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인 듯 사과 아닌 ‘유감’ 표명 

남북이 25일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한 공동보도문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은 지뢰 도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이었다.  

한국 대표단의 당초 목표는 북한의 유감 표명과 재발방지 약속을 공동보도문 문구에 명시하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유감 표명에 대해서는 23일 밤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비공개 1 대1 회동 이후 북한이 수용 의사를 밝혔다”며 “하지만 북한의 재발방지 명시는 협상 마지막 순간까지 강하게 반대했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유감 표명에 이어 재발방지까지 북한이 주체가 되면 북한에 백기를 들라는 것”이라며 “이는 현실적으로 관철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협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재발방지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와 함께 강조한 재발방지 약속은 공동보도문에 명시되지 않았다. 그 대신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8월 25일 낮 12시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문안으로 정리됐다.

   
▲ 동아일보 26일자 3면
 

반면 경향신문은 김관진 실장이 발표한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 결과 일부가 실제 합의문 내용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극적인 합의를 이뤄낸 25일 새벽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번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을 통해 당면 사태를 수습하고, 도발 행위에 대한 재발 방지 및 남북 관계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북한이 지뢰 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와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발표했다.

경향은 “하지만 실제 공동보도문에는 김 실장 발표와는 달리 ‘목함 지뢰 도발’ 사건에 대해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북측이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는 내용만 담고 있어, 그저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경향은 이어 “북측이 분명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발 방지를 약속한 문구도 명확히 합의문에는 없다”며 “이 때문에 김 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강경 대응 가이드라인’에 합의 결과 해석을 억지로 맞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26일자 3면
 

경향은 또 “남북 간 합의문에 북한을 명기해 ‘유감’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지뢰 도발에 대해 북측이 고위급접촉 공동보도문에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면서도 “당초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확실한 사과’를 충족시켰느냐에 대해선 논란과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공동보도문에 북측이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포격 도발을 한 것에 대한 언급도 없는 것에 대해 경향은 “북의 소행을 증명할 ‘스모킹 건’인 포탄 잔해를 남측이 확보하지 못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여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25일 조선중앙TV에 나와 이번 접촉을 평가하며 지뢰도발에 대해 “근거 없는 사건”이라고 우회적으로 부인했다고 국민일보는 전했다.

황 총정치국장은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일방적 행동으로 상대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있어서는 안 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6일자 국민만평
 

박근혜 “철수해라” 두 차례 지시… ‘8·25 합의’ 무산될 뻔

나흘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는 남북의 대표단은 고도의 수(手)싸움과 기(氣)싸움이 벌어졌다고 신문들은 일제히 보도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남한 대표단은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이 북측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대표단은 “관계 악화의 선후관계를 따져야 한다”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과거 도발 행태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일이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 대표단은 또 “(지뢰 도발로) 우리 젊은이 2명의 인생이 비틀린 것을 국민은 용납하지 못한다. 도발로 부상이 발생한 것에 대해선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김관진 실장은 향후 재발 시 강력 대응하겠다고 언급하며 “나는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고 수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는 “북측은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우리가 본 것도 아니고, 그 부분은 잘 모른다’고 회피했고, 남측은 우리 군과 유엔사 합동조사단 결과를 내보이며 책상에 증거사진까지 들이밀었다고 한다”며 “북측 대표단이 목함지뢰 도발을 ‘과거 일’로 치부하자, 우리 측은 ‘우리 국민이 다친 걸 그냥 넘어갈 수 있느냐’고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목소리도 높아졌다고 통일부 당국자는 전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남측은 목함지뢰 건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돼야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며 끝까지 버텼고 북측은 ‘우리도 이산가족 상봉을 원한다’며 의제를 돌렸지만, 남측이 ‘악순환을 반복할 수 없다’고 버티자 협상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며 “회담장에서는 ‘전쟁’ 발언까지 나오는 등 한때 험악한 분위기가 흘렀다”고 전했다. 

   
▲ 중앙일보 26일자 3면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협상을 지켜보다 두 차례나 “철수하라고 하세요”라고 지시했다고 여권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박 대통령 지시대로 했다가는 이번 공동보도문 합의로 조성된 남북화해 국면도 물거품이 될 뻔 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만류로 실제로 협상팀이 철수하진 않았지만 협상이 깨져도 좋다는 식의 남측 대응에 북측은 당혹스러워했다”며 “북한은 언제나 그랬듯이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 주도권을 장악한 뒤 이익을 챙기는 전략을 여전히 쓰는 듯 했지만 이번 고위급 접촉에선 그런 벼랑 끝 전술이 통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대통령 특사에 꼬리 흔든 SK 최태원, 전역 연기 장병 특채

임기 5년의 반환점을 도는 25일 박 대통령이 경기도 이천의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지 불과 열흘 만이다.  

