듯 내부의 적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 

   
 
 
   
만화 '볼트맨'의 한 장면.
 

김 대표가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국정교과서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이다. 김 대표는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교육감 직선제를 로또 선거에 비유하고 "정치적 편향성,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공약의 남발로 교육정치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육감 직선제의 개선이 필요한 만큼 국회 내에 특위를 구성해 교육감 선출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교육개혁의 첫 대상이 교육감 직선제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 현재 전국 교육감 17명 중 13명이 진보계열 인사다. 교과서 채택에 있어 교육감의 의지가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대부분 교육감들이 국정교과서에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결국 교육감 직선제 폐지는 학교 현장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도록 마지막 퍼즐 조각인 셈이다. 

국정교과서 문제와 함께 노동개혁도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가 한 몸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노사정위 합의안이 마련됐고 새누리당은 법제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노동개혁안을 법제화 시키는 과제를 부여받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11월 노동자 대투쟁이 예고돼 있는데 노동계 반발이 커지고 여론이 약화되면 새누리당은 정부의 보호막을 자처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개혁 문제는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박근혜 정부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과의 제1지표로 노동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잡았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새누리당의 정권 연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권력 김무성 대표는 노동개혁 문제만큼은 뒤에서 확실히 밀어줄 것이다. 

국정교과서와 노동개혁 문제는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가 화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파를 포용하는 통합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권력보다는 미래권력에 불리한 내용이다. 또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차별성이 옅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가 차별화된 행보를 걷지 않으면 대선 주자로서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청와대와 김 대표의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지만 물밑에선 치열하게 세력 모으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당장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입김이 거세질 수 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 후임으로 온 원 전 대표는 친박과 비박 사이 조율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재 ‘신친박’으로 분류될 정도로 친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청와대와 기싸움이 벌어지면 당 지도부가 분열하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의 힘 겨루기의 최대 변수는 개헌론이다. 공은 김 대표가 잡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김 대표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고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며 개헌의 구체적인 예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제시했다. 당시 청와대가 대노하면서 김 대표는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지만 언제든지 개헌론은 청와대와 갈등 관계에 불을 당기는 뇌관으로 남아있다. 

공천룰 싸움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김 대표가 지난 6일 '광복 70주년 대한민국 틀을 바꾸자' 세미나 축사에서 "87년 체제는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가장 완전한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지만 여전히 진영 정치와 계파 보스 정치 같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87년 체제를 극복하자는 것은 개헌론과 맞닿아있다. 시스템상 권력분점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계파정치 보스 정치와 같은 정치적 후진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김 대표의 주장이다.

이날 발언은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김 대표가 여론을 살피기 위해 던진 일종의 미끼라는 분석이 나왔다. 박 대통령을 '보스'로 한 친박을 향해 계파 정치라고 비판하며 개헌 취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김 대표가 지난해 개헌 논의 봇물을 얘기했듯이 내년 총선에서 개헌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를 실시하자는 입장을 공식화할 경우 정치권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로 일대 전환될 수 있다. 설령 국민투표 실시를 하지 못하더라도 김 대표의 '스피커'는 커지게 된다.

내년 총선 직전까지도 인기 없고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면 여당이 개헌론에 동참해 정부와 차별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고 그 중심엔 김무성 대표가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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