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등 12개 회원국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5일 타결됐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8%, 교역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경제 블록이 탄생했다. 조선일보는 6일 1면 기사에서 “한국만 빠진 슈퍼 경제동맹이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환태평양 경제동맹의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매일경제는 “주저 말고 대세의 흐름을 쫓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왕 늦은 것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TPP 회원국 대부분과 FTA(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상황이라 TPP에 가입해서 얻는 실익이 확실치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은 12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10개국과 FTA가 체결돼 있어 TPP 가입은 한일 FTA 체결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한일 FTA의 이해득실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와 분석조차 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매일경제 10월6일 사설.
 

한겨레는 “정부와 경제단체 등에서 TPP 가입에 조급증을 내고 있지만 기존에 촘촘하게 짜놓은 FTA를 활용하는 게 낫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무리하게 TPP 가입을 추진하다 12개 참여국의 승인을 모두 받는 과정에서 비싼 입장료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도 “한국 입장에서 TPP 가입은 이익의 극대화보다는 손실의 최소화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핵심 쟁점은 자동차 산업에 미칠 영향이다. 당장 일본이 자동차 부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붙었던 관세 2.5%가 철폐된다. 상대적으로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애초에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는 자동차 부품이 많지 않은 데다 한국은 내년부터 관세 없이 미국에 자동차와 부품을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이 TPP에 가입하거나 하지 않거나 달라질 게 없는 조건이다.

   
서울경제 10월6일 1면.
 

베트남과 캐나다 등이 완성차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한국은 이미 FTA를 체결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상대적으로 일본 자동차의 경쟁력이 높아지겠지만 이 역시 TPP에 가입하거나 하지 않거나 감수해야 할 조건이다. 오히려 TPP에 가입하면 일본 자동차 부품과 일본 완성차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는 TPP 가입이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경제 10월6일 사설.
 
   
조선일보 10월6일 사설.
 

IBK투자증권은 6일 보고서에서 “미국과 멕시코 등에 이미 한국 완성차와 부품 업체들이 동반 진출해 있기 때문에 실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의 미국 공급량 가운데 현지 생산 비중이 현대차는 53%, 기아차는 47%에 이른다. 내년에 기아차 멕시코 공장이 가동되면 현지화 비중이 더욱 높아진다. 일본 자동차의 관세 철폐가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흥국증권 이승재 연구원은 “완성차의 경우 국내는 내년부터 미국 수출 관세가 철폐 되지만 일본은 30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될 가능성이 높아 아직은 국내 업체가 유리한 상황”이라면서 “자동차 부품은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일본산 자동차 부품의 경우 관세 철폐 범위가 50%에서 80%로 확대됐지만 변속기와 기어박스 등 미국 기업이 보호하는 핵심 부품의 관세는 협정이 발효되더라도 당장 철폐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증권 채희근 연구원은 “2.5% 관세 철폐면 현지 공장 생산이 있더라도 1% 정도는 가격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한국 업체들 원가 경쟁력은 아직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에 관련 국가들에서 해외 수주에 큰 타격은 아닐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채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현지화율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라 피해 강도도 점차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당수 언론이 한국이 TPP에 가입하지 않아 엄청난 불이익을 볼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은 대체로 차분하다. 흥국증권 안영진 연구원은 “직접적인 실효성 보다는 방어적 차원에서 가입을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왕 가입할 거라면 1차 회원국이 됐다면 좋았겠지만 2차 가입 과정에서 기존 회원국들이 무리한 조건을 내세워 참가비용이 늘어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istock.
 

TPP 출범을 보도하는 언론의 주장은 다분히 과장됐을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 당장 TPP에 가입하지 않아서 낙오할 상황도 주저 말고 쫓아가야 할 상황도 아니다. TPP가 출범한다고 해서 기존의 FTA 효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미국-일본의 경제 동맹에 합류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을 다음 순위로 미룰 이유도 없다. 기업들은 비교적 조용한데 언론이 앞장서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이미 개방할 대로 개방돼 있다. 자유무역의 첨병이라고 할 만큼 웬만한 나라들과 FTA를 체결해 왔다. TPP를 놓쳐서 세상이 뒤집힐 것처럼 떠드는 것도 한심하지만 가입만 하면 엄청난 성장을 담보할 것처럼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것도 무책임하다. TPP는 미국과 일본의 잔치다. 굳이 그 자리에 숟가락을 못 놓아서 안달할 일도 없고 서둘러 밥그릇을 갖다 바칠 일도 없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가 위력적인 변화를 불러오겠지만 필요하다면 한국도 일본이나 멕시코와 개별적으로 FTA를 체결하면 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 양국의 관세가 철폐될 경우 국내 산업이 받게 될 타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볍게 끌려다니기 보다는 오히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신중하게 줄타기하면서 존재감을 높이는 전략도 검토할 수 있다. 언론의 냉정한 분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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