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임씨 자살 의혹, ‘설마’ 아닌 ‘진짜’ 된다
국정원 임씨 자살 의혹, ‘설마’ 아닌 ‘진짜’ 된다
임씨 부인 119 신고 직접 지시, 사건 현장 급파 국정원 역할? 꼬리물수록 음모론 합리적

음모론은 유령과도 같다. 실체 없는 공포.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무서운 법이다. ‘입증할 수는 없지만 사실일 것이다’라는 기대는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일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든다. 

반대로 합리적 추론에 의한 의혹 제기가 곧 음모론으로 매도되는 경우도 많다. 비약된 부분을 찾고 자신의 상식선에서 볼 때 '있을 수 없다'고 단정짓는 순간 음모론은 쓸데없는 불장난이 돼버린다. 음모론이 경계의 대상이긴 하지만 무시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국정원 직원 임모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제기도 합리적 추론에 의한 음모론에 가깝다. 합리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실체있는 근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다. 

임씨가 목숨을 끊기 위해 타고 갔던 마티즈 차량의 번호판의 색깔이 다르다라는 주장에 이어 자살사건의 주요 증거인 마티즈 차량 폐차 문제가 나올 때만 해도 '설마'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임씨가 자살한 당일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상황실 근무자와 현장 출동 소방관 대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임씨 죽음에 국정원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점점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오전 11시 20분 29초부터 11시 24분 12초 사이에 녹음된 내용을 보면 상황실 근무자가 "보호자는 어디 계시는데"라고 묻자 출동 소방관은 "보호자는 이쪽에 나온 거 같진 않고 입에 있고 직장동료 분이 근방에 계셔서 저희랑 한번 만났다"라고 답한다. 국정원 직원이 자살 현장에 있었고 소방관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또한 오전 11시 35분 10초부터 11시 36분 33초 대화 중 상황실 근무자가 "그 위치추적 관계자 같이 없어요"라고 묻자 출동 소방관은 "없어 그 사람들 차 가지고 가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찾아준다고"고 말한다. 대화에 ‘위치추적 관계자’라는 말이 나온 것은 출동 소방관들과 국정원 직원이 조우했고 국정원 직원이 임씨를 추적했던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자살한 임씨의 부인에게 경찰이 아닌 119에 신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임씨의 부인이 소방관 말을 듣고 112에 신고해놓고 취소한 경위도 석연치 않다. 수사권을 가진 경찰을 현장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119 신고 지시를 한 게 아니냐는 물음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는 또한 국정원 3차장이 출근 뒤 임 과장이 새벽에 나갔다는 보고를 받고 임씨의 위치추적장치를 작동해보라고 하고 "용인의 옆부서 직원을 보내라"라고 지시한 내용이 나왔다.

임씨가 사라진 사실을 가장 먼저 인지한 곳이 국정원이었고 임씨를 상대로 감찰을 벌였던 국정원이 자살 가능성의 위험을 감지하고 먼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정원이 사건 현장을 소위 '오염' 시켰다는 의혹은 임씨의 유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임씨는 국정원의 감찰을 받고 있었고 국정원의 성명에 '기술자'라고 지목된 상황에서 큰 압박감을 느꼈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출근을 하지 않자 자살 사건을 직감하고 현장에 급파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모르는 유서를 확보하기 위해 국정원이 출동했다는 것이다. 

   
▲ ⓒ연합뉴스
 

두번째는 삭제된 자료의 백업 파일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국정원이 사건 현장에 나타날 수 있다. 자료가 삭제됐다는 것은 유서상에 밝힌 내용이지만 국정원은 임씨가 다뤘던 자료에 민감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혹여 임씨가 자살을 하면서 불법적 요소가 담긴 자료를 남겼다면 국정원으로서는 어떻게든 공개를 막았어야할 일이다.

자살 사건의 주요 증거인 마티즈 차량을 경찰이 유족에게 인도한 것도 임씨 사망 당일인 18일인 것으로 나왔다. 임씨의 부검 결과를 확인도 하기 전에 차량을 유족에 넘긴 것이다. 유족이 마티즈 차량 폐차를 사망 바로 다음날 19일 의뢰한 것도 비상식적이다. 한 누리꾼은 “어떻게 상중에 경황이 없는 유족이 죽음의 장소로 택했던 차량의 폐차를 의뢰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국정원은 자살사건 현장에 있었고, 수사권한을 가진 경찰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감찰을 받은 임씨가 사라지자 국정원 직원을 급파하는 등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국정원 직원들이 어떤 지시와 역할을 부여 받고 자살 사건 현장에 나타났는지가 임씨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를 풀어줄 핵심 내용인 셈이다.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직원 일동 성명을 발표하고 공개된 장례식장에 직원들이 나타난 것도 감찰 직후 자살한 임씨의 소식에 직원들의 동요를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임씨 사망 과정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이 임 과장 사망 장소에 최초 도착해 최소 30분에서 최대 1시간 30분까지 현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며 "현장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취했던 현장 조치 사항, 본원과의 연락 내용, 본원의 지시자와 지시 내용, 국정원이 119에게 알린 시각, 국정원이 110에게 현장 통제를 넘긴 시각 등"의 자료를 요구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일일히 의혹을 해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침묵이 계속될수록 음모는 확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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