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합의안을 승인한 한국노총이 '야합'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한국노총에 배정된 국고보조금을 늑장 집행한 정황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돈줄을 쥐고 한국노총을 압박해 노사정위 합의안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 산하 노조위원장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수사당국의 레이더망에 걸린 일련의 상황도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의 정황으로 보고 있다.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압박에 밀려 굴복하는 모양새로 노동계 전반에 미치는 문제를 합의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어 관련 문제에 대해 쉬쉬하는 모습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노동단체, 비영리 법인, 단위 노동조합 등의 교육, 연구, 상담 지원비로 45억원의 국고보조금이 배정했다.

한국노총은 5개 사업을 신청하고 산하에 있는 교육원과 연구원의 사업비 등으로 45억 중 32억원을 배정받았다. 지난해까지 한국노총은 28억원을 국고보조금으로 받았는데 4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던 국민노총과 통합하면서 32억으로 늘어났다.

고용노동부는 한국노총 전체 32억 국고보조금 중 상반기에 11억원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사업 실시 상황과 예산 잔액을 맞추면서 나머지 보조금은 시기를 조정해 집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노사정위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을 압박하기 위해 국고지원금의 집행을 늦춘 정황이 있다는 점이다. 

노사정위는 지난해 12월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의 원칙과 방향'을 도출하고 4월까지 논의를 이어왔지만 한국노총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파행됐다.

해당 시점엔 고용노동부가 교육, 상담, 연구 목적의 한국노총 사업 국고보조금을 집행해야 했지만 제때 지급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노사협력과 관계자는 "보름에서 한달 정도 늦어진 감이 있다. 사업 점검 결과 지급하기 때문에 맞춰서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4월 느지막이 고용노동부는 약 7억원의 국고보조금을 한국노총에 지급했다. 한국노총 산하 중앙교육원은 시설 개선 사업을 하고 있는 리모델링 비용으로 약 3억원의 국고지원금을 받기로 했고 6월과 7월 세차례에 걸쳐 지원금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후 국고지원금은 집행되지 않았고 지난달 말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하고 난 뒤 이번달 말에 7억원의 보조금을 집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노사정위 복귀 전까지 시설 개선 사업 지용을 제외한 국고지원금이 집행되지 않다가 노사정 복귀 후 합의안이 통과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7억원의 국고지원금을 집행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은 올해 모두 3억3600만원의 정책연구사업비를 지급받기로 했지만 상반기 8400만원만 지급을 받았다. 보통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금액의 절반씩을 지급받은 관례로 보면 25%의 금액만 지급된 것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25%만 집행된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고 전했다.

또다른 한국노총 간부는 "국고보조금이 한때 지급이 중단되고 노사정위에 복귀해 합의하고 나니까 추가로 지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자료사진
이치열 기자 truth710@
 

국고지원금 문제는 지난 2009년 한국노총이 정부와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를 두고 갈등을 벌어진 시점에도 불거진 바 있다. 당시 노동부는 한국노총에 배정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 인건비 부족 사태가 오면서 급여를 차용해 지급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노총 재정지원국은 "올해 공모사업이 3월에 확정됐는데 지급액 중 25% 정도만 나오고 안 나온 상태"라며 정상적인 지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전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복귀 문제를 놓고 내부 의견이 엇갈릴 때 이미 고용노동부가 국고지원금을 끊으면서 복귀 반대파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올해 들어 한국노총 산하 연맹과 노조 간부들이 연달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수사당국에 적발되는 일이 벌어진 것도 정부의 한국노총 찍어누르기 일환으로 진행됐다는 의심도 하고 있다.

올해 4월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한 시점에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화환을 넘겨주는 대가로 화환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한국노총 산하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행 위원장 서모씨를 구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한 뒤 지난 9월 2일 전국우정노조위원장 김모씨가 노조위원장 선거와 관련해 조합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국고지원금 중단이나 올해들어 산하 조직의 위원장이 입건된 것은 노사정위 복귀와 합의를 압박하려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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