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사업을 비판하는 진보 정치 세력들도 정작 본인 지역구 내에 설악산 케이블카 이슈가 터져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대안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기본 소득과 복지 등의 이슈는 남북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현실 속에서는 ‘무의미한 논쟁’으로 치부된다. 강경한 안보 프레임 속에서 조금이라도 급진적인 주장이라면 진보진영도 ‘감히’ 들고 나서지는 못한다. 진영논리에 휘말려 대중적 지지를 잃을 위험 때문이다. 

4일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시민사회 운동 진영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파티인 ‘인디안 썸머 : 겨울을 앞두고 봄을 준비하다’가 열렸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날 ‘휴먼라이브러리’ 행사에 참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처럼 풀어놓았다. 

하 위원장은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와 진보정치 운동은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무상급식을 정책으로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급진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현재 무상급식은 일부 지자체에서나마 정책으로 도입됐다. 

하 위원장은 “진보 정당이라면 과감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해야 한다. 현재 그런 역할을 할 세력이 없는 것이 한국 사회 정치의 현실이고, 그 역할이 녹색당의 몫이라고”고 밝혔다. 

하승수 위원장이 대중 정치 사회에 발을 디딘 것은 90년대 후반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서였다. 하 위원장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활동을 통해 낙선운동에 참여했다. 올바른 인물이 정치권에 들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속가능한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 위원장은 “사람을 떨어뜨리는 운동이 한번은 괜찮아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지역 풀뿌리 운동을 시작한 건 이 때부터다. 지역 활동가들을 모아 함께 활동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후보를 당선시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왔던 활동가들조차 낙선했다. 기존 정당의 벽을 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하 위원장은 회고했다. 

녹색당이 출범한 것은 2010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였다. 일본의 원전 사고를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탈원전 여론이 형성됐다. 녹색당의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여기에 지역 기반 풀뿌리 조직을 벗어나 정당이라는 조직을 넘어서고 싶었던 생각을 가졌던 하 위원장은, 녹색당이라는 것을 만들어보자며 ‘총대 메고’ 나서게 됐다. 

이렇게 싹을 틔운 녹색당은 내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을 꿈꾸고 있다. 출범 후 4년 동안 당원 수는 꾸준히 증가해 7000명에 이르고 있다. 단순히 환경문제만을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 정치 의제를 던지는 진보 정당으로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맨 오른쪽)과 사회 활동가들이 '휴먼라이브러리' 행사에서 대화를 나눴다. 사진=차현아 기자.
 

다양한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환경문제만 다룰 것 같은 녹색당이 진보정치의 대안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 위원장은 지속가능성의 관점을 제안했다. 하 위원장은 이를 녹색당이 정치 의제를 끌고나가는, 그리고 진보정치가 나아갈 한 가지 방법으로 제시했다. 

주류 언론과 정치권에서 다루는 통일문제는 북한을 흡수해서 토지와 자원 등을 남한 식으로 개발하자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 위원장은 “우리는 한반도가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통일 문제를 바라보고자 한다. 북한의 자원과 인력을 우리가 개발하거나 중앙집권형으로 정치체제를 합치자는 프레임이 아닌, 양쪽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누군가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진보 세력이 담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분배논리보다 성장논리가, 보존보다는 개발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 

하 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경북·부산 지역에서는 동남권 신공항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이다. 개발 정책에 대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 세력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분명 그 지역구로 출마하는 후보 중에는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정당으로 살아남는 일과 진보정당으로서 대안 의제를 제시하는 일의 간극을 메우는 일. 녹색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의 과제일 것이라고 하 위원장은 말했다. 

“녹색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의 장기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의제를 던지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물론 그런 의제들을 통해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어 국회 내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것이 진보정당들이 우리 사회 내에서 작지만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존재로서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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