한겨레는 “‘절제된 사면’이니 ‘원칙 있는 사면’이니 하는 말로 감추려 했지만 결국 재벌총수 사면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날 행사는 똑똑히 보여주는 듯하다”며 “익히 예상하긴 했지만 대통령은 죄를 지은 재벌총수를 격려하고 기업은 그 대가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풍경은 흡사 돈과 법치를 물물교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이천 공장 현장에서 박 대통령과 최태원 회장이 한 얘기는 더욱 민망하고 실망스럽다. 최 회장은 내내 박 대통령 옆을 지키며 ‘존경하는 대통령님’ ‘대한민국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정말 밤낮으로 여념이 없는 대통령님’ 등의 찬사를 했다고 한다”며 “자신을 특사로 풀어줬으니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나, 그렇다고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 총수가 대통령에게 저런 식의 상찬을 하는 건 보는 사람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어 “법을 어긴 재벌총수는 특별사면으로 풀어주자마자 직접 만나 어깨를 두드리는 대통령이,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노동자 대표들은 단 한번이라도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그런 대통령이 외치는 ‘노동개혁’을 노동자와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질타했다. 

   
▲ 한겨레 26일자 사설
 

이날 청와대는 북한 무력 도발 위기 상황에서 전역 연기를 신청한 장병들을 초청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격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SK그룹은 전역 연기 의사를 밝힌 장병들을 특별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맞장구쳤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SK그룹은 이번 특별 채용 결정이 최태원 회장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최 회장은 “전역을 연기한 장병이 보여준 열정과 패기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제 발전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며, 우리 사회와 기업은 이런 정신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中 “朴, 중국 열병식 참석”… 靑 ‘묵묵부답’

박대통령이 다음 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 행사에 참석한다고 25일 중국 정부가 발표했다.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부서는 불참하고, 최룡해 조선노동당 비서가 참석한다.

장밍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25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한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30개 국가 정상들이 열병식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청와대는 9월3일 전승 기념행사에 참석한다고 발표했지만 열병식 참석 여부에 관해서는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아 왔고, 이날도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한다는 중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며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전승절의 세부 일정을 포함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일정은 중국 측과 협의 중이며 적절한 시점에 알리겠다’고만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최룡해 비서가 참석하기로 했다고 중국 정부는 이날 발표했다. 최 비서는 2013년 5월 김정은 제1비서의 특사 자격으로 방중해 시진핑 주석을 접견한 바 있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과거 특사로 왔던 최 비서를 보내는 것을 보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북한의 의지가 반영된 것 같다”며 “최 비서가 서열은 김영남 위원장보다 낮지만 내부에선 상당한 정치적 비중이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 서울신문 26일자 1면
 

롯데 1면 5단광고 도배 

롯데그룹이 26일 모든 일간지와 경제지 스포츠지 등까지 1면 5단 광고를 원턴(One turn·모든 신문에 광고를 싣는 방식)으로 실었다.  

‘롯데가 새로운 각오로 거듭나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광고에서 롯데는 △기업 공개를 통해 경영 투명성 확보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선 조속히 실행 △ 청년채용·사회공헌·창조경제 실현 등 국가 경제와 사회에 대한 책임 등을 약속했다. 

롯데는 “호텔롯데의 국내 상장을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해 소유구조가 분산되도록 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비상장사도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등 상장회사에 중하는 제도를 도입해 경영 투명성을 개선하겠다”며 “현재 416개인 순환출자 고리의 80% 이상을 연말까지 해소하고 장기적으로 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26일 아침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대결에서 대화로… 남북관계 ‘반전의 첫발’>
국민일보 <충돌 피한 남북 화해의 길 열다>
동아일보 <유감 표명한 북 ‘재발방지’엔 말 흐려>
서울신문 <北 악습 끊은 南 원칙… 新남북새대 열다>
세계일보 <흔들림 없는 원칙론… ‘비정상 남북관계’ 정상화>
조선일보 <대결에서 대화로… 南北 ‘당국회담’ 준비>
중앙일보 <“당국회담 정례화” 신 남북시대 물꼬 텄다>
한겨레 <냉기류 남북, 화해 ‘첫 단추’…신뢰 정착시킬 ‘기회’>
한국일보 <남북 해빙 급반적… 朴 후반기 힘 실린 첫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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